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수상작 ‘가버나움’ …무책임한 부모를 향한 거친 경고
칸 영화제 수상작 ‘가버나움’ …무책임한 부모를 향한 거친 경고
  • 배수경
  • 승인 2019.01.3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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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12세 빈민가 소년 자인
딸 강제로 시집 보낸 부모 고소
지구촌 곳곳 비극에 경종 울려
비슷한 경험가진 인물 캐스팅
다큐같은 극영화 진정성 높여
가버나움
 

“부모를 고소하고 싶어요. 나를 태어나게 했으니까요”

영화 ‘가버나움’은 이렇게 충격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법정에 선 아이와 부모.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들이 이 곳에 설 수 밖에 없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배경은 레바논의 빈민가. 자인(자인 알 라피아)은 동생 사하르(하이타 아이잠)의 강제 결혼(말이 결혼이지 팔려가는 거나 마찬가지다)에 반발해 집을 뛰쳐 나온다. 집이나 집 밖이나 보호받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가출 후 불법체류자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과 그녀의 아들 요나스를 만나며 잠시 가족의 정을 느끼는 듯 하지만 그 평화로움도 오래 가지 못한다. 갑작스러운 라힐의 부재에 요나스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인의 모습은 그의 부모와 비교가 되면서 더욱 애잔하다. 모습은 아이지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은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다.

‘가버나움’은 어른의 시선이 아닌 철저하게 자인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무표정하거나 혹은 화난 표정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자인의 모습은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 같다.

영화 속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할 사랑스런 존재가 아니다. 어른들이 무책임하게 세상에 내놓은 아이들은 집안 살림을 책임지고 불법적인 심부름을 하고 때로는 팔려간다.

자인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류’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는 출생기록도 없다. 생년월일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나이는 열 두 살이 아니라 열 두 살 쯤으로 짐작될 뿐이다. 동생 사하르의 죽음에 충격받고 그 남편에게 위해를 가한 자인을 면회 온 엄마는 “신은 하나를 가져가면 하나를 돌려준다”며다시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전한다. “뱃 속에 있는 아이도 나처럼 될 거예요. 아이를 그만 낳게 해주세요.”라는 자인의 절규 앞에서 관객들 모두 탄색을 내뱉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법정에 선 부모는 자신도 피해자라며 항변한다. “죽을 힘을 다해 사는게 비난받을 일인가요? 나처럼 살아봤나요? 저 외엔 누구도 저를 비난할 수 없어요”

무책임하게 보이던 부모 역시 자인과 사하르와 같은 삶을 살아왔으니 그들 역시 희생자인지도 모른다. 사하르의 남편 역시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실제 레바논에서는 부모가 동의를 하면 9세부터 결혼이 가능하다.

가버나움에 출연하는 배우들 대부분이 영화 속 역할과 비슷한 환경과 경험을 가진 실제 난민이라는 걸 알고 보면 더 놀랍다. 그래서 그들의 연기가 연기로 느껴지지 않는지도 모른다. 주연인 자인은 시리아 난민 소년으로 베이루트에서 캐스팅됐고 라힐 역시 불법체류자다. 영화촬영 중 실제로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감독인 나딘 라바키는 레바논 출신 영화감독으로 영화 속 자인의 변호사로 등장한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의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예수가 제 2의 고향으로 여기며 각종 기적을 행한 도시였으나 결국은 모든 것이 사라지고 폐허가 된 공간이다. 어쩌면 선택의 여지없이 태어나 지옥같은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자기가 발을 딛고 있는 그곳이 가버나움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영화 내내 웃지 않던 자인의 미소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어딘가에는 여전히 책임지지 못할 아이를 낳고 버리고 팔아넘기고 학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버나움’은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15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다음달 25일에 열릴 아카데미상시상식에서는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올랐다. 가슴 먹먹한 울림과 함께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영화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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