군화 삶아 먹던 전쟁폐허 도시서…대통령 탄생 요람으로
군화 삶아 먹던 전쟁폐허 도시서…대통령 탄생 요람으로
  • 이대영
  • 승인 2019.01.1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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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부터 병참기지 역할 수행
해방 이후 근대화산업 중추적 역할
‘제왕지향’ 신화 속 지역민 자긍심 고취
현재 지역 위상은 전국 중위권 수준
따뜻한 물에 안주하는 개구리 신세
채플린고기-칼라
1949년 말 31만 3천705명이 평화롭게 살았던 이곳에 1950년, 250여만 명의 피란민이 모여들어 280만의 콩나물시루가 됐다. 심지어 미군 헌 군화(워커)를 삶아 마련한 ‘워커 쇠고기(walker beef)’를 칠성시장 좌판에서 팔고 사먹었다. 이를 봤던 외신기자들이 송고했던 워커소고기는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1889~1977)의 영화 ‘황금광 시대(The Golden Rush)’소재로 명장면을 만들었다.

 

이대영의 신 대구 택리지 - (2) 과거의 영광에 취하다

제왕지향(帝王之鄕)의 자긍심에서만 안주하다가 동트는 달구벌(닭벌)은 삼한시대부터 가야정벌과 백제정복의 배후 지원세력과 병참기지로 역할을 해왔다. 임진년 4월14일 왜군 20만이 부산진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동인들의 득세를 눈꼴사납게 여기던 지역선비들은 소를 잡아놓고 자축연을 열었다고 한다.

고니시(西小行長) 왜장의 대구진격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지역방위사령관 부윤(府尹)은 왜군후미공격을 빌미로 울산좌병영에 출병했다. 그 틈을 타서 왜장은 4월 21일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걸어서 대구읍성 안으로 들어왔다. 4월 22일에 대구부윤이 돌아와서도 탈환공격은 고사하고, 동화사 관군병영으로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지역지도자들은 한말에는 정한론자(征韓論者)들의 기세를 감지하고, 일본제국군의 주둔지로 달성공원을 내주었고, 대륙침략의 병참기지로 36년간 토후세력(土侯勢力)으로 안주했다.

이에 따른 반사적 이익으로 얻은 섬유산업을 위시한 경공업중심의 병참기지산업을 자산으로 삼아 근대화산업의 산실인양 중앙실세 1번지 혹은 ‘사랑채 양반’ 행세를 했다. 해방이후 국가정치에 있어서도 5.16정변, 12.12사건, 6.29선언을 계기로 3명의 지역연고 대통령이 나왔다.

2000년 이후에도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 경제’와 ‘창조경제(Create Economics)’를 슬로건으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약속했던 2명의 대통령이 이곳에서 나왔다. 이렇게 제왕지향(帝王之鄕) 신화를 창출해 지역민의 자긍심을 북돋워주었다.

그럼에도 정작 상대적 지역위상은 제3의 경제도시에서 제5~7위의 광역시로 떨어졌다. 진솔한 말을 한다면, 과거 영광과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권력에 취해서 정작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지 못했다. 한 마디로 프랑스 요리에서 ‘따뜻한 물에 안주하는 개구리’신세가 되고 말았다.

◇대구를 구하소서(Libera Daegu) !

1949년 말 현재 31만 3천705명이 평화롭게 살았던 이곳에 1950년, 250여만 명의 피란민이 모여들어 280만의 콩나물시루가 됐다. 미군의 짠밥통을 뒤져서 나온 잔반으로 꿀꿀이죽을 끓어서 먹었고, 종이보드박스(paperboard box) 조각으로 바람막이 임시천막을 마련했다.

심지어 미군 헌 군화(워커)를 삶아 마련한 ‘워커 쇠고기(walker beef)’를 칠성시장 좌판에서 팔고 사먹었다. 이를 봤던 외신기자들이 송고했던 워커소고기는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1889~1977)의 영화 ‘황금광 시대(The Golden Rush)’ 소재로 명장면을 만들었다. 당시 송고되었던 외신내용은 한 마디로 “전쟁폐허의 인간쓰레기장(human wastes in the war ruin)”이었다.

1966년 12월 14일 대구를 되찾았던 영국 이브닝스타(Everning Star) 칼 로완(Carl T. Rowan) 기자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마치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었음’을 입증했지만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노력을 소홀히 했다. 이제 우리는 뉴욕 되살리기 ‘I♥NY’ 범시민적 캠페인과 80세 노망난 할머니에서 18세의 미녀로 변신한 ‘상하이를 위해 당신들은 뭘 하실 것입니까(爲上海?們作什)?’ 프로젝트를 벤치마킹(benchmarking)하고 실천해야 할 때다.

