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우연이 겹친 나와 너…나는 누구? 너는 누구?
수많은 우연이 겹친 나와 너…나는 누구? 너는 누구?
  • 김광재
  • 승인 2019.01.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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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세계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 ‘미래의 미라이’가 지난 16일 개봉됐다. 그에게 확고한 명성을 안겨준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이후 5번째 작품이다. 호소다 감독은 그 사이에 3년 터울로 ‘썸머 워즈’(2009), ‘늑대아이’(2012), ‘괴물의 아이’(2015)를 발표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츠츠이 야스타카의 소설이 원작이지만, 나머지는 호소다 감독의 경험과 생각이 짙게 배어있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 얼리버드픽쳐스 제공
호소다 마모루 감독. 얼리버드픽쳐스 제공

 

‘썸머 워즈’는 수학 천재 소년이 사이버 가상 세계에서 벌어진 고스톱 게임 전쟁에서 인류를 구한다는 스토리와 도시 소년이 짝사랑하는 여자 선배의 시골에서 대가족을 만나 동화되는 이야기가 탄탄하게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 핵가족의 외동으로 성장한 호소다 감독이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시골의 대가족 처가를 방문한 경험이 작품의 배경이 됐다고 한다. 감독은 ‘썸머 워즈’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가족의 모델에 대한 동경을 ‘가족론 총론’으로 제시한 후, ‘늑대아이’에서 ‘미래의 미라이’까지 세 편의 ‘가족론 각론’을 잇달아 내놓았다.
 

늑대아이(2012)

 

늑대인간의 두 아이 성장기 다룬 판타지
엄마의 육아·성장에 대한 현실적 이야기

늑대인간과 결혼해 딸 유키(雪)와 아들 아메(雨)를 낳고,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하나(花). 엄마는 수시로 늑대로 변하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기 위해 산골 외딴집으로 이사를 한다. 영화는 두 아이가 늑대와 인간 중 어느 쪽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할 때까지의 성장기를 보여준다.

외향적인 유키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 나간다. 늑대의 본성 때문에 위기를 겪으면서 유키는 늑대의 본성을 포기하고 인간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학교생활에 흥미가 없는 아메는 늙은 여우를 선생님으로 삼아 숲의 삶을 배워 늑대로서 살아가기로 선택한다.

영화 속 주요 사건은 남매의 성장과 정체성 확립에 관한 것이지만, 영화의 초점은 홀로 두 아이를 길러낸 젊은 엄마에게 맞춰져 있다. 영화는 유키가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엄마를 향한 연민과 감사의 마음이 잘 전해진다.

엄마는 늑대의 아이가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몰라 답답해하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예쁜 장신구보다 말린 파충류를 좋아하는 유키가 또래들과 다시 어울릴 수 있게 된 것은 엄마가 만들어준 원피스 덕분이었다.

인간의 삶을 선택한 유키에게는 엄마가 줄 수 있는 것이 많았으나 늑대를 선택한 아메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가 늑대 아빠를 대신해 토끼사냥 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는 없었다. 아메는 아빠의 빈자리에 숲에서 만난 선생님 즉 늙은 여우를 모신다. 아메가 산꼭대기에 올라 감격하는 장면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벅찬 순간을 보여준다. 숲으로 떠나는 아메에게 엄마는 “아직 네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고 안타까워하지만, 엄마는 이미 가장 큰 것을 선물했다. 아메에게 인간의 삶을 살도록 강요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줬다.

사실 이 영화는 늑대인간이라는 설정이 판타지일 뿐, 육아와 성장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다. 영화에서 보여준 어머니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감독의 그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눈과 비라는 아이들의 이름과 꽃이라는 엄마의 이름은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도 함께 성숙해간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 같다.
 

