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이버(Godiva)와 톰(Tom)
고다이버(Godiva)와 톰(Tom)
  • 승인 2019.03.1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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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2015년 12월 서울 강남에 클럽 설립을 함께 추진하던 투자업체 유리홀딩스의 대표와 직원 등이 속한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각종 로비 장소로 활용하고 투자자에게 성접대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화를 주고받은 내용이 공개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응. 여자는? 잘 주는 애들로’는 가수 빅뱅의 멤버이기도 한 승리(본명:이승현)가 발언한 내용이다. 방정현 변호사의 제보로 낱낱이 밝혀진 내용은 실로 소름 돋는 내용들이었다. 성접대와 관련된 내용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 여배우의 유서와 메모를 통해서 밝혀진 바 있으나, 당시 가해자는 지금까지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건재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해프닝에 불과한 것들이었을까. 과연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는 했었던 것일까. 그렇게 여배우는 죽음으로써 진실을 호소하였으나, 권력의 벽은 두껍고 높기만 했다. 세월은 무심하게 흘렀고, 그녀는 안타까운 희생양의 상징으로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이번 사건은 서울 강남의 유명클럽 ‘버닝썬’의 미성년자 출입 의혹으로부터 시작해서 성매매, 접대, 경찰총장으로 언급되었던 총경급 인사의 개입까지 그야말로 수사가 진행될수록 가관이다. 게다가 가수 정준영의 성관계 불법동영상 촬영, 유포는 이 사건의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다만 버닝썬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유명연예인이라는 것만 빼면 공권력이 개입된 과거의 성매매사건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연예인이라고 하면 쉽게 현혹되는 여성들을 나무라는가 하면, 여성들을 이용한 남성들의 갈취가 극에 달하고 있다고 개탄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사건의 핵심은 미성년자 출입사건을 무마해주겠다며 버닝썬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를 받고 있는 강모씨와 같은 공권력의 남용과 이를 필요로 하는 업주들의 불온한 인식에 있다.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는 해마다 연인들의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밸런타인데이는 3세기(269년) 로마시대에 순교한 사제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황제의 허락 없이는 결혼이 불가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사랑하는 연인들의 결혼을 증언한 이유로 순교한 밸런타인(Valentine)을 기리며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반면 화이트데이는 일본의 사탕 제조업자들이 밸런타인데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초콜릿이나 사탕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요즘은 다양한 선물로 대신하기도 한다. 그 중 1926년에 탄생한 벨기에의 고디바(Godiva)초콜릿이 유명하다. 11세기 초 영국 중서부에 있는 코번트리의 영주 레오프릭 백작(Leofric, Earl of Mercia)의 아내가 바로 고다이버였다. 백작은 매번 가난한 농민들의 세금을 낮춰달라는 아내의 요구를 일갈하기 위해 “당신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성내를 한 바퀴 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의 예상을 깨고 고다이버는 알몸으로 백마를 타고 실제로 성내를 돌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마을 주민들은 그녀에게 감동하여 집안의 모든 커튼을 치고, 외출을 삼갔다. 그녀의 용기에 감동한 백작은 약속대로 세금을 내리고 훌륭한 영주로 자리를 잡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기에 덧대는 이야기가 하나 더 숨겨져 있다. 그 와중에 몰래 엿본 사람이 Tom이라는 재단사였다. 그는 며칠 후 눈이 멀었다. 그의 이름은 관음증 환자를 일컫는 ‘Peeping Tom’에 숨겨진 채 쓰이고 있다. 레오프릭과 고다이버는 실존인물이지만, 이 이야기는 설화로 전해진다. 사실유무와 상관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에도 폭정을 세도(勢道)하는 무리들이 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고다이버가 존재하고 있다. 권세에 빌붙어 선량한 탈을 쓰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Tom들도 있음은 물론이다.

1996년 2월부터 10개월간 재판을 받고 군 형법상 반란 및 형법상 내란 목적 살인,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1996년 8월에 사형을 선고받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 그는 1997년 4월에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되고, 15대 대통령 선거 직후 협의를 거쳐 특별사면을 받았다. 그런 그가 1980년 5.18민주화 운동 당시 벌어진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이번엔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2019년 3월 11일 23년 만에 또다시 법정에 섰다. 2013년 10월에 추징금 집행시효 만료일을 앞두고 “전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며 국민의 공분을 샀던 그가, 기자들의 “발포 명령을 부인하느냐”는 질문에 “이거 왜 이래”라고 짜증 섞인 소리를 질렀다. 안타깝게도 오랜 집권 당시부터 지금까지 그의 곁에는 고다이버(Godiva)같은 존재는 없었나보다. 유명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의 사건들이 불거질 때마다 수많은 Tom들이 지켜보고, 눈이 멀었다. 그들에게 열광했던 국민들도 반성해야 한다. 민주주의 맹점 중의 하나인 다수결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소수의 정의라 할지라도, 다수의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가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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