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에 대한 단상
태극기에 대한 단상
  • 승인 2019.03.1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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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재
기획특집부장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태극기를 직접 그린 적이 있었다. 컴퍼스와 삼각자로 정확한 비율로 작도를 하고 물감을 칠했다. 작도는 정확했는데 붓질이 어려웠다. 그래도 반 아이들 대부분은 좀 떨어져서 보면 그럴듯한 정도로 태극기를 만들어냈다. 그림 잘 그리는 몇 명은 인쇄한 것처럼 깔끔하게 태극기를 그렸다.

운동장 조회 국기강하식마다 보는 태극기를 규격에 맞게 한번 그려봤다고 해서 애국심이나 국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나지는 않았다. 태극기를 완성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민족주체성’ 함양을 위한 교육으로 시켰겠지만, 아이들에겐 그저 지겹고 짜증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때 일본을 부러워했었다. 일본 애들은 국기 그리기 시간에 컴퍼스로 원을 하나 그리고 빨간 칠만 하면 될 테니 말이다. 프랑스는 줄 두 개만 그으면 되니 더 쉽다는 아이도 있었고, 미국은 별 50개 그리려면 고생 좀 하겠다는 아이도 있었다. 누군가 독수리 문장이 들어있는 멕시코 국기를 들이대자 다들 조용해졌다. 우리는 다른 나라 학교에서도 국기 그리기를 하는지 궁금해졌다.

학교에서는 국적 있는 교육이니 충효니 하는 말들이 유행어처럼 떠돌아다녔지만, 태극기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았다. 양정모가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 땄을 때 맨 윗자리에 올라가는 태극기를 보고는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뭉클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대형 태극기 앞에서 한 청년이 웃통 벗고 달려나가는, AP통신이 20세기 100대 사진으로 선정한 ‘아! 나의 조국’이란 제목의 사진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런 감동은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일 뿐, 태극기는 그냥 태극기였고 늘 주변에 있었다. 살갑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부재를 상상하기 힘든 사람처럼 말이다.

그런 태극기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태극기집회’의 태극기를 보면서였다. 저 태극기가 내가 알고 있는 태극기와 같은 것이라 해도 될런지 혼란스러웠다. 3.1절 100주년을 앞두고 찾아간 천안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서는 펄럭이는 태극기들을 위화감 없이 대할 수 있었다. 태극기는 하나지만 그 상징이 가리키는 ‘우리나라’의 내용은 사람마다 집단마다 다르다는 사실, 그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지난 100년간 늘 그래왔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문득 이게 태극기의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는 태극기에 관해 1882년 박영효가 고종의 명을 받아 일본에 가면서 ‘태극·4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1883년 3월 6일 왕명으로 이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태극 문양은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고, 태극을 중심으로 배치된 건(乾), 곤(坤), 감(坎), 리(離)의 4괘는 각각 하늘, 땅, 물, 불을 상징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떤 이념이나 가치가 아니라 우주의 원리를 담은 것이다. 쇠락해가는 조선왕조가 우주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하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태극기 안에는 우주가 다 들어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를 상징한다는 일본 국기는 태극기에서 건괘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30년도 못 되어 우주의 나라가 태양의 나라에 망한 것은 아이러니다. 생겨난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법칙에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원한 나라’는 종교가 할 수 있는 말이지 현실 국가가 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조선이 망한 9년 뒤에, 나라 없는 백성들의 피로 물든 태극기가 이 땅에 넘실거렸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 조선이 망한 9년 뒤에 국민이 스스로 다스리는 대한민국이 태어난 것이다. 사라진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법칙에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로써 태극기는 과거에는 조선이었고 지금은 대한민국인 ‘우리나라’의 상징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태극기는 많은 일을 겪었다. 제 나라 군대가 쏜 총에 맞아 쓰러진 사람의 관에도 태극기가 덮였고, 진압한 군인에게 훈장이 수여될 때에도 태극기는 옆에 서 있었다.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고문할 때도 태극기 액자는 벽에 걸려있었을 것이고,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민들도 같은 태극기를 흔들었다.

태극기는 텅 빈 상징일 뿐, 거기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는 지금 이곳의 사람들이 정하는 것이다. 지금도 다양한 사람들의 욕망과 분노가 덧입혀져 펄럭이고 있다. 동의는 할 수 없지만 이해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태극기 옆에 이스라엘 국기가 펄럭이는 이유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여튼 상징을 둘러싼 투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 싸움이 끝나면 또 다른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우주의 원리를 담은 태극기는 침묵한다. 너무 큰 말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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