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가득 매화 국화, 구름 냇물 장식하니 삶이 호사스럽네
뜰 가득 매화 국화, 구름 냇물 장식하니 삶이 호사스럽네
  • 김광재
  • 승인 2019.03.0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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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선생이 벼슬 버린 후
고향서 제자 키우던 곳
학문·덕행 추모 위해 건립
백매3
붉은 꽃받침의 백매.

 

성주 회연서원...봄이면 매화나무 만발하는 곳 ‘백매원’

양산 통도사 홍매화는 한 달 전에 폈고 섬진강 매화도 반 넘어 개화했다는데, 성주 회연서원 백매원(百梅園)은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참이었다. 연두색 꽃받침의 청매와 붉은 꽃받침의 백매가 띄엄띄엄 피어있었다. 아직 온 마당을 환하게 밝히지는 못했지만, 스치듯 지나가는 향기는 이곳이 벌써 매화의 영토임을 알려주었다.

회연서원은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인조 5년(1627) 건립됐다. 이 곳은 한강이 창녕현감으로 있다가 내직으로 발령 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회연초당을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그는 초당 앞뜰에 매화 1백 그루를 심어 백매원이라 이름 붙이고, 이런 시를 남겼다.

자그마한 산 앞에 자그마한 집

小小山前小小家

뜰 가득 매화 국화 해마다 느는구나

滿園梅菊逐年加

거기에 구름 냇물이 그림처럼 장식하니

更敎雲水粧如畵

세상에서 나의 삶이 가장 호사스럽네

擧世生涯我最奢

일찍이 벼슬보다 학문에 뜻을 두었던 한강이 매향 국향 가득한 초당에서 책 읽는 즐거움이 세속의 부귀영화보다 낫다고 노래한 것이다.
 

청매
연두색 꽃받침의 청매.

그런데 성호 이익(1681~1763)이 지은 ‘성호사설’은 회연초당 백매원에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를 전하고 있다. “옛날 정한강은 매화를 많이 심고 동산 이름을 백매원이라고 했는데, 최수우가 거기를 지나다가 도끼를 구해서 다 베어버렸다. 그 매화가 늦게 피는 때문이란 것이다.” 수우는 최영경(崔永慶, 1529~1590)의 호다. 그는 남명 조식의 문인으로 학행이 뛰어나고 기절을 숭상했으며 정구·김우옹·오건 등과 교유했다고 한다. 성호사설은 그 이유를 “지금 매화의 성질을 살펴보니, 따로 집에다 잘 길러서 보호하지 않으면 반드시 복숭아, 오얏꽃 따위와 함께 피게 된다. …… 최수우는 사람됨이 청고(淸高)했던 까닭에 이 매화의 이치를 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1587년에 한강이 수우당 최영경을 방문했고 1589년에 수우당이 회연으로 한강을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느니, 두 사람이 백매원을 두고 대화를 나눈 적이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이 통하는 사이라 해도 남의 집 뜰에 심어놓은 매화나무를 함부로 베기야 했겠는가.

갈암 이현일(1627~1704)이 쓴 최영경의 행장에는 더 자세한 기록이 있다.

 

한강매
한강이 심은 매화나무 중 유일하게 살아 남은 ‘한강매’.

“일찍이 한강의 백매원에 들렀는데, 당시는 2월이라 매화가 만개해 있었다. 선생이 동자를 불러 도끼를 가져오라고 한 뒤 온 뜰의 매화나무를 모두 찍어서 넘어뜨리라고 하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 만류했다. 선생이 웃으면서 그만두게 하고 이르기를, ‘매화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눈 내린 골짜기의 추위 속에서 온갖 꽃들에 앞서 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도리(桃李)와 봄을 다투고 있으니 어찌 귀할 것이 있겠는가. 제공들이 만류하지 않았으면 매화가 거의 베어짐을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하였다. 대개 평소에 우뚝하게 정립된 지조가 있었으므로 비슷한 사물을 끌어다 우의(寓意)한 것이 이러하였던 것이다.”

성호사설과 행장 모두 100여년 흐른 뒤에 쓰인 것이니 이 일화에는 훗사람들의 더함과 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00그루의 매화 정원이 당시 사대부들의 관념에 다소 생경하기는 했을 것 같기는 하다. 지조의 상징으로 사랑받는 매화가 눈 속에서 고고히 피지 않고, 소인배들처럼 떼를 지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면 말이다.

그 매화나무들도 수우당의 도끼는 피할 수 있었지만 세월은 피하지 못했다. 한강이 심은 100그루 중에서 지금까지 4백여년을 살아남은 것은 딱 한 그루다. 나머지는 모두 근래에 심은 나무들이다. 살아남은 나무는 ‘한강매’라 이름 붙여졌다. 한강매 열매로 싹을 틔운 어린 나무 몇 그루가 그 주위에서 자라고 있다.
 

회연서원백매원
부지런한 나무 몇 그루는 활짝 꽃을 피웠다.

 


선비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매화는 이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꽃과 향기는 봄이 왔음을 느끼게 해주고, 열매는 건강을 지키는데 도움을 준다. 매화 필 무렵이면 섬진강변은 관광버스로 몸살을 앓고, SNS에는 매화 사진이 자꾸 올라온다. ‘매실청 1T’는 여러 레시피에 당연한 듯 들어있고, 매실이 나오는 철에는 마트마다 설탕, 담금주, 유리 용기를 모아놓은 특별 코너가 생긴다.

지난 4일 회연서원, 먼저 꽃을 피운 몇 그루 나무에는 벌들이 몰려와 꽃을 어루만지고 입맞춤하느라 분주했다. 겨우내 허기를 지울 꿀이 반가워 그런 것이겠지만, 지난여름 기록적인 더위와 지난겨울 가뭄을 이겨내고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에게 정말 장하다고 갈채를 보내는 것 같았다. 지금쯤이면 더 많은 꽃이 벙글어지고, 셔터 소리와 환한 웃음이 어우러질 것이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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