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아트피아, 차정보 개인전 ‘눌목의 어제와 오늘’… 좋아하는 나무·사람과 유유자적 놀았던 40년 궤적
수성아트피아, 차정보 개인전 ‘눌목의 어제와 오늘’… 좋아하는 나무·사람과 유유자적 놀았던 40년 궤적
  • 황인옥
  • 승인 2019.02.2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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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로, 문화재 복원 전문가로 다방면서 활동
슬림한 기본 형태에 유머와 성찰적 성격 특징
초창기작 茶도구·평면·철조각 60여점 소개
기다림-소나무자두나무철
차정보 작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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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보.
놀이가 일이 되고 돈도 되면 그보다 더한 금상첨화가 있을까? 그런 삶을 살았다면 선택 받은 인생임에 틀림없다. 눌목 차정보(60)의 삶이 그랬다. 놀이를 직업으로 해서 얼추 삶을 꾸려왔다. 넉넉하지 않았지만 외아들을 주목받는 젊은 화가로 키워내고 목수와 목공예가라는 타이틀도 얻었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유유자적도 했다. 그만하면 부러운 인생이다. 그런 그가 ‘어제와 오늘’이라는 제목으로 수성아트피아에서 개인전을 연다. 전시는 작가의 지나온 삶과 예술 궤적을 유쾌하게 풀어놓는 일종의 ‘썰’전이다. 부담 없이 찾아가서 가볍게 즐기면 된다. “그동안 놀았던 것을 정리해 보고 앞으로 더 즐겁게 놀 것을 고민해 보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 싶었어요.” 올해 환갑을 맞아 대규모 전시를 선보이는 이유다.

차정보의 인생에서 나무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모르긴 해도 허깨비만 남을 것이다. 그는 평생 나무와 함께 했다. 그의 지휘 아래 오래된 사찰과 종택이 새숨결을 찾고, 인심 후한 차인들의 차도구가 됐다. 그렇다고 작정하고 목공예가의 길로 접어든 것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놀이의 자가 확장이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손재주가 남달랐고, 손으로 뚝딱하면 무엇이 나왔다. 즐거운 놀이를 하면 한없는 즐거움의 경지를 맛본다는 것은 그때 처음 경험했다. “내가 가진 재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목공예였어요.”

손재주를 믿고 목공예에 빠져든 것은 26살 때였다. 당시 차 도구를 만들며 몇 번의 전시도 꾸렸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평생의 업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목공예의 위용을 갖춘 것은 30대 중반이었다. 결심이 있기까지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신고식을 치렀다. 그는 20대 중반에 허무주의에 빠져 팔도를 유람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외줄을 탔다. 그러다 문득 “살아보자”는 결심을 했고, “어떻게 살까?”를 자문하면서 “정직하면서도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결론을 얻었다. “나무야말로 대충 눈속임으로 만질 수 없는 정직한 재료이니 꾸미지 않고 내 꼴대로 살고 싶은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10여년간의 고행에서 ‘잘 살아보자’는 깨달음 하나를 얻자 경남 창녕의 화왕산 자락으로 들어갔다. 1992년의 일이었다. 산 중턱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찻상과 다기장 등의 차 도구를 본격적으로 만들었다. 화왕산에서 만든 작품들로 대구 소아당화랑에서 전시회도 가졌다. 그 시기는 그에게 전환기였다. 부산 출신으로 부산에서 활동하던 무대가 대구로 이동한 것. 그는 지금까지 대구를 중심으로 2004년의 서울 전시까지 총 8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적지 않은 가격에도 작품은 팔렸다. “천년을 버텨도 변함없는 좋은 나무로 명품을 만들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알아봐 주었어요.” 15년 만에 개최하는 대규모 개인전인 이번 수성아트피아 전시에는 초창기 선보였던 찻상, 다기장 등의 차 도구와 먹과 붓으로 그린 평면, 나무와 철로 만든 조각 등 60여점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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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보 작 '和'

향촌동 적산가옥을 직접 리모델링한 작업실 ‘골목’에서 개인전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가 도장 세 개를 차탁 위에 내놓았다. 도장이라고 하기에 형태나 재료가 재미졌다. 보는 순간 탄성이 나왔다. “대나무 뿌리에 선시(禪詩)를 새겼다”고 했다. 직경 7~9㎝ 가량 되는 울퉁불퉁한 형태에 적게는 30자에서 많게는 40자에 달하는 선시가 작가 특유의 조형감으로 새겼다. 형태 역시 원뿌리와 잔뿌리 모두 본래 형태를 헤치지 않고 살려냈다. 대나무 뿌리로 만든 도장은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차정보 예술의 핵심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기자가 재미있다고 하자 그가 “대나무 뿌리에 서각하는 사람을 나 뿐일 것”이라고 했다. “대나무 뿌리가 도장의 재료가 타당한지에 대한 고민은 제게 필요 없었어요. 내가 좋으면 그만이었으니까.”

