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의 연(緣)
재회의 연(緣)
  • 승인 2019.02.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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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흔히 안면인식장애로 알려진 안면실인증(prosopagnosia)은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증상이나 장애를 일컫는다.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전화기를 찾아 헤매거나, 해야 할 일을 깜빡하고 잊어버리는 경우 치매가 아닐까 우려해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신경정신과 관련한 증세들에 대해서 걱정을 한 것들이 한낱 기우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기 십상이다. 어느 정도의 부족한 눈썰미와 건망증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타인의 얼굴이나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의 얼굴마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 실인증이며, 보통 이 증세는 색채나 물체나 장소에 관한 실인증까지 수반한다. 따라서 생활에 불편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필자도 사람들을 잘 알아보지 못해서 곤혹을 치르는 경우가 많은 편에 속한다. 하물며 여러 회에 걸쳐서 만난 적이 있었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해서 상대를 민망하게 한 적도 있다. 예전에 맛있게 식사를 했던 집이 불현 듯 생각나서 작정하고 집을 나서면, 핸들을 잡은 채 우주미아가 되어버린 심정으로 출발조차 못하고 멈춰선 기억도 있다. 때 아닌 고백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오늘, 새롭게 만난 인연 때문이다.

한때 아꼈던 동생 J가 있었다. 천성이 온화하고 친절한 성격이라 형아우 할 것 없이 그는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그를 나쁘게 평하는 이를 여태 본 적이 없다. 그런 그와 필자사이에 주변 사람들, 혹은 우리로 인해서 몹쓸 오해와 억측이 만들어졌고 그와 자연스럽게 연락을 하지 않은 채 수년을 보냈다. 가끔 J가 보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먼저 연락을 취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K와 L과 동행에서 필자를 찾아왔다. 악수를 할 때 손끝에 전해지는 온기는 이미 과거의 기류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제야 한번도 J를 탓하거나 미워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의 인연은 어디에서 비롯되고 어디에서 갈음되는 걸까. 그와 나 사이에는 오래된 인연답게,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존재해왔다. 그들과 우리의 감정들이 유영하는 동안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 상처로 말놀이에 우리는 서서히 지쳐갔음은 물론이다. 사람의 마음은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닌데, 굳이 말을 통해서야 믿음을 가지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어떤 이는 좋은 기억들만이 남아있고, 정작 나쁜 기억이 전혀 남아 있지 않는 경우, 그리고 앙금처럼 나쁜 기억만 생각나고 좋은 기억을 떠올려보려 해도 크게 없는 경우가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함께 어울려 지내다보면, 기쁜 일과 슬픈 일, 안타까운 일들이 병존하게 마련이다. 어떻게 좋은 일, 나쁜 일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어떤 이는 온통 필자가 모욕당한 일과 치가 떨리는 기억만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스스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두 번 다시 악연과 얽히고 싶지 않은 것은 본능이다. 이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이 쉬운 거라면 사람의 관계에서 갈등과 분열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때는 가슴이 느끼는 것이 정답일 경우가 많다. 눈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내는 것은 대체로 크게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천성적으로 눈썰미로 없고 사람을 알아보는 데는 전병인 필자의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본능에 충실한 판단이 옳을 때가 많았다.

인간관계를 맺을 때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이나, 경우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사람조차도 스스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른’이 ‘반성’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힘든 일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하고 화해를 하는 경우는 많이 봐왔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모습으로 바꾸려 해선 안 된다. 서로간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답이다.

오늘 만난 J 그리고 동석했던 K와 L을 지켜보는 동안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것은 한 술의 가치도 덧대지 않은 자연스러움이었다. 새로운 인연은 아니지만, 실인증에 가까운 필자에겐 새로운 인연만큼이나 즐겁고 설레는 시간이었다. 사람을 곁에 두고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것이 현대사회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인연이라는 것이 시작은 있으나, 그 끝은 자신할 수 없겠다. 처음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물론 악연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는 말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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