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 할 수 있는 좋은 일과 말들이 많이 있는데 가수 아이유는 올 새해에 안타깝게도 변명부터 해야 했다.
일부 매스컴에서 아이유가 투기목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하여 20억여 원의 수익을 얻게 되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신문 기사를 본 사람들의 상당수는 그 보도를 사실로 생각하고 비판적인 의견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보도된 몇 가지 내용들을 살펴 보니 아이유가 투기목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했다거나 투기로 수십억의 불로소득을 얻게 되었다는 보도는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유는 그것을 구입하게 된 동기와 시점 그리고 현재의 사용 현황 등을 들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구차하게도 해명해야만 했다. 아이유 본인으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지만 해명하고 또 변명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면 별 일이 아닌 데 막상 본인에게 그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억울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올 새해에 내게도 변명과 해명하는 일로 인해 피로감을 느끼는 일이 틈틈이 발생하곤 한다.
올해 우리 교회에서는 신중한 의논을 거쳐 후임 목회자를 청빙하기로 하였다. 이 일의 계기는 개척한 후 20년이 지난 우리 교회에는 보다 젊고 역동적인 목회자가 필요할 것이라는 우리 부부의 판단이었다. 우리는 4년 전에 미리 이것을 교회에 알리고 신중하게 대비하기로 하였고 올해 그 때가 된 것이다.
그런 후임 목회자를 초빙하는 과정이 올 새해에 의외의 피로감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 피로감은 새로운 목회자의 필요성을 교회에 공개적으로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일이나 초빙 후보자들에게 우리 교회의 상황을 설명하는 일 등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 피로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발생하여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였다.
그 피로감은 나의 은퇴가 목회자의 일반적이 은퇴시기에 비해 상당히 이른 시점이라는 데 원인이 있었다. 나의 은퇴와 새로운 목회자 청빙 계획을 알게 된 목회자들은 상당한 친분관계에 있는 분들조차도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조기 은퇴는 다른 분들의 은퇴를 은연중에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이런 불편함을 인식할 때마다 어색하게 나름대로의 변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는데 그것은 현재의 목회자가 조기 은퇴하고 다른 목회자를 청빙하는 경우는 틀림없이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은밀한 어떤 일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었다. 그 은밀한 일이란 돈이나 성과 관련된 목회자의 범죄가 있거나 교회내의 심각한 갈등이 있는 경우를 의미했다.
어떤 분들은 아예 단정적으로 그렇게 말함으로써 내게 큰 부담과 상처를 주기도 하였다. 아무리 설명하고 해명해도 그것을 변명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들의 단정적 판단이 나를 피곤하게 한 주된 원인이었다.
우리 시대의 상황을 ‘관계’란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소설가 현길언 선생의 소설, ‘벽’을 읽다가 목회 현실에서 발생하는 변명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벽’은 자기 아들을 죽인 자를 양자로 삼은 한 목사의 갈등을 다룬 소설이다. 그 소설에 등장하는 목사의 상황은 나와 다르지만 목회자의 가정 혹은 교회에서 겪는 갈등이란 부분에는 공감되는 바가 많았다.
양자인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회개하며 기도하는 목사. 그 기도를 우연히 듣게 된 아들의 반항. 위선적인 아버지의 신앙에 격분하여 대들다가 뛰쳐나가는 아들을 붙잡고 다급하게 뭔가 말하려다 계단에 넘어져서 죽는 목사인 아버지. 그리고 결국 살인을 자백하며 구속된 아들의 고백에 마음이 아프다.
“아마 내 뒤를 급히 따라 오시다가 계단에서 넘어지셨을 거야. 내 부릅뜬 눈을 보는 순간 당황하고 놀라셨겠지. 그러니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지.”
오해로 인한 성급한 단정은 변명을 촉구한다. 오해하는 사람들은 변명하는 사회를 만든다. 새해에는 서로 더 이해하도록 노력해 보자.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보자. 우리는 서로 외로운 사람들이 아닌가?
