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개와 늑대의 시간
  • 승인 2019.03.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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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우리나라의 속담에는 유독 ‘개’가 많이 등장한다. 범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아지부터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다른 개를 나무라는 ‘뭐 묻은 개’에 이르기까지, 개를 의인화한 속담이나 설화는 부지기수다. 이렇듯 개는 사람과 교감하는 ‘반려동물’로서 나무랄 데가 없다. 심지어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비유로,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막상 쓰려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속담도 있다. 이러한 속담들은 모두 사람의 행실을 비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자성어에서도 개가 많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이전투구(泥田鬪狗)’라는 말이 있다. 선거철에 흑색선전으로 난무하는 후보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이 떠올릴 법한, 진흙탕 속에서 싸우는 개들이란 뜻이다. 프랑스에서는 ’하루에 두 번, 빛과 어둠이 서로 바뀌는 이른 새벽과 늦은 오후‘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멋스러운 표현이지만,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에, 다가오는 짐승이 우리를 지켜주는 개인지, 우리를 해치려고 하는 늑대인지를 알 수 없다는 무서운 의미가 숨어있다. 위기의 상황에 순간적인 판단과 대처하는 능력에 따라 우리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전 세계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었다. 세계평화의 마지막 미지수가 풀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증폭되어 ‘비핵화와 북한제재 완화’의 맞바꾸기가 원만할 거라 믿었다. 그러나 회담 이튿날인 28일 주요방송사의 TV 자막에는 ‘북미회담 결렬’이라고 앞 다투어 보도했다. 또다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는 순간이었다. 증권시장에서도 남북경협 관련주들은 폭락했다. 화면에는 굳은 표정의 김정은위원장의 모습과 트럼프대통령의 심각한 표정이 클로즈업되면서, 불안한 분위기를 가중시켰다. 국내 언론들은 ‘협상결렬’이라는 결과를 반복해서 방송에 내보냈다. 파장을 불러일으킬 만큼 충격적인 소식이었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보면, 협상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는 예상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이미 미국은 일관되게 북한의 핵시설 완전 폐기를 요구해왔다. 물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점점 강화되어, 북한은 사면초가의 현실에 놓여있다. ‘시간은 충분하다.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는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

북한은 지금 ‘개와 늑대의 시간’앞에 서 있다. 중국과 미국은 물론이고, 주변국들의 협상카드들이 다양해 보이지만, 실제로 북한의 실익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 경제적으로 자급력이 궁핍한 북한은 체제붕괴의 위협까지 느낄 수 있다. 미국은 UN의 무기사찰을 거부하고, 걸프전 이후 전범으로 회부되어 2006년에 사형당한 사담 후세인과 김정은위원장을 달리 보는 것 같지 않다. 12일(현지시간)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트럼프대통령은 “우리는 (한국을) 보호해주고 있으며, 엄청난 돈을 잃고 있다. 한국을 보호하는데 연간 수십억 달러가 든다. 그들(한국)은 내 요구(분담금 인상 요구)에 동의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 보좌관과 함께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을 5억 달러 더 내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화 몇 통에 5억 달러(Five-hundred million, with a couple of phone calls)다. 앞으로 몇 년에 걸쳐 더 오를 것이다( over the years, it will start going up)”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대목이다. 미국 대통령은 과히 가공할 만한 위력과 영향력을 가졌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의 우방국으로서 단지 ‘친구’로만 여겼다가, 시쳇말로 ‘삥 뜯기는 기분’이다. 트럼프의 취임 이후 미국은 자국의 실리주의를 표방해왔다.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 것들은, 무엇이 되었건 일관되게 ‘제거’ 혹은 ‘수정’되어 왔다.

우리 정부는 남북 경제협력의 일환으로 개성공단의 재가동,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등의 숙원사업들을 하나씩 진행해 나가야 한다.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약속쯤은 ‘성과’라고 여기지도 않는 미국이다. 일각에서는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위원장의 ‘도보다리회담’이 무슨 소용이냐고 나무라는 이들도 있나보다. 회담의 결렬로 남북철도사업부터 무기한 보류해야 하나보다. 남과 북을 잇는 우리나라 땅에, 우리의 철도조차 강대국의 윤허(允許)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나마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새 상봉 약속, 생산적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보도했고, 미국도 북한과 추후 회담이 가능할 것이라는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알려져서 다행이다. 한반도 평화의 불씨가 주변국들 잇속의 찬바람 때문에 꺼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비핵화의 단계별 실시와 제재완화가 단계별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소통의 불쏘시개가 필요하다. 서로 간의 믿음이 부족한 북한과 미국에 ‘대한민국’이라는 보증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대한민국이 출격할 때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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