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뒤를 밟다
그림자의 뒤를 밟다
  • 승인 2019.03.1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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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길
문영길

기지개로 제 키를 훌쩍 키운 자신만만한 그림자가
발걸음 곁에 바짝 붙어 초록빛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오늘을 살아 낼 각오는
타인의 발에 무시로 밟히는 우울을 습관처럼 복제했다

현실의 중심에 다가갈수록
자세를 낮추는 순응에 의탁한 한 뼘 그림자의 미행에
은신처라라야 제 발밑뿐인 광장에서
수직으로 꽂히는 햇살에 표적이 되는 정오正午 즈음
힘에 부친 열등의 그림자를 숨기는데 열중해야했다

기대를 충족 못한 오후午後가 등을 보이면
과장된 위로처럼 찾아오는 땅거미
검은 거울 속 실제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 피곤함이
제 그림자도 거두지 못했다가
포장마차 불빛에서 더욱 친숙하게 만나는 실루엣

술 취해 달빛에 업혀오는 그림자를
차곡차곡 개어 피곤한 발치에 두고 나니
책임으로부터 홀가분하다

◇문영길= 경기도 남양주 출생. 월간<<문학21>> 시부문 등단(2008). 청옥문학 편집장. 새부산시인협회 총무부장. 청옥문학협회 기획분과 위원장. 천성문인협회 편집국장 . 부산영호남문인협회. 수상: 한국청옥문학상, 모래톱문학상 대상, 부산시단 작가상, 천성문학상 대상. 시집: ‘자드락길에서 만난 여유’, ‘업둥이’ 외 ‘석교 단시조 선집’ 등 공저 다수.

<해설> 석가모니께서는 “일체는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라 했다.무언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사고체계는 이 사회가 우리에게 주입한 것이다. 그것은 잘못된 우리 사회를 고스란히 긍정하는 사고체계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고 어떤 틀에 꿰맞추는 폭력이 무의식 속에 스며들어있다. 물음표를 가득 안고 휘청거리던 어느 날, 내가 만든 나의 망명정부에서 내안을 다듬는 화장 도구로 세계를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만히 조각한다. 그래서 고민의 크기만큼 가장 어려운 시간과 불리한 상황을 관통하며 점점 멀어지는 상황에서도 최고를 창조하기 위해 가진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붓는 은밀한 반항을 품어본다. 견디고 혁신하기 위해 힘에 부친 그림자 너머의 그 무엇이 필요하면, 혼자 할 거라며 부질없이 아장아장 걸으며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한명쯤은 더 있을 것이란 사실에 위안 받는다. 가끔 특이한 눈으로 평범한 것을 응시하면, 영원히 머물러주지 않는 곳 즉 무상한 곳에 불안과 서글픔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자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아는 자가 진정한 프로이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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