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戰士)의 날개
전사(戰士)의 날개
  • 승인 2019.01.2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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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2019년 1월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안타까운 소식이 올라왔다. 본인을 사촌동생이라 밝히면서,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형에 대한 사건 경위를 밝혔다. 아울러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관련법 제정’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원문 중 일부를 게재하고자 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故박용관. 제 사촌 형이 폭행을 당해 뇌사 상태에 빠져, 21일 사망진단을 받았습니다. 군인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폭행을 당했습니다. <중략> 제 이모 故 박용관의 어머니께서 남기신 글입니다. “6년 동안 역도 선수 활동을 해 왔고, 태권도 3단 단증을 가진 유단자, 그런 우리아들 용관이 <중략> 가해자의 무차별 폭행으로 쓰러진 내 아들을 바라보며 “넌 군인이라 신고 못하지?” 하며 현장을 떠났던 가해자 <중략> 어제 23일 우리 아들을 제 마음 속에 묻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우리가족은 이렇게 죽을 만큼 힘이 든데 가해자 쪽에서는 부모님도, 그 누구도 아무런 연락도 없습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군인들이 피해자가 되어야만 하는 사회의 통념을 바로잡기 위해 보호해줄 수 있는 법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중략> 억울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故 박용관(21)상병은 지난 12일 새벽 2시쯤 김해시 어방동의 한 도로에서 지나가던 취객 A씨에게 뺨을 맞고 쓰러져, 경계석에 머리를 부딪히며 뇌사 상태에 빠졌다.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2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지난 21일 사망 판정을 받고 말았다. 당시 고인의 친구가 따귀를 맞자, 그가 나서서 ‘죄송합니다’라고 하였으나, 취중의 A씨는 그런 그를 가격했고, 그대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고인은 육군으로 근무하면서, 부사관 2차 시험을 치르고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차라리 쌍방이 폭행하는 사건이라면, 단순한 분쟁에 그칠 수도 있었겠지만, 단 한 번도 항거하지 못한 탓에 더욱 안타까웠던 사건으로 남게 된 것이다. 대개 사병들에게 휴가가 주어지면 ‘음주와 폭행’을 금하라는 교육을 받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군인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사병이라면 더욱 그러해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인은 간부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시기라,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1세의 건장한 청년이 ‘열중쉬어’ 자세로 잘못한 것도 없이 ‘용서’를 구하는데도, ‘군인이어서 신고도 못하지?’라는 조롱까지 당한 치명적인 사건은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국가와 법을 지키기 위해서 입대한 박용관 상병을 지켜줄 ‘법’도 ‘국가’도 그 자리에는 없었다.

고인의 부모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들이지만, 심장, 폐, 간, 췌장, 신장(좌우) 6개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하고, 다섯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어찌 쉬운 결정이었겠는가. 국가와 가해자에 대한 원망과 상심이 얼마나 컸겠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만이 착하고 성실했던 아들의 유지(遺志)를 따르는 유일한 길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꿈이었던 한 청년이 이렇게 우발적인 사고로 떠날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 사병들도 직업군인이다. 군인에게 계급은 직업의 특수성에 따라 불가피한 부분이라 하더라도, 인권에 있어서 차별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성급과 사병들의 명령체계는 안보를 위한 방편이지, 삶의 가치일 수는 없다. 어찌 사람에게 삶의 가치가 다르다 할 수 있는가. 누구에게나 삶은 똑같은 무게의 가치를 지닌다. 다만 그 가치를 어떻게 소용되는 지는 본인의 ‘삶의 방식’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전사 한 사람 한 사람은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누군가의 소중한 가장이다. 그들이 가치 없는 일에 목숨을 지불할 그 어떤 이유도 있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비록 용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이지만, 매월 급여일이 있고,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그들은 비겁하지 않은 전사들이다. 군복무를 이리저리 기피하는 권력의 그늘에 있는 자가 아니라, 믿고 기다리는 가족을 생각하며,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훈련을 견뎌왔던 전사들에게 누구도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 국방의 의무라는 이유로 말이다. ‘박용관법 제정’은 전사들에게 무기를 쥐어주고 민간인과 싸우라는 뜻이 아니라, 무기를 쥔 민간인으로부터 군인을 지키려는 의미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고(故) 박용관 상병은 부사관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천사의 날개를 달고 마지막 휴가를 떠났다. 단 한사람의 전사도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우리는 그를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는 청천벽력처럼 시비의 덫에 대한민국 전사들을 잃을 수는 없다. ‘박용관법’의 제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여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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