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나이브’한 것일까?
나는 아직 ‘나이브’한 것일까?
  • 승인 2019.01.1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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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재(기획특집부장)


예전에 영어회화 학원 다닐 때였다. 어느 날 호주 출신 강사가 지역감정을 주제로 각자 얘기를 해보라고 했다. 당시는 지역감정 극복이 국가적 관심사여서 영자신문에도 그에 관한 기사가 자주 실린 모양이었다. 나는 서너 살쯤 된 딸을 데리고 여행 갔을 때의 얘기를 했다. “백반 2인분을 주문했는데도 거의 모든 식당에서 ‘애기’ 밥이라며 밥과 국을 따로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그 사람들의 배려에 더욱 감동했다.”라고 유창하게 말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실제로는 머리를 쥐어짜 떠오르는 단어들을 떠듬떠듬 내뱉을 뿐이었다.

그 지역 사람들이 순박하더라는 뜻으로 말을 했는데 강사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내 말이 끝난 뒤, 그는 그럴 땐 ‘나이브(naive)’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지적해 주었다. ‘나이브’는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게 아니라, ‘미숙해서 뭘 모르는’이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된다는 것이었다.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자면 ‘시근(식견?) 없는’ 정도의 뉘앙스인 것 같았다. 이런 에피소드와 함께 ‘나이브’라는 영어단어는 내 머릿속에 각인 됐고, 그 이후로 내가 어리석은 생각을 해왔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나이브한 놈, 시근 없는 놈’ 하며 씁쓸하게 웃곤 한다.

지난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이 처음 불거질 때만 해도 나는 쉽게 믿기지가 않았다.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 인혁당사건 등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지만, 국민들의 힘으로 절차적 민주화를 이룬 뒤에는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해왔으리라 믿어왔기 때문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와도, 증거에 근거해 판단하다 보니 그렇게 됐겠거니, 법이 그렇게 돼 있으니 판결이 그럴 수밖에 없었겠거니 했다.

사실 사회가 법원에 기대하는 것은 변화에 앞장서는 것이 아니다. 법원 구성원들의 성향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가 날 수는 있겠지만, 사법부는 본질상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사법부에 바라는 것은, 법과 질서의 안정을 지키면서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바로잡으려고 애쓰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적으로는 부당한 판결을 받은 사람들도 대부분 변호사나 검찰의 무능을 탓하거나 사법 시스템 자체의 결함에 분노하지, 판사 개인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높지 않다.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사법부가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점에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블랙리스트, 재판거래 등 사법농단 정황이 점점 드러날수록 나는 점점 화가 났다. 내가 얼마나 ‘나이브’한 놈인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른바 법조삼륜 중에서 판사는 ‘거래’라는 단어와 가장 거리가 먼 집단이라고 생각해왔었다. 나에게 판사의 이미지는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등은 약간 구부정하며 높이 쌓인 서류 더미 속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자신의 직무와 능력에 대해 약간 재수 없을 정도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그래서 최소한의 신뢰는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게 편견이며 선입견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립기반인 국민의 신뢰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까? 관련자들의 개인적인 동기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이브’한 나는 아직도 이 부분이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는다. 지난 11일 ‘사법농단의 몸통’으로 지목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 재판개입, 법관 사찰 및 인사 불이익 조치 등 40여 혐의를 받고있는 그는 검찰 출석에 앞서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여기서 그는 ‘부덕의 소치’라면서도 혐의는 부인했다. 그는 “이 자리를 빌려 제가 국민 여러분에게 우리 법관들을 믿어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싶습니다. 절대 다수 법관들은 국민 여러분에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법관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음을 굽어살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전 인생을 법원에서 근무한 사람으로서 법원에 한번 들렀다 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무죄를 주장하건, 검찰 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건 그것은 그 사람 개인의 권리이니 그뿐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사법권의 독립을 훼손한 혐의로 피고인석에 서게 될 사람이, 법원 앞에서 평생 근무, 법관의 사명감 운운하는 것은 지독한 블랙코미디였다.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게 후배 법관들에게 부담을 줄 것이라고 생각 안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편견이나 선입견 없는 시선으로 이 사건을 봐줬으면 감사하겠다.”고 대답했다. 내가 이번 사건을 편견이나 선입견 없는 시선으로 본 결론은 내가 참 ‘나이브’했다는 씁쓸한 자각이다.

그런데 그의 법원 앞 기자회견을 보고는 앞으로 이 재판이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해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나이브’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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