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잘해주지 말걸 그랬다
처음부터 잘해주지 말걸 그랬다
  • 승인 2019.03.0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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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봄이 한 뼘씩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 마당에 내려서니 짙은 매화향기가 품안 가득 차오른다. 담장 위, 나란히 앉아 긴 하품을 하고 있던 고양이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그르렁거리며 밥 달라고 보챈다.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마지막이 될 밥 봉투의 실밥을 풀었다. 이리 헤어지게 될 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마음 주지 말걸 그랬다. 특식으로 참치 캔도 따주고 집고양이처럼 차별 없이 영양가 듬뿍 담긴 별식도 주지 말 걸 그랬다. 끝까지 책임져주지 못할 일이었다면 처음부터 잘해주지 말걸 그랬다.

반찬도 없이 먹는 밥이란 그냥 맨밥이었다. 영양가라곤 거의 없는, 먹고 죽지 않을 만큼의 밥이었다. 목숨 겨우 부지 할 최소한의 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밥 때만 되면 어찌 알고 달려와 온 몸을 바닥에 궁굴리며 눈인사로 화답했다. 내 발등을 핥으며 신발에 머리를 박고 털끝을 고르면서도 밥통의 밥알들과 내 눈을 번갈아 살피는 눈칫밥이었지만 맛있게 먹곤 했다. ‘단 한번이라도 밥 주기 시작하면 온갖 동네 떠돌이 고양이들이 떼거리로 몰려온다.’며 담장너머 할머니의 핀잔을 참 오래도 견뎠다. 그러기를 대략 4년, 생각해보니 그 4년의 세월도 한철인양 흘러가 버렸다.

대개 길고양이들은 3개월 이후부터 아기 고양이의 독립교육을 시작하는데 짧게는 사흘에서 길게는 일주일 정도 떠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는 곳이 척박할수록 새끼들을 내보내고 반대로 살기 좋은 곳이면 자신의 자리를 새끼에게 물려준다고 한다. ‘동귀수도(同歸殊塗)’, 길은 달라도 돌아가는 곳이 같은 것처럼.

처음 이곳으로 이사 오던 날부터 고양이들은 삼대를 이어 출산을 했다. 주택에 머무는 동안 어미 고양이는 딸 고양이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났다. 딸 고양이의 딸은 어미가 내어주고 떠난 이곳에서 새끼를 낳았고, 손녀 고양이와 함께 손녀가 낳은 새끼를 끝까지 품어 돌보는 고령의 할미고양이까지, 한 번 출산할 때마다 네다섯 마리씩 새끼를 낳아 대를 이어 살았다. 그러는 동안 집안과 밖을 오가며 로드킬을 당하기도 하고 먼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다. 수 없이 거듭되는 만남과 이별, 그렇게 아픔과 상처로 결국, 지금 남은 고양이는 겨우 세 마리에 불과했다.

문득, 후회가 생긴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들 하지만 내가 돌본 고양이들은 다른 길양이들처럼 쉰밥찌꺼기나 이쑤시개, 깨진 유리조각들이 뒤섞여있는 쓰레기봉투를 뒤져 본적이 없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익숙해지면서부터 전전긍긍, 바닥에 떨어진 밥을 찾아 헤매 다니며 더 이상 날기를 포기해 버린 천덕꾸러기 닭둘기들처럼. 꼬박꼬박 밥을 챙겨주는 일이 최선이라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최선이라 생각했던 나의 어설픈 동정심으로 인해 그들이 생존을 위한 차선책을 강구할 기회를 빼앗은 셈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이장희 시인의 ‘봄은 고양이로소이다’가 절로 떠오르는 봄날, 나는 이사를 간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쁘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요즘, 좁은 엘리베이터 안, 인사도 없이 등 돌리고 서서 눈길이 아닌 층수에 머물러야할지도 모를 아파트로. 내가 떠나고 남은 대문 앞, 우체통 가득 쌓여있는 우편물, 진물이 줄줄 흘러넘치는 쓰레기봉투를 헤집고 있는 고양이들의 울부짖음이 도움을 알리는 신호로 알아듣고 누군가는 눈길 한 번 주는 세상이길 바라며 나는 그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

똑, 똑, ‘당신이 외면하면 이 신호는 꺼질지 모릅니다.’ 작은 관심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한 죽어가는 이웃도 살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각인 시켜주는 TV속 광고 카피가 무심한 듯 흘러간다. 죽어가는 이웃 속에 길양이들은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가슴이 미어진다. 매화 흐드러지게 핀 꽃그늘 아래, 발정기의 낯선 수컷 고양이 한 마리가 상반신을 납작하게 엎드리고 앉아 꼬리를 치켜세운 암컷 고양이 뒤태를 살피고 있다. 새 이웃들이 또 태어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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