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권력을 향한 두 여인의 날 선 신경전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권력을 향한 두 여인의 날 선 신경전
  • 배수경
  • 승인 2019.02.2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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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권력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두 여자가 벌이는 팽팽한 기싸움
왕실의 화려한 이면에 감춰진
인간의 추악한 욕망 그려내

오스카 10개 부문 노미네이트
3인 3색 여배우들의 열연 압권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 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싸움 구경이라고 했던가. 18세기 궁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여인들의 암투를 엿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21일 개봉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를 보고 나오면서 느낀 생각이다. 24일(현지시간) 열릴 제 1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로마’와 함께 감독상, 각본상을 비롯 최다 후보(10개 부문)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고 있는 영화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송곳니’ ‘더 랍스터’ ‘킬링 디어’ 등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고 있는 그리스 출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이번에는 전작의 거침없고 파격적인 연출에서 벗어나 조금 대중적인 영화로 관객과 만났다.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좋아했던 사람에게는 조금 성에 안차는 작품이 될 수도 있지만 난해한 비유와 은유를 내려놓으니 일반 관객에게는 좀 더 가깝게 다가온다.

영화는 18세기 초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군주이자 대영제국의 첫 번째 군주인 앤 여왕 시대(1702~1714)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정당정치의 본격적인 도입 등 역사적으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영화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궁중 속 여인들에게 집중을 한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배경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더 페이버릿’은 철저히 여성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남자들은 짙은 화장과 가발을 쓴 채 파티를 즐기고 거위 경주나 토마토를 던지며 시간을 보내는 우스꽝스러운 주변인으로만 그려질 뿐이다. 토리당 당수 할리로 등장하는 니콜라스 홀트도 짙은 화장에 가려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심지어 역사 상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앤 여왕의 남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 속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은 최고의 권력을 갖고 있지만 늘 불안하고 외롭다. 17명의 자녀를 먼저 보낸 상처를 아이 이름을 붙인 토끼들을 보며 달랜다. 게다가 통풍에 시달리며 휠체어나 목발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때로는 아이같이 징징거리며 떼를 쓰고 때로는 소리를 지르며 히스테리를 부린다. 올리비아 콜맨이 그려내는 앤 여왕의 모습을 보고 나면 그녀가 아니었다면 누가 이토록 변화무쌍하고 입체적으로 여왕을 재연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품어보게 된다.

 

여왕의 오랜 친구이자 연인인 사라역의 레이첼 바이스
여왕의 오랜 친구이자 연인인 사라역의 레이첼 바이스

 

이런 여왕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여왕의 친구이자 연인인 사라(레이첼 바이스)다. 사라는 여왕과는 달리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갖춘 여장부이다. 그녀는 비록 여왕이라 하더라도 서슴치 않고 조언과 비판을 한다. ‘사랑에도 한계가 있고, 사랑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의 사랑법이다. 흔들림 없이 탄탄해보이던 두 사람의 관계에 균열을 만드는 것은 바로 몰락한 귀족가문 출신이자 사라의 사촌인 애비게일(엠마 스톤)이다.

욕망하녀 애비게일 역의 엠마 스톤
욕망하녀 애비게일 역의 엠마 스톤

비록 지금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기회 앞에서 그녀는 못할 것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는 사라와 다른 방법을 택한다. 사라가 여왕을 향해 쓴소리도 서슴치 않았다면 애비게일은 ‘채찍’대신 ‘당근’을 들고 여왕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사라와 애비게일이 여왕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해 행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교양있고 우아해 보이는 이들의 난투극은 실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엠마 스톤은 ‘라라랜드’에서 보여줬던 사랑스러운 미아의 그림자는 지우고 욕망 하녀로 완벽 변신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3명의 여배우가 각자의 욕망을 드러내며 펼치는 팽팽한 연기 대결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더 페이버릿’은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철저한 고증에 의해 재현된 화려한 세트와 의상 등 감각적인 비주얼도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광각 렌즈와 어안 렌즈로 촬영된 왜곡된 화면이나 로우 앵글로 잡아내는 인물 묘사 등 흔히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카메라 촬영기법들도 흥미롭다.

앤 여왕과 애비게일 그리고 17마리의 토끼가 겹쳐지는 마지막 엔딩장면은 영화를 본 관객 각자가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이제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더 페이버릿’이 몇 개의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을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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