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숏으로 숏을 잡는 쌈마이웨이
극한직업, 숏으로 숏을 잡는 쌈마이웨이
  • 백정우
  • 승인 2019.02.2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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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줌인아웃
영화 ‘극한직업’ 스틸컷.
 

백정우의 줌 인 아웃, 영화 '극한직업'


영화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는 숏(shot)이다. 숏과 숏이 붙어 장면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 사이로 활력이 솟는다. 숏을 활력으로 바꾸는데 천부적인 마이클 만의 ‘마이애미 바이스’의 한 장면. 콜린 파렐과 제이미 폭스가 초고속정으로 물살을 가르고 스포츠카로 이동하여 호화주택에서 브로커와 만날 때까지 마이클 만은 단 네 개의 숏으로 끝내버리는 신기를 보여준다. 마치 그 이상의 숏은 낭비라는 듯 말이다.

배낭에 담요를 말아 넣는 마약사범에게, 그거 에어백 효과 없다는 형사의 비아냥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창문을 향해 몸을 날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이거 제대로 활극이네, 라고 외쳤다. ‘극한직업’의 오프닝 시퀀스이다. 아이러니가 웃음을 추동하는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낭비 없는 숏이다. 거칠게 말해 숏 대 숏으로 구성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선택. 즉 자신들이 있어야할 곳에 있지 못하고 엉뚱한 공간으로 잠입하였으나 오히려 잠복수사를 위해 차린 치킨 집이 대박 나는 좌충우돌의 드라마에서 내적갈등과 심리표현이 도드라질 이유가 없고, 배우의 면면을 볼 때 빠른 화면전환이 유리하다는 것.

첫 흥행작 ‘스물’의 바닷가 시퀀스에서, 면허는 한 번에 땄는데 한 번도 운전 해본 적 없다고 말하는 강하늘과 그럼 자고 가면 된다는 민효린의 대답에 이어지는 건 (총각 좋겠네, 라는 표정으로) 강하늘을 바라보는 식당 주인의 숏이다. 흠모해온 여자선배의 외박선언 숏에 남자후배가 아닌 3자의 반응을 보여주며 코미디를 견인하는 리버스 숏. 이것이 이병헌 감독의 장기이다.

한국영화에서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부족한 인력과 턱없는 지원 타령이 고작이었다. 형사물 장르의 쾌감이 범인 검거를 위한 형사의 영웅적 활약에서 비롯되는 건 이 때문이다. ‘극한직업’역시 철저하게 장르적 쾌감에 집중한다. 초인적 형사를 대신한 숏이 앞에 설 따름이다. 감독은 톱스타 없는 캐스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철저한 협업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붙이고 그 틈을 유머와 활력으로 메꿨다. 숏에서 숏으로 빠른 장면전환이 거듭되지만 앞의 숏은 다음 숏에게 주인공 자리를 넘기고 다시 이어 받음으로써 출연진 모두가 주연이 되는 드라마의 완성이다. 주거니 받거니 적재적소에 터지는 맛깔스런 대사로 웃음을 견인한다.

오늘 하루만 대충 수습하며 살다가는 밥 굶기 딱 좋은 시절이다. 뭐라도 해야 하고 이왕이면 잘해야 한다. 죽도록 뛰어봐야 범인 못 잡는 형사보다 대박 난 치킨 집의 유혹이 더 달콤할 법도 하다. 하지만 대박의 꿈조차 범죄자와 맞서기 위한 임시방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결기. 나쁜 놈이 더 잘 먹고 잘 자는 세상에서 불철주야 닭 튀기고 양념 만들며 필사적으로 각자 소임을 다하는 인정투쟁이 눈물겨운 건 이 때문이다.

영화 종반, 우리는 당대 한국사회에 개입하는 감독의 독백과도 같은 한 장면과 만난다. 불투명한 현재를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 바치는 헌사 “니가 소상공인을 몰라서 그러는데, 우리는 매일매일 목숨 걸어” 흐르듯 툭 던졌으나 흘려보낼 수 없는 최고의 숏! 소상공인의 쌈마이 정신으로 완성한 ‘극한직업’이 빛나는 순간이다.



 
백정우
백정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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