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 최정상에서 십여분…소중한 사람이 먼저 떠올랐다
킬리만자로 최정상에서 십여분…소중한 사람이 먼저 떠올랐다
  • 박윤수
  • 승인 2019.02.07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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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200m 前 길만스포인트
이곳만 와도 등정확인증 수여
바람도 없는 정상 우후루 피크
가족에 ‘등정 성공’ 메시지 보내
고소증 호소에도 낙오자 없어
막막하게 느껴졌던 아프리카
‘우리와 다를 바 없네’ 싶더라

박윤수의 길따라 세계로, 킬리만자로<4.끝> 정상등정

킬리만자로산 5일째, 킬리만자로를 대표하는 단어는 뽈레뽈레(POLE POLE)이다. 우리말로는 천천히, 천천히. 고산에서는 서두르면 안 된다. 가능한 천천히 충분한 호흡을 하고 걸어야 한다. 칠흑 같은 밤을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앞사람 발꿈치만 보고 걷는다.

화산재로 이루어진 등정길은, 잘못 밟으면 자꾸 미끄러진다. 갈지(之)자로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일렬로 서서 진행한다. 메인가이드가 앞서고 보조가이드 3명이 뒤따른다. 한 시간여를 올랐을까 잠시 서서 숨을 돌리는데, 손끝 발끝을 파고드는 추위에 서 있는 것도 괴롭다. 지난밤, 잠을 설치며 고소증으로 등정 포기하는 꿈을 몇 번이나 꾸었는데 다행히 고소증상은 없다. 일행 중 2명이 고소증상을 호소하며, 보조 가이드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킬만스포인트일출-3
길만스포인트의 일출.


아침 7시경 일출 때까지 이 추위를 견디며 한걸음, 한걸음 정상을 향해 걸어야 한다. 어둠 속 앞사람의 뒤만 쳐다보고 오르는 등산길, 추위에 손과 발이 동상에 걸릴 것 같다. 천천히 천천히를 되뇌며, 열 걸음에 한 번 쉬고, 이렇게 밤을 걷어내며 길만스포인트(5,681m GILMANS POINTS)를 향했다.

통상 자정에 시작되는 정상등정의 여정은 일출시각에 길만스포인트를 거쳐 한 시간쯤 걸어 스탠리포인트를 지나 또 한 시간 가면 만년 빙하와 눈에 덮여 있는 우후루피크(5,895m)에 오르게 된다. 정상 등정 후 곧바로 하산, 키보 산장을 지나 다시 호롬보 산장까지 전체 21km(약 14~18시간 소요) 구간으로 가장 힘든 일정이다.

드디어 동쪽 하늘이 밝아진다. 길만스포인트 바로 아래 바위틈에서 일출을 본다. 킬리만자로 산을 둘러싸고 걸쳐 있는 양털 같은 구름 위에 퍼지는 붉은 기운, 온몸에 따뜻한 태양의 빛을 받는다. 밤새 얼어 있던 몸이 녹으며 피로가 몰려온다.

 
킬만스포인트일출-2
길만스포인트의 일출 후 풍경.


장엄한 일출! 태양 빛의 따스함이 온통 킬리만자로 정상에 퍼진다. 잠시 숨을 돌리고 길만스포인트에 올라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이곳까지 등정한 사람들에게 킬리만자로산 등정 확인증을 준다고 한다. 아쉽게도 일행 중 고소증상이 심한 이는 보조가이드들과 곧바로 하산조치 되기도 한다.

여기서 우후루 피크까지는 약 200m 더 올라야 한다. 급경사 길이 아니라 완경사로 1시간 30분쯤 걸린다고 한다. 산정상의 평평한 소로 길을 걷다 보니 걸음이 빨라진다. 순간 가슴이 턱 막힌다. 아차, 천천히 걸어야 하는데……. 세 번 들이켜고 한 번 내뱉으며 한 시간여 만에 스탠리포인트를 거쳐 우후루피크, 아프리카 대륙의 최정상에 올라섰다.

 
우후루피크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우후루피크에 오른 필자.


우측으로 수십 미터 두께의 만년 빙하가 열병하듯이 펼쳐져 있고, 수백 미터 낭떠러지 건너편 봉우리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생각보다 바람은 없다. 정상에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듣고자 핸드폰을 켜니 시그널이 많이 잡힌다.
 
우후루피크-2
우후루피크 아래 펼쳐진 만년빙하.


4천m를 넘어서는 핸드폰이 불통이었는데, 이곳 정상에서는 통화가 된다. 정상에 앉아 집 식구에게 정상 등정완료 메시지를 보내니 곧바로 답신이 온다. 정상 사진을 보내고 싶지만, 데이터 차단을 해 놓아 이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십여 분 정상에 머물고는, 다시 온 길을 되돌아 하산한다. 일행 중 5명 정도는 고소증상으로 인한 고통을 느끼고 있고, 5명 정도는 그런대로 견딜 만한 것 같다. 정상에서 다시 스탠리포인트, 길만스포인트를 거쳐 하산 길에 나선다.