괴물의 아이(2015)

 

외톨이 주인공과 무술 고수 스승의 만남
청소년 자아형성·‘父 역할’에 대한 의미

다음 영화에서 호소다 감독은 엄마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두어 아들을 주목한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대신하는 스승이 등장하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해가는 주인공이 자아를 찾는 이야기다.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를 아버지(스승)와 아들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죽고 아버지와는 연락이 끊긴 렌은 외톨이로 시부야 거리를 헤메다 짐승들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렌은 쿠마테츠(곰)라는 무술 고수의 제자가 되어 큐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간다.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정은 깊어지고, 둘은 특이한 사제관계를 형성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이 아니라, 스승은 자기 할 일을 하고 제자는 그런 스승을 따라 하다 스스로 터득하게 되는 방식이다.

렌과 큐타라는 두 이름은 아버지(인간)와 스승(짐승) 사이에서 분열된 자아를 보여준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워준 스승과 주변의 도움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렌은 성숙한 자아를 가진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런데 렌 또래의 이치로히코는 독립된 자아형성에 실패하고 내면의 어둠에 잠식당한다. 그는 이오젠(멧돼지)이 인간 세상에서 버려진 갓난아기를 데려와 키운 아이다. 이오젠을 아버지로 알고 성장하는 그는 자랄수록 아버지와는 다른 모습이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이 커진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강력해질수록 답을 찾을 수 없는 그는 자기파괴적으로 변한다.

같은 조건인 렌(큐타)과 이치로히코가 이렇게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한 것은 두 부자관계(큐타-쿠마테츠, 이오젠-이치로히코)의 성격이 달랐기 때문이다. 쿠마테츠는 큐타에게 “의미는 스스로 찾는 것”이라며 독립된 개체임을 인식시켰으나, 이오젠은 이치로히코에게 “너는 다른 누구도 아니다. 나 이오젠의 아이다”라며 독립의 계기를 막아버렸다. 두 경우를 대비함으로써 호소다 감독은 청소년의 자아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아버지 혹은 유사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미래의 미라이(2019)

 

네 살 소년 쿤과 미래에서 온 동생 미라이
어린 남매의 가족관계 형성 과정 담아 내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다룬 두 편에 이어 ‘미래의 미라이’는 남매 사이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엄마-아빠-나, 이 완전한 삼각형에 동생이라는 훼방꾼이 등장한 것이다. 네 살 소년 쿤은 엄마 아빠의 관심을 빼앗아간 여동생 ‘미라이(미래未來의 일본식 발음)’를 괴롭힌다. 터울이 있는 두 아이를 키우는 집안에서는 익숙한 장면이 화면에 그려진다. 어느 날 미래에서 온 중학생 미라이가 쿤 앞에 나타나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오빠!”하고 부른다.

이 작품은 호소다 감독이 4살 아들과 1살 딸에게서 영감을 얻어 시작됐고, 미라이와 강아지 윳코는 실제 호소다 감독의 딸과 강아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가족관계를 다룬 전작들과 관련지어 보면 사춘기가 되기 전 어린 남매의 가족관계는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다루고 있다. 4살 아이의 시점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부모와의 관계, 부부 사이,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의 관계까지 확대된다. 그리고 수많은 우연이 겹쳐서 오늘의 나와 네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영화에서도 호소다 감독은 4살 쿤에게도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던진다. 미아가 된 쿤이 로봇 역무원의 질문에 대답하는 장면에서다. 쿤은 아빠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엄마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동생의 이름 ‘미라이’를 기억해낸다. 쿤은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미라이의 오빠’라고 대답한 것이다.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자가 필요하며, 타자와의 관계로 나를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호소다 감독은 유키, 아메, 렌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은 쿤 나이 때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암시하는 것 같다. ‘썸머워즈’에서 시작된 호소다 감독의 가족 탐구는 ‘늑대 아이’, ‘괴물의 아이’를 거쳐 ‘미래의 미라이’까지 왔다. 가족 탐구가 계속될지는 성급한 궁금증이 생기지만 좀 더 기다려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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