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시호일', 마음을 데우는 따스한 차 한모금이면 “매일매일 행복”
'일일시호일', 마음을 데우는 따스한 차 한모금이면 “매일매일 행복”
  • 배수경
  • 승인 2019.01.2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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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도 취향도 없던 스무살 노리코
다도 배우며 일상의 가치 깨달아
日 국민엄마 ‘키키 키린’ 유작
사계절 풍경 보는 재미도 쏠쏠
 

일일시호일
 


‘빨리, 빨리’가 일상화된 요즘 세상에서 잠시 느림의 미학에 빠져 볼 수 있는 영화 ‘일일시호일’이 개봉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은 글자 그대로 ‘매일 매일 좋은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02년 출간된후 지금까지 40만부 이상 판매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저자 모리시타 노리코는 스무살때부터 지금까지 40년이상 다도를 하고 있다.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으로 느릿 느릿 전개되는 영화는 다도를 통한 한 여인의 성장기이자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정성껏 우려낸 차 한잔을 앞에 둔 듯한 여유를 선사한다.

이제 막 스무살이 된 덜렁대고 까칠한 노리코(쿠로키 하루)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 시절을 지나는 청춘 대부분이 갖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한다. 그녀의 사촌 미치코(타베 미카코)는 노리코와는 정반대로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어느날, 엄마는 부모님 세대 때는 신부수업의 필수코스였다는 다도를 배워볼 것을 권한다. 결국 그녀는 엄마의 표현에 따르면 ‘인사할 때도 남다른 기품이 느껴지는’ 다도선생 다케타(키키 키린)를 만난다. 다케타 선생은 왜 그렇게 하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지만 ‘머리로 기억하기보다는 몸이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는 가르침과 함께 찻수건 접는 법, 미닫이 문을 여는 법, 다다미를 걷는 법 등 무수한 동작들과 규칙들을 반복해서 알려준다.

노리코는 먼저 형태를 잡고, 거기에 마음을 담는다는 것의 의미도 처음에는 이해할 수가 없다. 잠깐 하다 말 것 같았던 다도를 그녀는 20년 넘게 배우며 삶의 중요한 순간을 통과한다. 어느 순간, 그녀는 차가운 물과 따뜻한 물의 소리가 다름을 깨닫게 되고, 24절기의 변화도 다 저마다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노리코가 어린시절 부모님과 함께 봤던 영화 ‘길’이 성인이 되어 다시 봤을 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것처럼 다도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이 영화 역시 관객에게 그렇게 다가갈 수도 있겠다.

‘일일시호일’은 “같은 사람들이 여러 번 차를 마셔도 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아요. 생애 단 한 번이다 생각하고 임해주세요” 같은 대사를 통해 ‘일생에 단 한번 뿐’이라는 ‘일기일회(一期一會)’를 이야기한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노리코가 ‘가족과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았던게 언제였던가’하며 자책하는 장면 역시 소중한 사람과의 함께 보내는 시간을 미뤄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을 준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한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을 것이다. 파랑새를 찾아 떠난 틸틸과 미틸처럼 우린 언제나 눈 앞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찾아 헤맨다. 그렇지만 진정한 행복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다.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며 흘려보낼 시간에 ‘비 오는 날 빗소리에 귀 기울이고 눈이 오는 날 눈을 바라보는 일, 여름에는 더위를, 겨울에는 몸이 갈라질 듯한 추위를 맛보는 것’이야말로 매일 매일 좋은 날을 만드는 비법이다.

차와 함께 즐기는 다과와 벽에 걸린 족자, 다도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들을 통해 계절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영화는 일본의 국민엄마로 불리는 키키 키린의 마지막 작품이다. 키키 키린이 연기하는 다케타 선생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실제 다도 선생을 섭외한 걸로 생각할 만큼 자연스럽다. 이제 더 이상 스크린에서 볼 수 없는 그녀가 전해 주는 삶의 지혜와 위로가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는다.

고리타분한 전통처럼 느껴졌던 다도가 어느 순간 노리코의 삶에 큰 깨달음을 준 것처럼 ‘일일시호일’은 대놓고 가르치려 하지 않지만 슬며시 마음 속으로 스며드는 무언가가 있다.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대사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실패해도 괜찮다는, 남과 비교하면서 조급해하지 말라는, 앞으로만 달려가지 않아도 좋다는 위로를 받게 된다. 인스턴트 커피에 길들여진 입맛이지만 오늘 하루 만큼은 제대로 우려낸 차 한잔을 앞에 두고 ‘나의 매일 매일은 어떤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게 만든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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