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사과
아담의 사과
  • 승인 2019.02.2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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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앨런 매시선 튜링(Alan Mathison Turing)은 영국의 수학자이자 전산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법으로 동성애를 금지하던 1952년 당시 영국은 그를 외설혐의로 화학적 거세를 선고했다. 그는 여성호르몬을 복용하다 결국 1954년 6월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먹고 자살한 비운의 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베어 문 사과는 애플 컴퓨터의 로고로 남았다. 그는 제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에 첫발을 내디딘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을 딴 튜링상(Turing Award)은 ‘전산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며 해마다 해당분야의 업적을 남긴 인물에게 수여한다. 뿐만 아니다. 그가 제안했던 튜링테스트에 착안한 뢰브너상(Loebner Prize)도 1990년에 제정되었다. 사후 그의 명예는 마침내 2009년 영국 정부가 공식 사과하고, 2013년에는 영국여왕의 특별사면으로 무죄판결과 함께 복권(復權)되었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과 한쪽은 동성애자들의 인권과 인공지능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지만, 한 개인의 삶으로서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성애에 대해선 지극히 당연시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이해하려는 노력이 확대되었을 뿐 근본적인 사회적인 제도나 지원은 미비한 수준이다. 일부 사회학자들의 주장처럼 그들의 성적인 환상과 도착증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하기에는,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맹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성애가 조화롭다’는 오랜 인식에 영향을 준 두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성서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다. 신에 의해 창조된 태초의 인간 아담과 그의 늑골로 재창조 된 여자 이브는 영락없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여기에서도 역시 사과가 등장한다.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가 건넨 사과로 원죄를 짓게 된 아담, 창조주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목에 걸려버린 사과는 울대뼈(Adam’s apple)로 남았다는 주장이다.

실은 성경의 어느 구절에서도 사과는 없다. 다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로만 등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지금까지도 사과냐 무화과냐 논쟁을 벌이고 있다. 열매가 무엇이냐는 것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브의 생명이 아담으로부터 주어졌다는 고정관념이다. 아담은 이브의 창조주가 아니다. 아담의 늑골은 창조주의 도구로 쓰였을 뿐이다. 과일을 깎아먹을 때 과도가 필요하듯 말이다. 남성들의 ‘여성 창조설’대신 ‘도구 지원설’이 설득력을 갖는다. 한 마디로 여성의 몸과 마음은 남성의 소유가 아니라, ‘여성 자신의 것’이다. 성경을 믿건 안 믿건 ‘양성 불평등의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소리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변호사 회관에서 시민사회포럼 ‘시민사회, 낙태죄 위헌을 논하다’가 열렸다. 낙태죄는 자연 분만기에 앞서서 태아를 인위적으로 모체 외에 배출시키거나 모체 내에서 살해하는 죄로써, 임신한 부녀가 약물을 이용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스스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형법 269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조항은 모자보건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①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②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③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④ 임신의 지속이 보건 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본인 또는 배우자의 동의를 조건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금해야 하는데, 모자보건법에서 일부 허용하고 있다는 것은 위헌이라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법에서 태아를 완전한 인격체로 보지는 않는다. 민법상으로는 태어난 이후, 형법상으로는 출산을 위한 진통이 생기고부터 ‘사람’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낙태죄를 폐지했을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무분별한 임신중절 수술이다. 그렇다면 낙태를 금하고 있는 지금, 임신중절수술이 크게 감소하였는지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불법수술이 판을 치고, 수술비는 부르는 것이 값이다. 위생이나 그 밖의 임산부를 보호할 어떠한 장치도 기대해 볼 수 없다. 암묵적으로 불법행위가 이루어지는 마당에, 통계 또한 제대로 드러날 리도 만무하다. 태아의 생명권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임산부, 즉 여성의 ‘자기운명결정권’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를 두고 원하지 않는 출산이 적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것 외 아무것도 아니다. 원치 않는 임신을 바라는 여성이 어디 있겠는가. 축복받을 수 있는 잉태와 출산을 위해서라도, 그렇지 못한 출산은 오히려 막아야 한다. 아담은 이브에게 독이 든 사과를 권해서는 곤란하다. 낙태죄의 존폐는 ‘실수’ 혹은 ‘사고’를 저지른 아담이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사회적인 시선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이브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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