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밥하러 갑니다
지금, 밥하러 갑니다
  • 승인 2019.02.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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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시인)
밥은 우리 식생활의 전부다. 심지어 고기를 구워먹으러 가도 된장찌개와 함께 밥을 먹고, 불판위에 밥 한 덩이 김가루와 함께 올려 참기를 넉넉하게 두르고 총총 썬 김치를 넣어 간을 조절한 후 밥을 볶아 먹는다.

한 끼의 허기를 그렇게 채우고 나면 우린 또 밥알이 둥둥 떠다니는 식혜를 후식으로 마시고는 부른 배를 흐뭇하게 쓰다듬으며 밥집을 나선다.

라면을 먹으면서도 밥 한 공기를 더해 말아먹고, 불판 위로 전골이 지글지글 끓어오르기도 전에 밥부터 시켜 먹는다. 칼국수나 묵사발을 주문해도 반공기정도의 보리쌀이 섞인 밥이 함께 곁들여진다. 입가심으로 나온 숭늉 속에도 밥알이 몇 알 바닥에 보여야 한다.

딸아이는 가끔, 입맛이 떨어지는 날이면 고기와 야채가 듬뿍 들어간 칼칼한 짬뽕을 먹으러 가자고 조를 때가 있다. 그 곳에선 짬뽕이든 짜장면이든 종류에 상관없이 밥 한 공기가 따라 나왔다.

더군다나 무한 리필이다. 짬뽕밥이든 짜장밥이든 구체적 메뉴를 굳이 제시하거나 따로 시키지 않아도 밥 한 그릇 내어주는 일이 인색하지 않은 집, 아마 그 곳 사장님은 배고픈 이의 서러움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싶다. 허기진다는 것의 의미를 잘 아는 사람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딸아이에 비해 나는 가끔 손맛 좋은 여동생 집에서 밥을 얻어먹을 때가 있다. 엄마에게 밥을 차려달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맏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리 하기엔 연세 드신 어른을 시켜먹는 것 같아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든다.

동생은 흰쌀밥 한 그릇에 쇠고기 듬뿍 넣어 끓인 미역국 한 대접을 차려 준다. 받아먹는 밥상인데다 동생의 손맛까지 더해져 둘이 먹다 하나가 자릴 떠도 모를 만큼 맛있어서 그릇 빼고는 다 먹어 치웠었다.

미역국을 먹으며 색다르게 느껴지는 오묘한 미각을 느끼고는 동생에게 물었다. ‘도대체 국간을 어떻게 한 거냐고’ 동생이 대답했다. ‘언니야 다신 그 맛을 낼 수도 먹을 수도 없다.’이유가 뭐냐고 되물었다. ‘시어머니가 담아 주고 간 집간장을 넣었는데 이젠 안 계시니…….’

강호동, 이경규가 진행하는 ‘한끼줍쇼’라는 프로그램은 내 집에 들어온 누군가에게 그냥 ‘빈 입’으로 되돌려 보내면 안 된다는 밥문화는 물론, 밥 한 그릇의 의미를 잘 아는 보릿고개 세대들의 성원 때문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접받는 사람보다는 대접하는 사람이 오히려 복을 받는다는 신앙 같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허기진 식구들이 돌아와 앉은 저녁밥상, 가장자리로 둘러앉아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입에 갖다 대고는 한 마디씩 한다.

“역시 당신이 해 주는 밥이 세상에서 최고야. 다른 사람들이 이 맛있는 밥상을 함께 받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을 걷어내며 뚝배기에선 연신 청국장이 끓어오르고 고봉밥 한 술을 푹 떠 입으로 가져다 넣으며 남편은 하루의 피로를 푼다.

“엄마! 식당 차리면 ‘인생 맛집’으로 대박날것 같아. 아니면 레시피라도 좀 기록해 두던지. 시집갈 때 혼수품으로 ‘딱’이지 싶은데. 그나저나 엄마 안계시면 나는 인자 어디 가서 엄마 맛을 찾아먹지, 그 땐…….”

이처럼 가족들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어 하는 밥은 아내인 나, 엄마인 내가 해 주는 밥이겠지만 정작 그 맛있는 밥을 만들어 내는 주체인 나는 누군가 해 주는 밥이 최고 맛있다고 여겼다.

제 값을 치르지 않고 거저먹는 공밥이 가장 맛있다는 말도 있지만 어쩌면 내 손으로 떠먹을 수 있은 밥이 가장 맛있는 최고의 밥이라는 것을.

‘공깃밥 한 그릇 더 추가요’란 말처럼 더 듣기 좋은 말이 어디 있을까 싶어지는 꽃물 끓어오르는 봄밤, 이만 밥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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