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하나가 한 채의 집을 다 짓고
꽃잎을 보내고
한 송이 꽃은 그늘을 지우고
줄기를 허공으로 올려 세워
푸르고 창창한 세계를 열었던 꽃
저녁이 오는 동안
옷깃 안에 무른 살을 내 주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꽃
지상의 정원은
발등에 별들을 내려놓고
향기를 더듬어서 꽃문에 들면
으스름 달빛이 초췌한 꽃진 자리
갈비뼈를 스치는
한 줄기 서늘한 바람결에
나는
나를 돌아보는 눈을 얻었다
山寺의 鐘 소리가 세계의 저녁을 채우고
이마와 가슴을 치는
이 외롭고 적막한 숲길의 寒氣
나무와 잎을 흔들어서 깨우고
골짜기를 나가는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소리에
어떻게
귀를 기울이고 등을 굽혀 설까
◇홍성은= 1963년 강원 태백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 전공, 대구·경북지역대학 반월문학상 대상 수상(10)
<해설> 세상은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 나뭇잎으로 아름답다. 무심히 피었다 말없이 지는 꽃처럼 이 세상엔 아무것도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 지금 길이 없다면 고요히 앉아 자신을 보면, 모든 길은 스스로 통한다. 먼 산만 보면 눈앞의 돌부리에 채어 넘어지고, 눈앞만을 보면 갈 길을 잃는다. 함께 하는 삶의 설렘과 끌림으로 가지지 않음이 주는 자유로움과 홀가분함을 길어 올려보자. 가야할 길은 영원과 현실이 지혜롭게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온전하게 존재하고 생성된다. 어디서든 누구에게도 받으려 하지 말고 스스로가 되어야겠다. 종(鐘)소리는 흩트려지는 것이 아니고 고요히 앉아 번지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무한대의 빛을 가지고 있다. -성군경(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