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 에세이 ‘회복하는 가족’… 망설임 끝에 그는 ‘빛이 있는 삶’을 선택했다
오에 겐자부로 에세이 ‘회복하는 가족’… 망설임 끝에 그는 ‘빛이 있는 삶’을 선택했다
  • 김광재
  • 승인 2019.02.0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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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안고 태어난 큰아들 히카리
‘환자 가족’ 입장서 수년간 글 연재
병들고 회복하는 과정 속 삶 고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겐자부로
그의 삶이자 문학이나 다름없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 엿볼 기회
책사진
오에 겐자부로 지음/오에 유카리 그림/양억관 옮김/걷는책/280쪽/14,800원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에세이집 ‘회복하는 가족’(걷는책 2019)에는 1990년부터 1995년까지 한 의료분야 계간지에 그가 ‘환자 가족’의 입장에서 연재한 글 20편이 실려있다. 일본에서는 1995년에 단행본으로 나왔으며 한국에는 올해 번역 출간됐다. 그는 지적 장애가 있는 큰아들과 아내, 여동생, 남동생, 할머니 등 가족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차분한 톤으로 들려주고 있다. 삽화는 모두 저자의 부인 오에 유카리의 그림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스물여덟 살이던 1963년 첫아이를 얻었다. 그 아이는 두개골에 선천적 이상을 가지고 태어났다. 의사들은 아이가 수술로 목숨을 건진다 해도, 보고 듣고 생각하는 능력이 없이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고민 끝에 그는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를 살려 키우겠다는 결심을 했고, 모리야스 선생에게 수술을 받은 아이는 새로 삶을 시작했다. 부모는 눈이라도 보였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아이에게 빛이라는 뜻의 히카리(光)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삽화-03
히카리와 주치의 모리야스 선생.


부모는 아이가 말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그 새의 이름을 불러주는 NHK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녹음한 레코드를 몇 년간 들려주었지만, 아이가 스스로 말을 건 적은 없었다. “아들이 기타카루이자와(나가노현의 휴양지)에 도착한 그날 저녁, 아내가 산장 청소를 하는 동안 자작나무 숲 아래 목마를 태우고 걸어가는 우리 머리 위에서 불쑥 들려오는 아주 청명한 그 산새소리에 “뜸부기입니다”라고 했다.”(103쪽) 그렇게 처음으로 의미가 있는 대화를 시작한 그는 지적 장애와 뇌전증에 시달리면서도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작곡가가 됐다.

하지만 히카리가 태어났을 당시에는 이런 기적 같은 일을 기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망설였고, 그 기억은 여전히 민감한 통점으로 남은 듯하다.

 
삽화-02
키타루이자와에서 히카리, 나쓰미코(맏딸), 사쿠라오(둘째 아들).


“처음 한 장에 젊은 소설가가 망설이던 끝에 마침내 아들의 수술을 결의했다는 한 줄의 문장이 다른 글 속에 묻혀 있었다. 나는 감정과 비평을 억제한 그 한 줄의 문장에 가슴이 덜컹했다. 히카리는 수술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젊은 아버지는 한동안 수술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사실로 모리야스 선생의 일기에 남았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만일 인간을 넘어선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 앞에서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망설임을 거쳐 마침내 결의함으로써 나는 다시 한 번 태어났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23~24쪽)

히카리의 주치의 모리야스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얼마 안 되어 오에 겐자부로는 그 부인으로부터 복사물 석 장을 우편으로 받았다. 그것은 고인의 일기장에서 그와 아들에 관한 내용이 적힌 부분을 복사한 것이었다. 그 첫 장에 20여년 전 ‘젊은 소설가’의 망설임이 건조한 한 줄의 문장으로 기록돼 있었던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미 히카리가 태어난 이듬해에 발표한 소설 ‘개인적인 체험’(1964)을 통해 자신의 ‘망설임’을 솔직히 세상에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사의 일기에서 그 ‘망설임’을 맞닥뜨리자 다시 죄책감과 부끄러움 속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는 곧 ‘나는 다시 한 번 태어났다는 느낌’으로 회복을 경험한다.

 
부부와세자녀
오에 겐자부로의 부인 유카리가 그린 부부와 세 자녀.


그는 이 책의 첫 번째 글에서 “나는 여기 적어 나가는 이 글의 일관된 주제로서, 인간이 또는 그 가족이 병에 걸리고 거기서 회복해 가는 과정에 진정으로 인간다운 기쁨과 성장과 달성이 있다고 믿는다.”(10~11쪽)라고 적고 있다. 그가 말하는 ‘다시 한 번 태어났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그런데 그가 말하는 ‘회복’은 단순히 사고나 질병 이전의 건강한 상태로 되돌아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지적 장애를 지닌 아들이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괴로운 분’이라고 느끼는 것에서 그는 ‘회복’을 감지한다. 회복할 수 없는 병과 죽음을 향한 노쇠 속에서 “이른 봄의 햇살처럼 짧지만 따스한 회복이 있기에 가족에게 활력이 샘솟는 것이다.”(11쪽)라고 그는 말한다. 삶이란 지병처럼 어느 순간 다 나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늘 짧고 따스한 회복을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히카리가 있는 삶을 선택한 순간부터 20여 년간 오에 겐자부로의 문학은 장애를 가진 아이의 성장과 아이와 성장하는 부모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그의 삶과 문학의 중심에 히카리와 가족이 있는 셈이다. 아마 그 이야기를 젖혀두고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그는 마치 거짓말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의 문학은 회복하는 가족을 중요한 토양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1994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일본 작가로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벨상 수상 이후, 천황이 문화훈장과 문화공로상을 수여하려 하자, ‘전후 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는 하자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인정하고 자신을 수상자로 선정한 천황의 권능을 거부한 것이라고 밝혔다.

오에 겐자부로와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의 대담을 담은 책 ‘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포노 2018)에는 오에 겐자부로의 이런 말이 실려있다. “내게 소설은 이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쓰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지금껏 부모로서 아들에게 사회와 소통하는 법을 알려 주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면서 아들을 키워 왔는데, 이제 목적을 이루었으므로 내 일은 끝났다. 아들과 함께 생활하는 삶에 비하면 소설은 내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 그는 장애를 가두고 밀쳐내는 사회을 향해 “우리 집이 장애를 지닌 큰아들을 필요불가결한 구성원으로 하여 생활을 꾸려 나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스산한 바람만 부는 가정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큰아들을 배제해버렸다면 우리 가족의 연결고리는 아마도 아주 느슨해졌을 것이다.”(176쪽)라고 말한다.

사족을 달자면, 오에 겐자부로의 경우는 오에 겐자부로의 경우다. 장애의 정도도, 각 가정의 사정도 모두 제각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10여 년 전 영화 ‘말아톤’이 히트를 칠 때 한 발달장애아동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자폐, 발달장애에 대한 관심은 곧 사그러들겠지만, 당신은 왜 ‘초원이 엄마’처럼 하지 않느냐는 은근한 비난은 오래 가겠지요. 팔짱 낀 사람들로부터 말이에요.”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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