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와이프'…남편의 성공을 위해 '킹 메이커'로 살았던 그녀
영화 '더 와이프'…남편의 성공을 위해 '킹 메이커'로 살았던 그녀
  • 배수경
  • 승인 2019.02.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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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와이프

“올해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셨어요.”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조셉 캐슬먼(조나단 프라이스)은 ‘내가 노벨상을 탔다네’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내 조안(글렌 클로즈)의 손을 잡고 침대 위에서 아이처럼 뛰면서 기뻐한다.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부부의 비밀, 영화 ‘더 와이프’는 그렇게 시작이 된다. ‘이 여자가 없다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는 조셉을 바라보는 그녀의 복잡한 표정은 남편의 영광 뒤에 가려진 아내의 공허함이라고 여기기에는 예사롭지 않다. 그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들의 과거로 가보자. 재능있는 문학도 조안은 유부남 교수인 조셉과 사랑에 빠진다. ‘글 쓰는게 좋다’는 조안에게 한 여성작가는 ‘쓰지마요. 주목받을 거란 꿈도 꾸지 말고요.’라는 조언을 한다. 조안이 그녀가 건네주는 책을 펼칠 때 나는 ‘쩍’하고 갈라지는 소리는 남성 편집자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던 시대를 살았던 여성작가들의 운명에 대해 알려주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효과음이다. 영화는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고 꿈을 접어야 했던 많은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그녀들의 선택을 생각하게 만든다.

시상식을 위해 스톡홀름에 도착하면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던 그들의 관계는 점점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부부와의 만남에서 ‘아내가 글을 안 써서 다행이다.’’아들도 작가지만 정체성을 찾고 있다‘라고 무신경하게 내뱉는 조셉의 말은 꾹꾹 눌러오고 있던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조셉의 전기를 쓰기 위해 옆에서 서성이는 나다니엘(크리스찬 슬레이터)의 존재도 조안을 압박해 온다. 이쯤되면 눈치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부부의 비밀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남편의 대필작가가 된 조안, 끊임없이 여성편력을 일삼으면서도(제임스 조이스의 시와 호두를 이용한 방법도 똑같다) 아내의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같은 조셉. 얼핏 보면 조셉은 아내의 재능을 가로챈 파렴치한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은 강요가 아닌 그녀의 선택이었으니 조셉이 영화 말미에 조안에게 따져묻는 것도 일리는 있어 보인다. 둘 다 세상을 속인 공범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인 셈이다.

영화 속에서는 비슷한 듯 다른 장면이 두 번 나온다. 부부가 침대 위에서 손을 맞잡고 뛰는 장면이다. 처음 조셉의 이름으로 된 책이 나왔을 때 ‘우리가 책을 냈다네’라고 노래하던 조셉이 노벨상 수상소식에는 ‘내가 노벨상을 탔다네’라고 노래를 한다. 킹메이커로 만족하며 그림자로 살던 조안이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이 지점이 아니었을까? 끝까지 내가 아닌 우리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눈빛과 미세한 얼굴근육의 움직임만으로도 복잡한 감정을 전달하는 글렌 클로즈의 연기는 놀랍다. 제 76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에 이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을 예견하는 이도 많았으나 그녀의 아카데미 연기상에 대한 일곱 번째 도전은 이번에도 실패로 돌아갔다.

조안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애니 스컬트는 글렌 클로즈의 딸이다. 엄마와 딸이 같은 역할로 한 영화 속에서 만났다는 것이 흥미롭다. 또한 조안의 아들 데비잇 역의 맥스 아이언스는 헐리우드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의 아들이다.

영화 ‘더 와이프’는 2003년 발표된 메그 울리처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했다. 소설 속에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문학상이었지만 영화에서는 극적 효과를 위해서인지 노벨상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노벨상 시상식 리허설과 시상식, 리셉션 장면 등을 볼 수 있는 것도 영화의 재미를 더해준다.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던 영화가 보여준 마지막 결론은 좀 생뚱맞게 느껴진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이후 조안의 행보에 대한 상상은 결국 관객의 몫으로 주어졌다.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인가? 글이 읽히는 사람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 역시 우리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듯하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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