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곱고 진귀하구나!… 어머니 생전 사랑했던 들꽃
저마다 곱고 진귀하구나!… 어머니 생전 사랑했던 들꽃
  • 황인옥
  • 승인 2019.02.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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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화가 정경상 개인전
오오극장서 내달 17일까지
야생화 드로잉 30점 선봬
거리
거리화가 정경상

기자와 마주 앉자 무거운 이야기부터 꺼냈다. “길거리로 내몰릴 형편”이라며 “이번 전시에서 작품이 좀 팔려야 한다”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방 기한이 만료되어 곧 비워줘야 한다는 사연을 말하는 얼굴은 떨렸다.

오오극장 로비에 전시된 30여점의 작품은 모두 복사지에 오일팬과 색연필로 그려졌다. 이는 캔버스와 물감을 살 수 없어 선택한 호구책으로, 작가의 열악한 상황을 대변한다. 80년대 이전에 통용됐던 무게감의 ‘가난’이 그의 어깨위에 내려앉은 듯했다. “좀 더 실험적인 작품을 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습작같은 작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작업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거리화가 정경상 개인전이 오오극장 로비에서 18일부터 3월17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복사용지에 표현한 야생화와 야생초 30여점을 걸었다. “습작 같은 작품”이라고 작가 스스로 밝혔듯 작품은 경국지색의 화려함과는 거리를 둔다. 그렇다고 서슬 퍼른 비판 의식으로 칼날 위를 걷는 것도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다.

야생화와 야생초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선택된 소재다. 그의 어머니는 생전에 야생화를 좋아했지만 인식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사실이 떠올랐고, 야생화와 야생초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보잘 것 없는 것에도 지극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는 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텄다.”

정경상 하면 인물 크로키다. 그는 버스나 도서관, 서점, 거리 등 도심곳곳을 누비며 만난 사람들을 크로키로 포착해왔다. 거리나 서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특징을 단숨에 잡아 화폭에 담아왔다. 주로 서민들이 작품의 주인공이 됐다. 소시민의 일상을 그렸다는 점 때문인지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조선의 풍속화’에 빗댔다. “조선 후기 화가 오원 장승업의 뜨거운 열정을 담고 싶다. 토속미 넘치는 조선의 풍속화의 정서가 묻어나는 작업을 하고 싶다.”

가난했던 작가는 정규교육과정에서 그림을 배우지 못했다. 그림이 그리고 싶어 군 제대 후 잠깐 극장 간판 그리는 일을 한 것과, 짧은 기간 화실에서 배운 것이 전부였다. 독학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 지금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복사지와 색연필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가난이 그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 하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서정에서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 하나는 가지고 있다”며 독학에 대한 당당함을 드러냈다.

젊은 시절에는 막노동을 전전하다 모친의 죽음 이후 다시 그림을 시작한 그는 물성으로부터도, 분별로부터도 자유러워 졌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변신에 대한 열망은 감추지 않았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재료면 어떤 것이든 제한하지 않는다. 나이가 드니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 아름답고 추하다는 분별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 여건이 되면 좀 더 실험적으로 변화하고 싶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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