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아버지의 이름 앞에
세상 모든 아버지의 이름 앞에
  • 승인 2019.02.1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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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 아동문학전공 강사
96세 할아버지가 손주를 상대로 효도사기를 당해 소송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슬프다. 효도란 부모에 대한 정이 마음에서 우러나 섬기는 기본 도리이다. 개인의 재물이 없어 삶이 힘들면 복지국가 차원에서 나서야겠지만, 재물을 내밀며 혈육 간의 섬김을 사려면 정 없이 살아온 가족 관계 개선과 자녀의 교육 문제부터 돌아봐야 하겠다. 기러기 아빠로 십년간 돈 벌어 아내와 아이들을 유학 보내며 뒷바라지 했더니 이혼 하자는 아내 편에 선 아이들이 ‘아빠는 우리가 필요로 할 때 옆에 없었다’며 아빠 무용지물을 들먹이더라는 어느 연예인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도대체 부모란 무엇인가? 선남선녀가 부모를 떠나 결혼하여 아이가 태어나면 그때부터 그들도 부모가 된다. 새 생명을 얻은 축복 속에 기쁨도 크지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은 ‘쇠사슬’이 되어 힘든 일을 견디며 걸어가야 하는 부모의 길! 여기서 실제로 ‘쇠사슬’을 목에 두른 ‘평화의 보행자 구스타보의 고행’이라는 국제신문 기사 속, 한 아버지의 영상이 떠오른다.

19살 아들 몬카요가 군복무 중에 반군에게 납치되어 무장혁명군에게 끌려갔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반군이 포로인 자기 아들을 묶는 방식대로 쇠사슬로 자기 손목을 묶고 자기 목에도 쇠사슬을 두른 채 아들 모습을 셔츠에 새겨 한 달에 1000 km씩 걸으며 시위를 했다. 포로 교환에 정부가 나서 달라고. 그의 행진을 세계 여론이 거들자 ‘반군과 협상할 수 없다’던 콜롬비아 정부가 방침을 바꿨고, 아버지는 12년 만인 2010년 콜롬비아 플로렌시아 타맥 공항에 착륙한 헬기에서 32살이 된 아들을 품에 안았다.

아! 이것이 아버지의 이름이다. 한 아버지의 쇠사슬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은 세상 모든 부모의 쇠사슬이다. 가족이라는 쇠사슬에 묶이면 살아가야 할 이유 앞에 사는 힘이 펄펄 난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극한 직업’에도 뛰어들어 몸이 견뎌낸 노동력을 수당으로 환산 받아 집에 돌아온다. 일하며 보람을 찾는 날도 있지만, 수모와 좌절을 겪는 날에도 집 앞에서 어깨 펴고 들어와 시체처럼 쓰러진다. 힘들다는 하소연 대신 술 먹고 폭언하는 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자식들이 필요로 할 때 다정하게 옆에 있어줄 여유도 없고 2학년 아이 눈에 ‘아빠는 도대체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녀가 어릴 때, “너네 아빠(엄마)가 가족을 위해 힘들여 일해서 우리가 산다. 저녁에 아빠 돌아오시면 ‘고맙습니다’ 인사해야지!”하는 감사의 마음 심어주는 한 마디 교육도 없이 서로 살기에만 급급해온 터라 오늘날의 불효를 키워온 것이 아닐까? 부모가 무슨 일을 힘들게 하여 돈을 벌어오는지 초등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모르는 아이가 상당히 많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일터에서 돌아오는 엄마, 아빠에게 ‘고맙습니다’하는 인사말부터 가르쳐야 하겠다. 부모는 수고를 생색내지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사는 일에 골몰하다 나이 들어간다. 차차 기력 없는 늙은이가 되어 인생의 남은 날들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죽음 뒷날을 돌아보게 된다. 먼저 재산이 있다면 집안의 제사를 지내는 조건으로 후손에게 주고 싶어지나 보다.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빚을 남겨준 부모라도 (종교상의 이유가 아니면) 제사는 지낸다. 또, 죽고 난 뒤 제사를 지내면 어떻고 안 지내면 어떠랴? 하지만 제사 풍속이 이어져 오다보니 그나마 재산을 물려주어야 덜 미안하고 체면을 닦는 마음이 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죽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살던 집에서 임종을 맡는 일이 소망이라는 마음에 공감할 것이다. 자식들 보기엔 가장 큰 욕심이 될지라도 평소 살던 집에서 임종을 맞으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덜할 것이고 슬픔도 덜할 것이라는 부모의 마음을 존중해준다면 마지막 효도가 될 것이다. 하기야, 나도 불효자다.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면서 찾아갈 때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했다. 내 살기 바빠서 불효를 했다. 이제야, 돌아가신 세상 모든 아버지, 어머니 이름 앞에 반성문을 쓰듯이 이글을 쓴다. 또한, 오늘도 칼바람 속에서 가족이라는 쇠사슬을 두르고 노동력을 파는 세상 모든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 앞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한때 뼈 바스라지게 일하다, 이젠 무릎 연골마저 닳아 잘 걷지도 못하는 세상의 늙은 아버지(어머니)들에게도 돼지의 해인만큼 잘 드시고 좋은 일 많이 하여 행복해지시라고 응원의 박수를 드리고 싶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니 제사 걱정이나 재산으로 섬김을 사려하기보다 죽기 전에 항상 둘레에 정 나누며 살고 싶다. 내 씀씀이를 줄여 명절이면 이집 저집에 고등어 한손이라도 우편으로 보내고 가족, 친지들을 자주 불러 음식 나누고 부모로서 부족했던 점들을 용서받고 이해받고 사랑 나누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준비를 하며 살아야겠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어미, 아비들에게는 자녀가 어릴 때부터 부모의 출퇴근길에 ‘고맙습니다’는 인사말을 일상화하도록 꼭 가르치라는 부탁을 유산처럼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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