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동성아트홀
[문화칼럼] 동성아트홀
  • 승인 2019.02.0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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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세계 최정상의 바이올리니스트 ‘이차크 펄만’에 대한 다큐 영화 ‘이차크의 행복한 바이올린’ 제목처럼 보는 내내 행복하다. 그런데 예술가의 고뇌도 다루었다면 더 좋았으리란 생각이다. 너무 양지쪽만 비춰 한쪽 뺨이 조금 따끔거린다.

2차 세계대전 말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를 배경으로, 무솔리니 파시스트 군을 상대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는 영문학도 밀톤. 전쟁의 와중에 사랑하는 여인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청춘의 모습을 그린 영화 ‘레인보우 나의사랑’.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알폰소 쿠아론’의 어린 시절을 그린 자전적 작품 ‘로마’ 이 영화는 멕시코시티 내 로마구역의 한 중산층 집 가정부 클레오의 시선으로 바라본 모습을 담았다. 격동의 시간(한 나라와 가정, 그리고 클레오 자신에게)을 흑백의 화면에 묵묵히 담아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린북’은 1960년대 인종차별이 특히나 심하던 미국남부로 연주여행을 떠나게 된 흑인 스타 피아니스트와 그의 운전사로 채용된 이탈리아계 백인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대단히 지적인 피아니스트와 달리 입담과 주먹으로 살아가던 운전사. 이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캐미의 농도가 점차로 짙어지는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인다.

세계 3대 콩쿠르인 2015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본선 진출자 12명의 8일간의 모습을 담은 다큐 영화 ‘파이널리스트’ 휴대폰, 노트북 등을 맡긴 채 격리된 공간에서 본선 과제곡을 준비하는 젊은 연주자들의 모습을 담담하고 따스하게 비춘다. 이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회 칼럼에서…^^

이상은 지난 1월 한 달간 내가 감상한 영화들이다. 예술 영화들은 일반 개봉관에서 보기 쉽지 않다. 상영 기간이 매우 짧다. 횟수도 고작해야 하루에 한두 번, 그마저 시간대도 좋지 않아 놓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들만 상영하는 고마운 극장이 있다. 예술영화 전용관 ‘동성아트홀’ 이다.

꽤 알려진 이야기, 한때 동성아트홀은 폐관의 위기에 처했다. 모 의사 선생께서 이 극장을 인수하여 리모델링 후 재개관했다. 극장 홈페이지 대표의 인사말 “지나간 역사를 말하고 싶지 않다. 너무 외로웠으니까. 미래를 말하고 싶다. 벅차게” “동성아트홀에 대한 많은 분들의 지지와 격려. 이것은 다양성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져야 재개관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한 심적, 물질적 어려움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예술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말이다.

동성아트홀은 좋은 영화를 상영한다. 그리고 이런 영화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극장이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영화를 만든 스태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 봐 주기를 권한다. 이것이 영화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자세라며--- 이것까지 끝나야 객석 불을 켠다. 영화 보는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이곳을 찾는 관객들의 얼굴에는 이것을 넘어선 더 큰 무엇이 비친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좋은 영화를 만난 기쁨과 좋은 공간에 함께한다는 뿌듯함 그리고 이것들의 ‘화학작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극장의 마지막 회 상영 시간은 7시 전후라 평일엔 일로 바쁘기도 하지만, 맞추기 어려운 시간대다. 그래서 주로 주말에 이곳을 찾는다. 극장을 찾을 땐 대체로 걸어서 간다. 집에서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돌아올 땐 걷다가 다리 아프면 중간에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정도만 걸어도 제법 운동이 된다. 오가는 길의 구경거리는 덤이다. 게다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맛 집들. 동남아나 인도, 터키 등의 음식들도 이런 기회에 맛본다. 바로 앞의 그 유명한 추억의 교동시장 먹거리도 아직 건재(?)하다.

주중엔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다. 그래서 주말엔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가끔씩 원근으로 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여의치 않을 땐 이런 시간을 통해서 방랑자의 기분을 낸다. 돈이 많이 들지도 않고 시간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굉장히 자유롭다. 유유자적 걷다가 볼거리 있으면 구경도 하고, 배고프면 눈에 띄는 메뉴를 고른다. 게다가 여운이 길게 남는(이것이 중요하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매우 재미있지만 대부분 휘발성이 강하다) 영화까지 보고나면 하루가 꽉 찬 듯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앞으로도 좋은 다양성 영화는 이곳에서 계속 될 것이다. 이것을 담아내는 이 행복한 공간을 찾는 것은 나의 ‘소확행 시리즈’의 중요한 한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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