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을 찾아서…서늘한 시선으로 사회폭력상 직시
영성을 찾아서…서늘한 시선으로 사회폭력상 직시
  • 황인옥
  • 승인 2019.01.2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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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 기억공작소 3월까지 ‘김성룡’展
봉산-김성룡_반고흐의숲
김성룡 작 ‘반고흐의 숲’.
 
봉산-김성룡_반고흐의숲22
김성룡 작 ‘반고흐의 숲2’.

 

여섯 살 때 이웃집 마루에 걸린 예수 그림을 처음 접하고 그림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6살에 첫 유화를 그렸다. 그의 그림은 독학의 결과다. 정규교육기관에서 그림을 배우지 않았다. 유럽의 고흐와 세잔과 벨라스케스나 중국의 석도를 거울로 삼았을 뿐이다. 고흐나 세잔 그리고 석도가 기존의 유파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그림을 추구했듯, 김성룡도 독자적인 화풍을 추구했다. 이는 작가 김성룡의 작품세계를 특정 유파 속으로 가둘 수 없는 이유다.

 

제주 4·3사건·광주항쟁 등
현대역사 이면의 아픔 주시
상처 떠도는 풍경과 혼연일체
독자적 리얼리즘 세계 일궈

“길지 않은 인생 맘껏 자유롭게 그리자는 주의다. 이전과는 다른 튀는 사람이 가끔씩 나와야 새로운 유파가 생기지 않겠나? 고흐나 석도가 그랬듯이.”

초기에는 역사화를 그렸다. 정확히 역사 속 폭력을 다뤘다. 유관순, 민비, 민영환 등의 근대역사나 광주항쟁 등의 현대역사를 다루며, 한국사회의 이면에 가려진 상처받은 자아의 실체를 파헤쳤다. 이 시기 민족역사화라는 새로운 장르 개척에 매달렸다. 그러나 김성룡의 민족역사화는 의외의 복병을 만나 종지부를 찍었다. “역사화를 오래하니 몸이 안좋아졌고 한동안 작업을 쉴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부터 변화를 추구했다. 몸을 추스리기 위해 휴양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작업이 형태를 갖춰갔다. 작가가 고수해왔던 ‘인간의 폭력성’은 견지하면서도 작품의 소재를 역사에서 자연으로 옮아왔다. 전쟁의 상처가 떠도는 DMZ풍경,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동물들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의 이미지를 대신했다. 최근 시작한 봉산문화회관 전시에 걸린 제주 4.3사건 장소의 풍경과 표범이 석류나무가 터질 듯이 풍요로우나 가시가 날카로운 나뭇가지 사이에 위태롭게 서 있는 풍경도 그런 맥락 속의 작품들이다. 4.3사건이나 무분별한 파괴로 인한 위태로운 자연의 이미지를 직접적인 표현 대신 풍경이라는 은유적인 방식으로 드러낸 것.

작가는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예술의 사회참여에 대한 이야기다. 김성룡은 예술의 사회참여를 지지한다. 그는 역사화든 풍경화든 작품을 통해 사회적 서사나 메시지를 풀어내 왔다. 그가 “그림은 사회 현실을 작가의 회화적 감수성이나 감각으로 걸러서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예술은 곧 삶의 표현”이라고도 덧붙였다.

작업의 주제는 ‘사회 폭력’. 직접 언급하든, 풍경으로 우회하든, 사회적 폭력을 작업의 중심에 놓았다. 이 경우 사회적 폭력의 피해자인 인물이나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룰 때가 메시지 전달력이 최대치가 된다. 주제를 직설화법으로 다뤘던 김성룡의 초기 작품에서도 기괴하면서도 섬짓할 정도의 폭력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풍경으로 우회하면 주제 전달력은 보다 약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은유로 돌아선 김성룡의 작품에는 날것의 비릿함이 온전히 유지된다. 방법이 어떠하든 메시지 전달력에는 변함이 없다. 어떻게 극복했을까? 여기에는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지극한 진정성’이 있다. 작가는 이를 “깊은 영성”이라고 소개했다.

“표피적인 이미지 너머에서 쏟아져 나오는 대상의 본질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지극하게 바라본다. 사물과 나, 서사와 내가 혼연일체가 될 때까지 봐야한다.”

역사화를 그리면서 유성볼펜을 사용했다. 사물에 대한 집중력을 강화하는 최적의 물성으로 유성볼펜이 선택됐다. 2000년대에 접어들고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볼펜과 목탄, 아크릴, 색연필 등 다양한 재료로 확대했다. 제주 4.3항쟁지 풍경을 그린 ‘섯알오름’, ‘새벽’, ‘공의 뜰’ 등의 작품에서는 사건 현장의 지푸라기나 먼지, 풀잎까지 물감에 섞어 사용했다. 깊은 영성으로 대상과의 소통을 시도하거나 현장의 자연물들을 작업의 재료로 끌어오는 등 사건을 구체화하는 이같은 노력들은 대상과의 혼연일체에 도달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론이자,대상의 본질 즉 심연에 다다르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의 표출이다. “고흐나 석도가 사물을 지극하게 바라보며 철저하게 자기화했듯 나 역시도 그런 것을 추구한다.”

20대초부터 마술적 리얼리즘을 기본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해왔다. 슬픔·공포·죽음·어둠으로 시작해 기쁨·환희·삶·빛에 대한 간절한 염원으로 끝을 맺는 이 간단치 않은 서사를 작가의 상상력과 리얼리즘으로 동시에 드러낸다. 초현실과 현실, 이성과 초이성, 실체와 비실체를 독자적 화풍으로 구축해가는 것. 여기에는 “화가는 대단하지 않을지언정 예술은 숭고해야 한다”는 철학이 개입돼 있다. 그가 충남 강경에서 요양할 당시의 삽화 하나를 떠올렸다.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가 도리깨질을 하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한 번의 도리깨질에 땅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화가로써 죽을 때까지 아마추어겠지만 평생의 정직한 노동으로 만들어진 할머니의 숭고한 도리깨질 같은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전시는 봉산문화회관 기억공작소에서 3월 31일까지. 053-661-35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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