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떠났다
그녀는 떠났다
  • 승인 2019.03.1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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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주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생때였다. 여름방학, 친구와 청송주왕산에 놀러갔다. 이십대후반인 큰오빠가 청송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아버지가 보고 오라고 하셨다. 타지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는지 무척이나 궁금해 했다. 큰오빠에게 장남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지우고 그 역할을 잘 해 주기를 바랬고, 맏며느리의 역할을 잘 해 줄수 있는 여자인지 아닌지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건 부모님들의 소망과 다르더라도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사귀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결혼을 시킬 것 같았다.

연락이 닿아 약속장소에 나갔는데 그녀가 함께 있었다. 큰 키에 하얀 피부, 뿔테안경을 쓰고 화사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도시적인 세련미가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귀티가 났다. 평소 말이 많지 않아 무뚝뚝하게만 느겨지던 큰오빠가 연애를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주변을 환하게 해주었다. 어둡고 우울한 생각들을 날려버리게 했다. 그녀와 함께 있는 주왕산이 무릉도원처럼 꽃이 피었다. 약수터에서 길러올린 푸른빛이 도는 약수물로 백숙을 고아 파는 집에서 먹는 백숙도 몸에 힘을 주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밥을 먹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큰오빠와 그녀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백숙을 먹고 서로 헤어졌다. 나중에 또 봤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서로가 다시 보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싶다. 계곡을 따라 걷는 내내 경치도 좋았고, 기분이 좋았다. 새 언니가 곧 생길 것 같았다.

집에 돌아가니 아버지와 엄마는 그녀를 만났는지, 보니 어떻더냐고 물었다. 본 대로 이야기를 하니 엄마는 안경낀 여자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라고 했다. 눈이 나빠서 안경을 끼는 것 뿐인데 안경낀 여자에 대한 편견이 있는 듯했다. 그러나 큰오빠 나이가 서른 즈음이었던지 둘의 약혼식은 빨리 치러졌다. 분홍색 한복을 입은 사진이 곧 집 벽에 걸렸고, 몇 개월후에 결혼식을 했다. 결혼식날은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 중학교 때 어떤 친구는 오빠가 결혼하는 날 울었다고 하던데, 홍희는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보기에 무뚝뚝한 오빠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 신기하고 다행이다 싶었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랬다.

새언니가 생기고부터 명절이 되면 집에 활력이 생겼다. 밝은 기운을 가져다 주었고, 환한 웃음을 가져다 주었다. 부엌에서 음식을 같이 하며 이야기도 나누니 좋았다. 친언니와 9살 나이차이가 나서 나이차이만큼의 경험의 차이가 있었는데 2살 차이라 친구같기도 하였다.

맞벌이를 하여 나름 여유가 있어서인지, 맏이라서인지 집에 올 때는 맛있는 음식들도 많이 사 오고, 엄마 아버지에게 옷도 사드렸다. 무뚝뚝한 엄마때문이지 가족들끼리 대화나 웃음이 거의 없었는데 서로간에 소통도 많아졌고 웃을 일도 많아졌다. 한 해 두 해 해가 갈수록 큰오빠와 큰새언니가 집의 중심을 차지하였다. 맏이라는 위치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맏이의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녀가 떠났다. 갑자기 ‘나는 가나다 말ㅅ도 ‘™다 니르고’ 떠나갔다. 1월, 간밤에 비가 내려 흐린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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