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 한국 근현대 100년을 관통하다
대구미술관, 한국 근현대 100년을 관통하다
  • 황인옥
  • 승인 2019.02.1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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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날씨 맑음展
예술적 시야로 접근한 3·1운동
기록·기억·기념 키워드 맞춰
작가 14인 사진·영상 100여점
근대역사·문학관 아카이브도
전선택展
전쟁 직후 정서 친근하게 묘사
사실 묘사 두드러진 1950년대
추상성 키운 최신작 ‘비교 재미’
80년간 이어져 온 화업 한눈에

 

대구미술관의 올해 첫 전시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와 대구를 대표하는 원로화가 전선택전이다. 두 전시 모두 대한민국 근·현대 100년을 관통하는 전시로, 대한민국 3·1운동의 정신과 대구미술의 지류를 찾아가는 기획이다.
안창홍작-아리랑
안창홍 작 ‘아리랑’

◇ ‘1919년 3월 1일 날씨 맑음’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에 따라 새해 벽두부터 각계각층에서 ‘3·1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자’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구미술관도 새해 첫 전시로 ‘1919년 3월 1일 날씨 맑음’전을 기획해 3·1운동을 돌아본다. 다양한 행사들 중에서 대구미술관의 3·1운동 해석 포인트는 무엇일까? 전시 작품들에 힌트가 있다.

작가 김보민은 작품 ‘렬차-2018’에서 근대 인천 개항의 역사부터 현재 남북열차연결 논의까지 대한민국 100년의 역사를 드로잉한 지도를 출품했다. 개항과 3·1운동 이후 100년의 역사와 여성, 작가의 이야기까지 포괄하고 있다. 작가 조동환과 조해준 부자는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까지의 정읍지역의 교육변천사를 지역 출신 교육자의 기억을 통해 밝혀내고 있다. 대구 역사도 심층적으로 다뤄진다. 대구문학관의 아카이브를 타이포그래피와 결합해 대구 문학을 통한 3·1운동을 반추한다.

이처럼 대구미술관은 미술관이라는 정체성에 맞춰 3·1운동을 계몽적으로 접근하기 보다 예술적인 부분에 집중한다. 또한 거대 담론보다 빈부와 계층, 신분을 초월했던 3·1운동의 핵심 정신에 접근해 근현대사를 거치며 살아온 각계각층 민중들의 삶을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의 시선으로 녹여낸다.

전시를 기획한 권미옥 전시 1팀장은 “현재의 시점에서 3·1운동을 기억하고 미래를 투사해 보고 싶었다”며 “3·1운동 대한 기억이 상흔만이 아니라 역사를 비추는 따뜻하고 맑은 햇살과 같은 양분으로도 작용하고 있음을 전시 제목을 빌어 표현하고자 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이우성-아무도내슬픔
이우성 작 ‘아무도 내 슬픔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전시는 ‘기록’, ‘기억’, ‘기념’을 키워드로 구성된다. 참여작가는 강요배, 권하윤, 김보민, 김우조, 바이런 킴, 배성미, 손승현, 안은미, 안창홍, 이상현, 이우성, 정재완, 조동환 + 조해준 등 14명이다. 회화 및 사진, 설치, 영상 등 100여 점의 작품뿐만 아니라 대구근대역사관, 대구문학관과 협력해 ‘대구아리랑’, ‘일제 강점기 대구문학작품과 문인들의 활동’ 등 당시 사회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아카이브도 소개한다.

먼저 ‘기록’에서는 근현대사를 미시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조선 황실의 비극적 종말을 다룬 이상현의 다큐멘터리 ‘조선의 낙조(2006)’,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까지 정읍 지역의 교육변천사를 다룬 조동환, 조해준 부자의 ‘정읍: 일제강점하의 식민통치 시기부터 한국전쟁까지(2005~2017)’ 등을 만날 수 있다.

