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가면
  • 승인 2019.02.27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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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사람들을 몇 번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내가 그 사람을 잘 알지”라고 말하는 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와 몇 번의 밥을 먹고, 몇 번의 악수를 나누고, SNS에 댓글을 다는 사이라 해서 그를 아는 것은 절대 아니다. 또한 우리는 수 십 년을 살아온 자기 자신의 모습도 제대로 모른다. 자신이 누구인지?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자기 자신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도 왜곡되게 자신을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타인을 만날 때 자의든, 타의든 가면을 쓰게 되어 있다. 심리학에서는 가면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한다. 페르소나는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가면이 얇아서 속에 있는 모습이 어느 정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아주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어서 속에 있는 모습이 어떤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사람도 많다. 가면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신을 감추고 숨긴다 하여 비인간적이다 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때론 역할에 딱 맞는 가면은 맛있는 음식과 함께 식탁에 올려진 맛있는 음료 같다. 음식을 먹다가 약간은 기름지다 싶을 때 먹는 시원한 청량음료 한잔.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다.

하지만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가면은 안 좋은 이미지가 많다. 사기꾼들이 대표적이다.

본인도 가면 쓴 사람한테 된통 당한 적이 있다. 교육기관을 운영하게 되면서 지인의 소개로 A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가면이 벗겨지기 전까지 A의 모습은 정말 인간적으로 너무 가여운 사람이었다. 가족으로부터 상처 받았고, 그럼에도 상처 준 가족을 여전히 돌보는 아주 좋은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교육 파트를 맡았고, 그는 행정과 교육원 운영 전반을 맡았다. 항상 양보하는 사람이었고, 무슨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나의 일에 앞장서 달려와 주던 사람이었다. 동업이었지만 교육기관의 원장의 역할을 하는 나에게는 “원장님 지갑이 얇아지면 안 된다. 지갑에 든든해야 교육원이 산다.”면서 늘 배고팠던 나의 지갑에 파란 배춧잎으로 수시로 몇 십장씩 채워 주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A가 깜빡하고 가면을 쓰고 오지 않은 날이 있었다. 지금껏 알던 A가 아니었다. 눈빛은 차가웠고, 교육원생들에게 대하는 목소리는 날이 서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가면을 안 쓰고 오는 날이 더 잦아졌다. 교육생들은 여전히 많은데 돈이 없다고 했고, 급기야 나의 월급도 주지 않게 되었다. A를 믿고 예산 관련 서류는 한 번도 보지 않았던 나였지만 “장부 좀 보자”라고 한 그날 A의 가면은 완전히 벗겨졌다. 그의 민낯을 보고 난 뒤 더 이상 그와 동업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다음날 출근하여 관계를 정리하자고 했다. 가슴 아픈 맘으로 출근을 하니 A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책상은 정리되어 있었고 통장과 예산 관련 모든 서류를 들고 사라져 버렸다. 그의 책상 위에는 A가 벗어둔 가면만이 놓여 져 있었다.

사람은 오래 보아야 한다. 나태주님의 ‘풀꽃’이란 시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것이 바로 사람이다. 표면의 모습은 금방 알 수 있지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진짜 모습을 보기란 힘들다. 밑바닥의 상처를 보아야, 밑바닥의 유치함을 보아야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가족과 오래된 친구가 바로 그들의 밑바닥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그들의 오랜 친구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가족을 만나보라고 말하고 싶다. 사업을 함께 할 파트너를 찾을 때도, 결혼을 할 사람을 찾을 때도 오래 알고 지낸 그들의 친구와 그의 모습을 처음부터 적나라하게 알고 있는 가족을 만나보길 권한다. 아무리 두껍고 잘 꾸며진 가면도 가족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 인연은 사람이 남고, 가면과 가면이 만난 인연은 가면만 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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