모든 작품은 놀이의 결과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차 도구를 만들고 한지에 먹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나무와 쇠를 얼기설기 엮어 조각을 했다. 오직 마음의 발로, 놀이의 연장으로 작업이 확장했다. 한지와 먹으로 표현한 평면은 그야말로 놀이의 연장이었다. 때는 화왕산 중턱 은둔자 시절이었다. 산 중턱 은둔자로 살았지만 애주가의 주(酒) 사랑은 변함 없어 술 조달이 필요했다. 그때 떠오른 묘책이 편지였다. 그는 술이 고프면 지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술을 보내라 할 수 없었고, 한지 위에 먹으로 정성스럽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평면 작품들은 지인들에게 쓴 편지에 창작의 깊이를 더한 결과다. “편지에 내 나름의 정성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후 그의 지인들의 차 트렁크에는 술이 준비되어 있었고, 창녕을 지나는 길이면 어김없이 화황산을 들러 술을 내려주고 가고는 했다. “편지를 모아서 사무실이나 집 벽면에 전시해 놓은 친구들도 있어요.”

15년간의 화왕산 생활을 정리할 무렵인 2004년, 지인의 추천으로 문화재 복원 일을 시작했다. 그 역시 나무와 함께 하는 일이었고, 방랑벽도 해소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덥석 물었다. 물론 “재미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설악산 봉정암에서 시작해 목조로 된 전국 각지 사찰과 고택들의 복원 공사를 맡았다. 일에 자신이 붙을 즈음에는 직접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문화재 복원 전문가로 10여년을 활동하고 환갑이 가까워오자 더 늦기 전에 진짜 원하는 일을 하자는 결심을 했다. 작품 활동에 대한 갈증이었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조각 작품들은 문화재 복원 일에서 물러나면서 시작했다. “목수로 살다 나무를 만지지 않게 되니 나무가 그리웠어요. 그래서 나무를 깎다보니 쇠도 깎게 됐죠.” 작품은 쇠로 깎은 사람이 나무 위나 나무 옆면에 세워놓은 형식을 취한다. 사람은 한 명일 때도 있고, 군상일 때도 있다. 나무와 사람의 조합이라 차정보의 자화상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이는 좁은 감상이다. 그를 알면 왜 사람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차정보의 삶에서 나무 이상으로 중요한 존재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 좋아하기로 정평 나 있다. 전국에 지인들이 포진해 있고, 그들의 직업 또한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있다. “예나 지금이나 소통의 부재는 여전한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사람을 통해 하고 싶었어요.”

나무와 평생 재미지게 놀았듯 사람과 노는 일도 그만큼의 무게로 해왔다. 화왕산 자락의 계곡에 스스로를 가두고도 화왕산이 닳도록 지인들이 찾아들었고, 문화재 복원 사업도 그를 따르던 목수, 탱화화가, 기와지붕기술자, 미장기술자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2015년부터 지역 작가들과 서울 부산 등의 타지역 작가들로 구성된 ‘놀자전’도 그 연장에 있다. 그야말로 차정보스러운 놀자전은 지난해 서울전에 이어 올해는 일본 교토에서의 전시를 계획하며 사람 지도를 넓혀가고 있다. 특히 한강줄기에 분포된 명성지를 답사하는 ‘한강수야’ 행사를 전국 30여명의 지인들과 재작년에 결행했고, 올해는 태백산 황지연못에서 부산 다대포 구간을 걷는 ‘낙동강아’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재미있게 놀기 위해 문화재복원 일도 접었어요. 이제 남은 시간들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노는데 쓸 겁니다.”

평면이든 입체 조각이든 간결하고 슬림하다. 그러면서도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글씨와 그림에는 촌철살인으로 가득하다. 넘치는 위트와 유머 속에는 성찰도 깊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다시 ‘나무’ 이야기를 꺼냈다. 국가 백년지대계로 ‘느티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소나무가 목재로 최고라고 하지만 아열대 기후로 넘어가는 우리나라의 기후 변화에 비춰볼 때 소나무보다 느티나무라는 요지였다. “오래된 사찰 대들보나 기둥으로 쓰였던 느티나무는 뒤틀림이나 변형이 소나무보다 적고, 100년만 키우면 훌륭한 목재가 돼요. 백년을 내다보면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해요.” 지금도 산길을 지나면 나무만 보인다는 차정보. 그는 천상 목수였다.

26일 오후 6시 오프닝 행사, 작가와의 만남 등의 부대행사와 함께 진행되는 전시는 3월10일까지 수성아트피아 전관. 053-668-156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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