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세상 모든 일이 다 나의 일이다
<대구논단>세상 모든 일이 다 나의 일이다
  • 승인 2010.02.2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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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천여 년 전의 사람인 신라 제48대 경문왕의 귀가 당나귀 귀였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그보다도 훨씬 오래 된 서양신화 속 미다스(Midas) 왕의 귀가 또한 당나귀 귀였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미다스 왕은 욕심이 많아 자기 손에 닿는 무엇이든지 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했다가 혼쭐이 난 사람이다. 어리석은 왕의 대명사로 불리는 미다스는 아폴론 신과 숲의 신 마르셔스와의 음악 경연 심판을 보면서 자기 기분대로 마르셔스의 승리를 선언하고 만다. 그러자 화가 난 아폴론은 음악을 제대로 들으려면 귀가 커야 한다며 그의 귀를 길게 늘였다고 한다.

귀를 아무리 감추어도 이발사에게만큼은 감출 수가 없었다. 이발사는 왕의 비밀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답답하여 배길 수 없었던 이발사는 구덩이를 파고 “미다스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목청껏 외치고는 구덩이를 메워버렸다.

그 후 그곳에 갈대가 빽빽이 자라났는데 이상하게도 바람이 불 때마다 “미다스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려나왔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갈대밭에 있던 새들이 곳곳으로 옮겨 마침내 온 세상에 다 퍼졌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기원전 1세기 경 로마의 시인이었던 오비드가 쓴 신화집 `변신’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쓰인 지가 2천년이나 되는 오래 된 이야기이다. 기록으로 남기 전 이미 이 이야기는 옛 신화였던 만큼 실제로는 5천 년 전일 지 5만 년 전일 지 모를 정도로 오래된 이야기인 것이다.

이처럼 오래된 이야기가 신라의 서라벌에까지 와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도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여이(驪耳)설화’라고도 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경문대왕조에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경문왕은 왕이 되고 난 뒤 갑자기 귀가 길어져서 당나귀 귀처럼 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왕의 두건을 만드는 복두장(?頭匠) 한 사람뿐이었다. 함부로 비밀을 말하였다가 목숨을 잃을 것을 두려워 한 복두장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다가 죽을 때가 되어 도림사(道林寺) 대나무 숲에 들어가 “우리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고 외쳤다.

그로부터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에서 “우리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려나왔다는 것이다. 그러자 왕은 대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수유를 심게 했는데, 그 뒤로는 조금 바뀌어 “우리 임금의 귀는 길다”라고만 들려왔다고 한다.

경문왕 설화에서는 귀가 커진 연유가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런데 경문왕은 재임 중에 역병이 크게 돌아 굶어죽는 백성이 많았고, 또한 신하들의 반란도 많이 일어나서 매우 불안한 시간을 보내어야만 하였다. 그러자니 자연 주변의 동향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무엇이나 의심을 가지고 들으려 한 성향을 꼬집어 귀가 큰 이야기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당시의 지리적 환경으로 보아 도저히 오고갈 수 없어 보이는 고대 유럽의 이야기가 어떻게 1천년 여의 시간적 차이를 극복하고 멀리 신라에서까지 보편적인 교훈담으로 접목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비밀이란 없으며, 이 세상 모든 일이 다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잘못하고 있는 일들은 몇 천 년 뒤에도 밝혀져 우리들을 괴롭힐 수도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죽고 없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윤회설에 따라 우리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온다면 그 이야기는 바로 우리 이야기일 것이고, 지금 우리가 부끄럽다면 그 일은 바로 전생에서 내가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일이 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가정한다면 과연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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