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암 이야기
세이암 이야기
  • 승인 2019.03.1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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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전 중리초등 교장
박동규 전 중리초등 교장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가 많이 시끄럽다. 국회에서는 ‘국가원수 모독죄(?)’로 여야가 날을 세우고, 사법부는 ‘적패판사 심판’등으로 일부 법관들이 재판정에 서야 되는 모양이다. 또 유명 연예인의 ‘몰래 카메라 카카오 톡’사건으로 온통 나라가 난리법석이다. 누구의 말이 옳든 그르든 사회가 너무 혼란스럽다.

전 가디언지의 마이클 브린은 ‘민심이 법 위에 있어선 안 된다.’고 하였다. 그는 민심은 특정한 이슈에 대한 대중의 감정이 결정적인 규모에 이르러 시민 전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여겨지는 상태라 했다. 민심은 감정이라 논리적이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는 다수가 느끼는 감정이 아닐 때조차 있다는 것이다. 민심은 감정이라 불공정하고 일시적일 수 있으며
 집단 괴롭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특정 시각이 민심이 되면 반대하는 시각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심은 때로 상스러워지고 폭력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무규범의 ‘아노미’현상이 생길 수 있는 상태이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마음까지 혼돈된다. 심란하다. 대경예임회에서 하동 쌍계사에서 불일폭포를 가는 산행을 계획했다. 그곳엔 고운 최치원의 글씨가 산재하는 곳이다. 쌍계사 입구의 ‘쌍계 석문(雙磎石門)’, 쌍계사의 ‘진감선사대공탑비’, 불일암의 전망대 바위 ‘완폭대(翫瀑臺)’, 수중 암반 반석의 ‘세이암’ 등이 있다.

그 중에서 세이암은 하동의 화개면 법왕리 지리산 골짜기에 있다.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은 세상을 등지고 지리산을 주유하였다. 당시 주변의 벼슬아치들이 자기에게 비루한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지리산 화개천에서 귀를 씻으며 바위에 ‘세이암’이라 새겼다고 한다. 최치원은 하도 물이 맑아 발을 담그고 있는데 게가 발가락을 물어 그 게를 잡아 멀리 던졌다고 한다. 최치원은 게를 고약하게 여겨 “다시는 여기서 사람을 물지 마라.”고 했는데 그곳엔 게가 살지 않는다고 한다. 속세를 벗어나고자 귀를 씻었는데도 주변의 벼슬아치들은 계속 최치원을 곱씹어 물고 늘어진 모양이다. 세이암은 여러 은유의 의미를 되새겨 볼 만한 곳이리라.

중국에서 성군으로 일컬어지던 요임금은 천하를 허유에게 물려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허유는 이를 사양하고 그런 말을 귀로 들은 것조차 부끄럽게 여겼다. 그래서 허유는 시냇가에 가서 귀를 씻고는 산속으로 숨어버렸다. 허유가 귀를 씻은 곳이 기산의 ‘세이천(洗耳川)’이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모두 혼탁한 사회를 말한다. 도덕적으로 해이된 사회적 혼란기를 말한다.

최치원은 화개동을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 노래하였다. ‘신선이 된 사람이 자고 일어나 옥침을 밀어내니, 이내 몸과 세상이 문득 천년이 되었네. 봄이 오니 온갖 꽃들이 땅 위에 가득하네.…….’로 화개동을 극찬하였다.

세이암에서 가까운 곳에는 500년 된 푸조나무가 자라고 있다. 최치원이 지리산에 와서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두었더니 자랐던 나무의 후손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환학대(喚鶴臺)도 최치원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지리산 화개동과 쌍계사는 최치원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최치원은 ‘사산비명’을 썼다. 보령 만수산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문경시 희양산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경주시 말방리 ‘초월산 대숭복사비’, 그리고 쌍계사의 ‘진감선사 대공탑비’이다.

진감선사는 얼굴이 까맣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름을 부르지 않고 ‘까만 스님’이라 불렀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고, 도를 찾는 사람에게는 국경이 없다.’고 진감선사 비문은 시작한다.

사람들은 ‘석가모니와 공자의 가르침은 그 흐름이 나뉘고 체제도 다르다. 둥근 구멍에 네모난 자루를 박는 것과 같다. 상호 모순된 채 한 귀퉁이만을 지키는 데 얽매여 있다.’고 생각했다. 최치원의 생각은 다르다. ‘시를 해석하면서 글자 때문에 글귀를 해쳐선 안 된다. 또한 글귀 때문에 그 의미를 해쳐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제 각기 경우에 맞는 말이 꼭 있다는 뜻이다.

진감선사는 왕을 위해 발원해 달라는 청을 거침없이 내치고, 중생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헌신하였던 고귀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어떻든 국민을 위한 아낌없는 헌신, 진실은 이것뿐이다. 세이암은 전설이 되어선 안 된다.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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