◇건전한 정신과 위기감으로(Sound Mind & Crisis)

우리의 진면목은 정신머리와 말씨가 만든다. 어릴 때 시골, 귀여운 손주라고 엄격하신 할아버지와 겸상을 하면서 단단히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다. “할아버지, 또 잔소리”라고 귀담아 들지 않았으나, 말씀의 레퍼토리는 머리와 그릇 이야기가 전부였다. 머리는 “일꾼이 일머리를 잘못 튼다.

요사이 젊은 것들이 버르장머리가 없다. 젊은 여자가 인정머리가 없다. 소견머리도 주변머리도 없다. 정신머리는 더욱 안돼!”라는 이야기다. 또한 그릇이란 “그 정도 그릇으로 국정을 감당 못 한다. 깜냥도 그릇도 안 되는데 ...”라는 말씀이다. 국가나 지역사회는 지도자들의 정신머리와 그릇의 크기에 따라 경제성장과 지역발전이 좌우된다.

우리 끼리 하는 말이지만 결국은 그것이 대구에 뿌려져 싹트고 성장할 것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 삼인성호(三人成虎)의 결과를 고스란히 우리가 받는다. 유식하게 말하면 지도자의 역량이 지역사회의 핵심역량(core competency)이 된다.

기억나는 저의 할머니 이야기는 단 하나다. “입이 보살이다”는 말이다. 6.25전쟁 이후라서 어린 아이들이 탄피와 포탄껍데기를 엿장수에게 주고 엿과 바꿔먹었다. 그놈의 재미를 알아 밥만 먹고 포탄껍데기를 줍고자 산야를 뒤지고 다녔다. 이웃집 어머니가 아들에게 “나가 돼져라”라고 욕을 하는 걸 들고서 “입이 천수보살이가 만수보살인데...”라고 걱정을 했다. 그 아들이 어느 날 큼직한 불발포탄을 발견하고 껍데기를 뺀다고 두드리다가 폭발해서 죽었다. 그의 어머니가 구슬푸게 우는 걸 보고 “나가 돼지라면서, 나가죽었으니, 춤을 춰야 되겠는데”라고 혀를 차시면서 “말이 씨가 되는데, 그렇게 자식에게 악담을 했으니”라고 하셨다. 유식하게 말하면 “네가 말한 대로 이뤄진다”라는 성경말씀이나 “네가 뜻한 대로 성취되리라” 잠언의 말이다. 할머니는 늘 “입놀림을 바르게 하는 게 참이다(正口業眞)”했다.

◇4W로 대구를 진단해본다면?

한편 사람을 판단하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인들은 신언서판(身言書判)했다. 국가나 도시를 판단하는데도 신언서판으로 한다. 즉 인구수, 면적, 지형, 지리적 위치, 도로망 등의 도시의 몸집(身)을 보고, 역사, 인물, 문화(예술, 문학, 관광) 등에 대한 고금의 자료(書)와 각종매체에서 전하는 말(言)을 참고해서 판단(평가)한다.

과거 인문지리학자들은 도시 구성요소(3W)로 물(water), 길(way) 그리고 도시에 사는 지역주민의 의지(will)로 판단했다. 오늘날 정보통신시대에서는 입소문 혹은 말(Word)이라는 하나의 요소를 추가하고 있다. 태초부터 말이 있었다. “말로 인해 세상이 형상된다”고 했다.

군사적 요충지 혹은 병참기지로 발전했던 곳이 한반도의 대구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 애틀랜타, 로마제국부터 밀라노가 그랬다. 대량생산물류시대에 이들 도시는 물류비용이 많이 들어 몰락하고 있다. 그런데 밀라노는 지식정보시대 과거의 음악, 미술 등의 예술적 기반을 패션과 디자인에 접목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때 대구의 지도자가 국비지원을 받아서 밀라노프로젝트(Milano Project)로 벤치마킹하고자 했다. 그 결과는 부정적인 언론기사는 접어두고서도 “시장님이 밀라노 패션 옷 한 벌 사 입었다더라”로 회상되고 있다.

이탈리아 여행을 가면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See Napoli, and die)”라는 서양격언에 따라 아름다운 항구도시 나폴리에 매번 들려본다. 과거 전략적 요새지로 모든 강대국이 이곳을 선점하고자 했기에 지역주민들은 지겹게 전쟁을 했다. 그곳 시민들은 하나 같이 배타성과 보수성이 골수에 파묻혀 있는 모습이 대구시민과 흡사했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중국의 공장들이 하늘 길(공항)도 바닷길(해운)도 더 불편한 밀라노로 이탈리아반도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역주민은 물론 이구동성으로 “물이 나빠졌다”고 한다. 결국 시실리 출신 마피아조폭의 활동근거지가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내리면 위험하다고 해서 관광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차창경관만으로 나폴리 관광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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