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생
2월생
  • 승인 2019.02.2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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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아
이향아

정월은 한 달 내내
경축의 놋쇠 징만 두드리다 가고
사향노루 눈짓하는 3월을 내다보며
옥당목 하얀 바람 기폭처럼 퍼지는
지금은 꿈인가 아릿한 2월
자수정 반짝이는 어름짱 밑으로
뼛속까지 비치는 빙어 떼가 흐르고
입춘 우수 안개는 저음으로 깔려
아슴아슴 지는 날짜 스무 여드레뿐인,
숨 쉬기도 아까워라
짧은 2월에
2월 그날에 나는 처음 울었다
월계수 머리 띠 자랑처럼 두르고
순한 햇살 내 이마에 영광을 적어
천지는 오로지 그리움뿐이더라
2월 그날 나는 처음 눈을 떴다

◇이향아=1938년 충남 서천 출생. 1963년 경희대학교 국문과 졸업. 동년도 전주기술전문여자고등학교 교사재직. 1966년에 현대문학에 찻길, 가을은, 설경으로 등단하며 시인 활동 시작. 기전여고 재직 당시부터 최명희를 가르쳤으며, 추후 작가로 키우고 돌봐주었다. 서울 서대문중학교(1972), 성동여자고등학교(1976), 영등포여자고등학교(1981) 교사로 교단에 섰다. 1983년에는 본교인 경희대학교로 돌아가 강사로 활동한 뒤에 1987년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설> 가장 강한 사람은 스스로가 주인인 사람이다. 이 세상 모든 일은 허상이고, 남는 것은 그에 대한 의미(해석)뿐이다. 인간은 대상을 빌어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을 드러내며, 무언가로 채우지 않으면 안될 만큼 공허함에 취약한 존재이다. 살아가는 일은 세상과 관계를 맺는 것의 연속이고, 삶을 지속하는 근원적인 충동은 의미 부여이다. 사랑이나 의미라는 것들은 삶을 지속하기 위한 생에 대한 욕망이다. 그래서 자기라는 주체와 관계를 맺는 모든 대상들에게 크고작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쓴다. 그 대상의 본질은 대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의 자기의식에 있다. 그런데 삶이란 우리 스스로 창조해내는 허구를 망각하거나 회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로 덮어쓰는 과정이라는 의구심이 깔려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자책을 떨쳐내기 위해 한 가지 방편으로 지우기를 생각했다. 허망 분별인 유위(有爲)와 분별을 떠난 경계인 무위(無爲)의 구분으로, 어느 순간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관계란 비우기의 과정이 아니라 채우기의 과정이지만, 자신이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무위로써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존재의 불완전함이 삶의 이유이고 동인이기에, 자신을 배제한 무의미의 의미들, 부존재의 존재들로서 허구가 아닌 실제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겨울 강 어름짱 밑과 위는 시간과 방향이 다르게 흘러간다. 우리는 그저 조심스레 시간에 역행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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