일부 매스컴에서 아이유가 투기목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하여 20억여 원의 수익을 얻게 되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신문 기사를 본 사람들의 상당수는 그 보도를 사실로 생각하고 비판적인 의견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보도된 몇 가지 내용들을 살펴 보니 아이유가 투기목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했다거나 투기로 수십억의 불로소득을 얻게 되었다는 보도는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유는 그것을 구입하게 된 동기와 시점 그리고 현재의 사용 현황 등을 들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구차하게도 해명해야만 했다. 아이유 본인으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지만 해명하고 또 변명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면 별 일이 아닌 데 막상 본인에게 그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억울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올 새해에 내게도 변명과 해명하는 일로 인해 피로감을 느끼는 일이 틈틈이 발생하곤 한다.
올해 우리 교회에서는 신중한 의논을 거쳐 후임 목회자를 청빙하기로 하였다. 이 일의 계기는 개척한 후 20년이 지난 우리 교회에는 보다 젊고 역동적인 목회자가 필요할 것이라는 우리 부부의 판단이었다. 우리는 4년 전에 미리 이것을 교회에 알리고 신중하게 대비하기로 하였고 올해 그 때가 된 것이다.
그런 후임 목회자를 초빙하는 과정이 올 새해에 의외의 피로감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 피로감은 새로운 목회자의 필요성을 교회에 공개적으로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일이나 초빙 후보자들에게 우리 교회의 상황을 설명하는 일 등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 피로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발생하여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였다.
그 피로감은 나의 은퇴가 목회자의 일반적이 은퇴시기에 비해 상당히 이른 시점이라는 데 원인이 있었다. 나의 은퇴와 새로운 목회자 청빙 계획을 알게 된 목회자들은 상당한 친분관계에 있는 분들조차도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조기 은퇴는 다른 분들의 은퇴를 은연중에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이런 불편함을 인식할 때마다 어색하게 나름대로의 변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는데 그것은 현재의 목회자가 조기 은퇴하고 다른 목회자를 청빙하는 경우는 틀림없이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은밀한 어떤 일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었다. 그 은밀한 일이란 돈이나 성과 관련된 목회자의 범죄가 있거나 교회내의 심각한 갈등이 있는 경우를 의미했다.
어떤 분들은 아예 단정적으로 그렇게 말함으로써 내게 큰 부담과 상처를 주기도 하였다. 아무리 설명하고 해명해도 그것을 변명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들의 단정적 판단이 나를 피곤하게 한 주된 원인이었다.
우리 시대의 상황을 ‘관계’란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소설가 현길언 선생의 소설, ‘벽’을 읽다가 목회 현실에서 발생하는 변명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벽’은 자기 아들을 죽인 자를 양자로 삼은 한 목사의 갈등을 다룬 소설이다. 그 소설에 등장하는 목사의 상황은 나와 다르지만 목회자의 가정 혹은 교회에서 겪는 갈등이란 부분에는 공감되는 바가 많았다.
양자인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회개하며 기도하는 목사. 그 기도를 우연히 듣게 된 아들의 반항. 위선적인 아버지의 신앙에 격분하여 대들다가 뛰쳐나가는 아들을 붙잡고 다급하게 뭔가 말하려다 계단에 넘어져서 죽는 목사인 아버지. 그리고 결국 살인을 자백하며 구속된 아들의 고백에 마음이 아프다.
“아마 내 뒤를 급히 따라 오시다가 계단에서 넘어지셨을 거야. 내 부릅뜬 눈을 보는 순간 당황하고 놀라셨겠지. 그러니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지.”
오해로 인한 성급한 단정은 변명을 촉구한다. 오해하는 사람들은 변명하는 사회를 만든다. 새해에는 서로 더 이해하도록 노력해 보자.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보자. 우리는 서로 외로운 사람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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