‘기억’은 전쟁과 분단, 이산 등이 예술가를 포함한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대변한다. 김보민은 ‘렬차(2019)’에서 서울과 평양,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열차를 상상하며 손승현은 ‘삶의 역사(2003~)’ 프로젝트에서 우리나라의 정치적, 역사적 격변으로 인해 타국에서 살고 있는 재외 동포의 초상 사진과 그들의 목소리를 병치해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환기한다.

‘기념’은 100년의 역사와 그 시간을 보내온 자연과 사람에 대한 오마주이자 사라진 사람에 대한 연가다. 안창홍의 ‘아리랑(2012)’은 역사 속에 사라진 사람들을, 이우성의 ‘아무도 내 슬픔에 귀기울이지 않는다(2011)’는 시대를 걸어가는 청춘을, 안은미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2010)’은 100년 역사를 지낸 할머니의 몸을 기념한다. 전시는 5월 12일까지 2,3 전시실에서. 053-803-7882
 

전선택-성하
전선택 작 ‘성하(盛夏)’

◇ ‘전선택’전

97세에도 여전히 현역인 그에게 작품에 대해 묻는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의 모습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여전히 식지 않는 작업에 대한 열정, 변화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 그럼에도 놓치지 않는 순수성은 100세를 앞둔 노(老) 화백을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그 나이면 노련할 만도 한데 회고전에서 만난 그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전시 소감을 묻자 “쓸데없는 그림을 너무 많이 그렸다는 생각이 든다”며 겸손해 했다. 그 겸손함이 작품의 정서를 ‘따뜻함’으로 이끄는 토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최근 대구미술관에서 시작한 전선택 화백의 회고전 개막식에서 작가가 강조한 단어는 ‘감동’이었다. ‘감동’을 줄 때 만이 ‘작품’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다는 철학이었다. 그 자신 작품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도 ‘감동’이라고 했다. “감동을 주지 못하면 그냥 그림이지 작품이라고 할 수 없어요.”

화업 80년을 돌아보는 회고전이어서 그럴까? 1950년대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 작품까지를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의 평전을 읽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작품은 저의 내면세계가 투영된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작품들이 작가의 인생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그는 평북 정주 출신이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 일본 가와바다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1946년 월남해 1954년 대구에 정착했다.

고향 떠난 실향민의 고독은 초기 작품에 고스란히 배어난다. 전쟁 직후의 물자난으로 재료 구하기가 버거워 소묘와 수채화에 집중했지만, 작품에 배어나는 정서는 오히려 따뜻했다. “떠나오기 직전의 고향 이미지를 표현”했기 때문. 소재는 일상에서 만나는 친근한 대상들이 주가 됐다. 닭, 청어, 말과 수레 등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전선택-산
전선택 작 ‘산’

초기작품과 후기 작품을 비교하면 확연한 변화가 읽힌다. 색감이 파스텔톤으로 부드러워지고, 대상의 핵심만 포착하는 추상성도 강화했다. 대구에 정착하고 대륜중, 영남대 등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생활이 안정된 때문이기도 하지만, 변화에 대한 열망의 표출이기도 했다. 작가는 “억지로 변했다기보다 자연스러운 변화였다”고 회상했다.

작가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에게도 그림은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매개였다. “자연과 인생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선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관념의 조형화였다. 그가 그토록 향하고자 했던 내면의 궁극은 어디였을까? 작품 소재에서 그의 지향점을 짐작해본다. 작가는 산과 들, 꽃과 나무, 여인과 앳된 아이, 해와 달, 개와 물고기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들을 그렸다. 그는 이러한 순수한 대상을 통해 “이상향”을 꿈꾸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사실성과 거리는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상을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아요. 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관념적인 풍경이 표현되지요.”

여전히 작업은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리기보다 낙서를 한다”고 했다. 낙서들 중에서 어느 순간 감정선이 요동칠 때 작품으로 옮긴다고 했다. “내가 90평생을 이런 작업을 하면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그림을 그린다기 보다 놀이처럼 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는 4,5전시실에서 5월 19일까지. 053-803-7880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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