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원수모독죄가 웬 말
국가원수모독죄가 웬 말
  • 승인 2019.03.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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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형
행정학 박사
객원논설위원
우여곡절 끝에 열린 국회본회의장에서 또 다시 추태가 일어났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 연설도중 발언을 문제 삼아 여당 의원석에서는 고성이 난무하고, 여당의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기 위해 단상으로 나왔으며, 이에 대응하여 제1야당의 원내수석부대표가 달려 나오고, 뒤이어 여당의 원내수석부대표와 제1야당의 정책위의장까지 합류하여 실랑이가 벌어지는 등의 일련의 사태로, 제1야당 원내대표의 발언이 잠시 중단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TV를 통해 전 국민들에게 생중계되었다. 그나마 과거처럼 많은 의원들이 몰려나와 몸싸움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으니 많이 좋아졌다고 해야 할지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본회의장에서 면책특권을 가진 동료의원이 발언을 하고 있는데 그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뛰어나와 항의함으로써 발언을 중단시키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그들의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도 이러할진데 일반 소시민들의 사회에서는 어떠하겠는가?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라도 다른 사람의 발언을 제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제발 정해진 법과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국회가 솔선수범하여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발언이 잘 못되었으면 끝나고 따져도 충분하지 않은가?

비록 의장의 원만한 중재로 인해 제1야당의 원내대표 연설은 무사히 끝났지만 앞으로의 국회 의사일정이 순탄하지 못할 것이라는 등 그 후폭풍은 만만하지 않을 듯하다. 여당과 다른 야 3당은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출하였는데, 특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을 강하게 성토하면서 국회윤리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여당의 의원총회에서 참으로 한동안 잊고 있었던 말을 듣게 되어 매우 씁쓸한 마음과 함께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의원총회에서 당대표가 “이것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입니다. 다른게 아니고, 대한민국 국가 원수에 대한 모독죄입니다”라고 한 발언이 그것이다.‘국가원수모독죄’참으로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에 국가원수모독죄라는 것이 있는가? 국가원수모독죄 아니 국가모독죄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서 만들어진 죄목이다. 1975년 3월 당시 여당이던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가 형법을 개정해 신설했던 것으로 그 내용은 내국인이 대한민국이나 헌법에 따라 설치된 국가기관을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형법 제104조 2항에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1988년 당시 여당이던 민주정의당에 의해 삭제되었으며, 2015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국가와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을 위축시킨다는 것”을 이유로 하여 만장일치로 위헌(違憲) 결정을 내린 것이다.

국가모독죄는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기 위해 악용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죄명이다. 이를 통해 당시 정부와 독재체제를 비판한 많은 사람들이 이 조항으로 인해 처벌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반인들 사이에는 죄(罪)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바로 국가원수모독죄라는 우스갯소리까지 회자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정치의 달인이라는 이해찬 대표가 이를 몰라서 국가원수모독죄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다분히 여론과 지지층을 의식한 정치적인 수사(修辭)라고 보여진다. 그렇지 않다면 이 대표는 유신시대의 박정희정권처럼 지금 문재인정권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어떠한 경우에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매우 위험한 인식을 가진 청산 대상 정치인으로 폄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하에서 지금의 여당의원이 당시 대통령을 향해 ‘귀태(鬼胎)’라고 표현한 것은 괜찮은 것이고, 외신보도를 인용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대통령에 대한 발언 내용은 부적절하였는지 아닌지는 국민들이 판단할 사안이다. 여당 또한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흠집 내기 식으로 제1야당 원내대표를 윤리위원회에 제소하는 일종의 정치적인 소모전을 통해 우여곡절 끝에 열린 3월 국회가 공전되는 상황을 만들지 말고 총체적 위기에 빠진 국내 상황을 수습하는데 전력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생활은 안중에 없이 당리당략에 매몰된 채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 것만 듣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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