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mentor)의 바다
멘토(mentor)의 바다
  • 승인 2019.03.1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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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유아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국공립과 사설 교육기관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평생교육원을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개설된 강좌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다. 목적에 따라 취미, 자격증 취득, 취업 등 다양한 수업들을 선택할 수 있어서 선택의 폭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려는 자는 서로의 목적에 따라 일사분란하고 신속하게 역할들을 해낸다. 이것이 교육의 현실이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했다. 먼 훗날은 고사하고 속성과정, 단기과정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이상이 아닐 수 없다. 유치원 대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교육현실을 통감(痛感)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에서는 무법천지에 말뚝을 박고, 깃발을 펄럭이며 점유권을 주장하는 몰염치의 집단행동이 속출하고, 그 와중에 존경받아 마땅한 직업군에서 몇몇 인사들의 그루밍(grooming)성범죄와 위계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수십 년 동안 숙성된 채, 민낯을 드러냈다. 이른바 어디를 둘러봐도 스승과 제자의 청출어람(靑出於藍)의 덕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르치는 자의 ‘보람’과 배우는 자의 ‘감사’는 고서(古書)에 활자로 남았나보다.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멘토’라는 말이 한때 유행처럼 다양하게 쓰였다. 고대 그리스의 이타카 왕국의 왕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나가면서, 친구인 멘토르(Mentor)에게 아들 텔레마코스를 보살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10년 뒤 오디세우스가 돌아올 때까지, 텔레마코스의 친구이자 아버지로서 잘 돌봐주었다. 오디세우스가 “역시 멘토르(Mentor)야!”라고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멘토는 조언자로, 멘티(mentee)는 조언을 받는 사람으로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여기에서 비롯된 멘토링(mentoring)은 기술적인 인재육성의 코칭(coaching)과는 구분된다. 멘토링은 인성을 비롯한 전반적인 교육이면서, 동시에 상호보완하며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철학적인 고민도 함께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지혜를 모아서 문제인식도 함께 나누었다. 동지애적인 요소의 의미까지 포함된 것이 멘토링이었다. 모든 지식을 다 가진 스승은 세상에 없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훌륭한 스승도 드물다. 잘 알지 못하면서도 대충 둘러대는 이는 ‘스승’이 아니라 ‘유능한 강사’일 뿐이다. 멘토링은 일대일 방식이 가장 흔하지만, 멘티의 성향에 따라 일대다의 방식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멘티 간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도 있고, 시너지(synergy)효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현재 도심의 초등학교는 보통 한 학급에 30여명의 학생이 수업을 하고 있다. 80년대 ‘콩나물시루’에 비유되던 70여명의 학생 수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과거에는 하루빨리 기술과 실무에 능한 인력을 배출하기 위해 코칭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인성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전문적인 소양을 갖춤 멘토제도 도입이 절실하다.

한국체육대학교의 감사가 이제야 마무리되었나보다. 감사 결과발표를 앞두고 새어나오는 이야기가 심상치 않다. 대학 내에서 사설 강습팀을 운영해온 교수와 유명코치 두 사람이 연간 챙긴 교육비가 수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결과를 앞두고 속단하긴 이르지만, 일각에서는 전혀 새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문제가 된 인물 중 하나가 수감 중인 조재범 전 코치다. 한 선수를 미성년자였을 때부터 성폭행을 해왔다는 혐의로 조사 중인 그가 옥중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빙상계의 적폐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 쇼트트랙 코치 시절 승부조작 혐의로 인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벌금형으로 감형 받은바 있다. 그 사건이후 3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국가대표 코치로 발탁되었다는 사실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선수 4명의 폭행사건이었지만, 그는 용서를 구한 것이 아니라 합의를 구했다. 피해자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선수는 합의를 했고, 이것이 오히려 피해자가 폭로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각 언론들은 ‘조재범 사건’이 아니라 ‘피해자 사건’으로 대서특필했다. 조재범 전 코치보다 피해자의 얼굴이 더 많이 노출된 어처구니없는 여성인권과 마주한 셈이다. 수많은 메달 획득의 이면에는 어린 학생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한 코치와 이를 묵과한 당국, 그리고 경쟁을 부추긴 전반적인 풍토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따스한 인격과 품성을 가진 멘토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넓은 무한경쟁의 바다, 어디에서 우리의 멘토를 찾아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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