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속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시간
화려함 속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시간
  • 황인옥
  • 승인 2019.01.2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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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창청춘맨숀 청년작가 윤보경
데이트 폭력·성매매 주제
조화·조명으로 꾸민 작품 ‘그날’
명징하고 말랑한 시선으로
인간의 이중성 비꼬아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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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경 작가가 자신의 전시작 ‘그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애써 눌러도 발산되는 것들이 있다. 사랑이 그렇고, 행복이 그렇다. 숨기기에 너무 찬란하여 결국 빛으로 화(化)한다. 그런데 돌아보면 세상에 숨겨도 드러나는 것이 비단 ‘사랑이나 행복의 감정’뿐일까? 꾹꾹 눌러도 세상의 진실 대부분은 속살을 드러낸다. 인내와 기다림의 터널을 빨리 통과하거나 더디 통과하거나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청년작가 윤보경(24)이 사랑을 한다면 어떤 태도를 취할까? 단언컨대 세상을 향해 세차게 외치는 스타일이다. “윤보경이 사랑에 빠졌노라”고. 그녀의 작품이 그렇게 말을 건다. “듣기 좋은 이야기든, 싫은 이야기든 거침없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묻어두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으니까요.”

작가는 우리시대 대표 청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의 삶을 막 시작했지만 미래는 회색빛이다. 연애, 취업, 결혼을 포기하는 삼포세대(三抛世代)로 대변되는 이 시대 보편 청년 앞에 놓여진 난제들로부터 그녀라고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외면하기보다 항변하는 쪽을 택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편한 이야기들을 작업으로 적극 끌어들이며, 불편한 진실을 사람들의 시선 위로 올려놓는다. “불편하지만 피하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는 것. “내 또래의 이야기가 선택되죠. 청년들이 느끼는 직접적인 문제거나 청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시대의 불편한 진실들이 주로 작업의 소재가 되죠.”

최근 시작한 수창청춘맨숀 전시 ‘포스트 공동체 ing 1’에는 3개의 작품을 출품했다. 이 시대 젊은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불편한 성(性) 문제를 주제로 했다. 영상작품 ‘I meat u’는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된 ‘데이트 폭력’이 주제다. 원피스 차림의 젊은 여성이 누웠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행위를 영상으로 담아 무한반복의 폭력에 노출된 여성의 상황을 은유했다. “데이트 폭력을 당한 어느 여성이 폭력을 당할 때 누구도 ‘참지 마라’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다는 인터뷰를 보고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당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작품을 만들었어요.”

출품 작 중 두 작품의 주제는 ‘성매매’다. 수창청춘맨숀에 대한 공간해석과도 관계된다. 수창청춘맨숀에 대구의 대표 성매매집결지인 자갈마당 인근에 위치해 있다. “수창청춘맨숀 인근은 성의 폭력성과 관계돼 있어요. 성을 돈으로 사고파는, 알고는 있지만 회피하고 싶어하는 이 불편한 이야기를 수창청춘맨숀에서 하고 싶었어요.”

그 중 한 작품이 ‘그날’이다. 작품에는 천막에 빈틈없이 조화를 꽂고 군데군데 형광등을 켰다. 창에 드리워진 작품 아래에는 남성의 인터뷰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스피커가 설치됐다. 성매매를 경험했던 남성의 서면 인터뷰를 받아 그와 무관한 남성이 읽게 한 후, 동시에 세 개의 목소리를 틀어놓았다. “화려한 조화와 형광등 불빛만 보면 그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은 보지 못할 수 있어요. 그러나 자세히 귀 기울이면 불편한 이야기들이 들려오죠.”

문제제기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작가의 일상에서 만나는 문제들을 그녀의 시선에서 포착한다. 이후 주변인과 다양한 매체를 리서치하며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참고한다. 주제 탐구가 깊어질수록 주제는 주관에서 객관으로 확장된다. 보편성을 확보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처음 제가 가졌던 의문이 너무 주관적이라고 느낄 때도 있죠. 그럴 때는 보다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며 중간지점을 포착하죠.”

작품을 보고 불편한 진실이 주제라고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불편한 이야기를 과격함보다 말랑말랑함으로 구사해서 그렇다. 작가는 자신의 주장을 평상심으로, 그러나 명징한 어투로 차근차근 풀어내는 스타일이다. 그녀가 “제 주장을 강요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성매매 업소에서는 성을 돈으로 사면서, 또 다른 장소에서는 고상한 척 하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나쁘다’,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강요하기보다 ‘나는 이 현상을 문제로 바라보는데 당신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앞으로도 다양한 문제들을 작품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22명의 청년작가들과 함께 진행하는 이번 전시는 3월 31일까지. 053-252-2566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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