돌아가는 길은 오를 때의 상황과 많이 다르다. 현무암이 잔자갈이 되고 또 모래처럼 으스러져서 발을 내디디면 자꾸 미끄러진다. 심한 곳은 슬라이딩하듯이 미끄러져 내려가야 한다. 아침 햇살을 받아 상승기류에 흙먼지가 앞을 가려, 일행들과 멀찍하게 떨어져, 스키 타듯이 미끄러지며 내려간다. 스패츠가 없다면 신발 속이 잔자갈과 모래로 가득 차, 많이 힘들 것이다. 킬리만자로 하산길의 필수품은 바로 스패츠다.

자정에 시작된 킬리만자로 등산은 숙소에 도착한 정오에 끝이 났다. 꼬박 12시간의 등산과 하산 그리고 고소증상에 지친 몸을 잠시 쉬게 하고, 간단한 누룽지 죽으로 점심을 하고 한시 경 하산 길에 나섰다.

심한 고소증상에 힘들어하는 사람은 키보산장에서 조금 더 휴식을 취한 후 내려오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들은 바로 호롬보 산장으로 내려갔다. 약 3시간여를 걸어 호롬보 산장에 도착, 사무실에 하산완료 체크를 하고 숙소를 배정받아 짐을 풀었다. 정상 등정용 동절기 등산 옷들은 벗어 짐 정리를 하고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6시경 저녁식사 후 바로 침낭에 들었다. 밤 12시경 갈증에 잠깐 깨고는 아침 6시까지 깊은 잠에 빠졌다. 이번 산행 중 가장 달콤한 밤이었다. 나뿐 아니라 일행 모두 아침기상 때까지 단잠을 잤다.

킬리만자로산 6일째, 오늘은 서둘러야 한다. 호롬보산장에서 만다라산장을 거쳐 마랑구게이트까지 전체 하산 일정은 약 17km(5~7시간)이다. 점심 전에 도착해서 점심식사 후, 모시(Moshi)를 출발해 아루사(Arusa), 탄자니아 국경을 지나 케냐 나이로비까지 가야 하는 날이다.

오전 7시 30분 모두 가벼운 발걸음으로 호롬보산장을 출발, 하산길에 나선다. 다행히 전원 등정증을 받을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 만다라 산장에서 목을 축이고 우림지대를 거쳐 마랑구게이트에 도착하니 12시50분이다. 계획보다 1시간쯤 늦었다.

마랑구공원에서 도시락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가이드 및 포터 팁을 계산(총 100$)했다. 계산이 끝나고 난 뒤 가지고 간 옷가지 중 티셔츠, 겨울용 등산바지, 심지어 등산화 등 조금은 낡았거나 혹은 미리 준비한 옷들을 수고한 포터, 요리사들에게 나누어 주는 시간도 가졌다.

이제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이별의 인사를 한 후 버스를 타고 귀향길에 오른다. 모시를 거쳐 아루사의 임팔라호텔에 도착해 국경통과행 버스로 갈아탔다. 케냐 나망가 국경을 지나 밤10시 쯤 나이로비 사파리파크호텔에 도착했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마사이어로 맛있는 물, 차가운 물이라는 뜻이다. 케냐 중남부의 해발고도 1천676m의 고원에 있으며 적도에서 남쪽으로 150km 떨어져 연평균 기온은 17.9℃ 정도다. 연강우량은 920mm 내외로 3∼5월이 우기이다.

사파리파크호텔은 한국 파라다이스 그룹이 운영하는 5성급 리조트로 나이로비 최고,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넓은 잔디 광장과 훌륭한 조경을 자랑하는 정원을 갖추고 있어 도심 속 휴양 호텔로 각광받고 있다. 버스에서 하차하면서 로비 입구에서 25년만에 반가운 대학 동아리 친구를 만났다. 대학 졸업 후 아프리카 대우 지사에 나갔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이곳에서 정착해서 사업을 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무척 반가웠다. 같이 살아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없이 잠시 인사만 하고, 일행과 함께 늦은 시간 호텔연회장에서 야마초마(각종 야생동물고기 숯불구이) 식사를 했다. 케냐 각 부족의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민속춤과 아프리카 현대무용 등으로 구성된 사파리 캣츠 쇼를 보며 바비큐와 맥주로 킬리만자로 등정 축하연을 즐겼다.

다음날 아침 나이로비 국제공항으로 이동해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현지시각 오전10시30분 한국행 비행기가 출발한다. 공항을 이륙한 후 서너 시간, 어느덧 비행기는 히말라야 산군을 넘고 있었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세계의 지붕을 보는 경이로움, 여행의 대미를 귀국길 비행기에서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과 석양에 물든 하얀 눈을 이고 있는 히말라야 산군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새벽 4시50분, 13시간의 비행 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서울은 아직 장마 중이었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초원, 마사이족. 우리가 생활 속에 쉽게 접할 수 없는 단어들이다. 이번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산행을 통해 본 그네들의 삶은, 막연히 생각했던 가난과 무질서로 대표될 것은 아니었다. 정갈하고, 열심히 삶을 추구하고, 여유롭고, 깨끗한 환경이 있으며 전통의 삶에서 조금은 비켜서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들 또한 자본주의에 물들어, 돈을 추구하고, 여행객을 상대로 적당한 바가지를 씌우고, 나눔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반적인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삶을 속속들이 볼 수는 없는 주마간산 격인 산행 일정이었지만, 같이 며칠을 부대끼며 함께 생활한 그들의 생각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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