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쌓인 시간의 무덤… 해골 연작 작가 권정호 日 전시회
겹겹이 쌓인 시간의 무덤… 해골 연작 작가 권정호 日 전시회
  • 황인옥
  • 승인 2019.03.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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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종이로 죽음, 신문지로 사회상 표현
해골형상 중심 평면·판화 등 20여점
“어떻게 살 것인지 돌아보는 시간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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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호 개인전이 일본 갤러리에서 열린다.

‘죽음이 있어 삶이 더욱 빛난다’라는 상용구가 가슴을 후벼판다. 누구나 할 수만 있다면 죽음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엄연히 죽음은 존재한다. 이 경우 한탄만 하기보다 죽음을 삶의 의미를 새롭게 재발견하는 길라잡이로 활용하는 쪽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인류는 일찍 간파했는지 모른다. ‘죽음을 삶의 추동력’으로 설정했으니 말이다.

작가 권정호는 ‘죽음’을 ‘삶’의 입장에서 바라본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죽음의 상징처럼 각인된 해골을 작업에 직접적으로 끌어옴으로써 죽음과 삶을 강렬하게 대비시키고, 궁극적으로 깊이 있는 통찰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작가는 보다 상위 개념인 ‘시간’을 언급하며 ‘삶’과 ‘죽음’을 시간 속에서 하나로 통합한다. 그가 “죽음은 단순하지 않다”며 싱긋 웃었다. 해골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메시지가 ‘시간에 관한 것’이었다는 것.

“생명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끝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음 세대를 통해 우리의 DNA는 계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시간의 고리 속에서 삶과 죽음은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권정호 개인전이 18일부터 30일까지 일본 교토에 위치한 시로다 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에는 해골로 대표되는 작품들을 들고 간다. 닥종이로 뜬 해골형상을 쌓아 만든 설치작품 ‘시간의 축적’을 비롯해 평면과 반입체, 판화기법 등 20여점을 소개한다.

권 작가도 작업 초기인 70, 80년대에는 단색화 개열의 미니멀한 작업에 집중했다. 한국 단색화는 서구 미니멀 아트의 요체인 평면성을 바탕으로 한국 고유 정신을 반영한다. 미니멀리즘의 물질적 차원과 개념미술의 정신적 차원, 그리고 동양의 수행(修行)적 문화가 결합해 탄생한 한국의 현대 미술사조로 통칭된다. 권 작가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점 작업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미국 유학이 계기가 됐다. 80년대 중반 지도교수에게 자신의 작업을 선보였을 때 그야말로 싸늘한 반응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에게 점 작업은 ‘개념의 무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점 작업을 보고 감정이 없고 차갑다는 평을 했다. 개념만 있고 인간적이지 않다는 의미였다. 당시 충격을 받았다.”

그때 권정호의 눈에 띈 것이 스피커였다. 작품 ‘사운드’ 연작의 출발이었다. 그에게 ‘스피커’ 연작은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형상으로 환원하는 첫 작업이었다. 말하자면 정신을 육체로 환원함으로써 보다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음(陰)과 양(陽)’, ‘이(理)와 기(氣)’, 추상과 구상의 공존을 의미했다. 작품 ‘사운드’ 연작은 스피커를 화면 중앙에 놓고 배경에 붓 자국을 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스피커 뒤 붓이 스친 자리에는 우리나라 문종이 위에 있는 형상을 표현했다.

“스피커는 소리를 대표하는 형상, 겨울바람에 오롯이 맞서며 바람소리를 내는 문풍지는 ‘개념’으로서의 소리에 해당된다. 소리를 스피커와 문풍지로 표현한다는 것은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은가?”

해골 작업도 그런 맥락의 연장이었다. 영감은 뉴욕 유학 시절 자연사박물관에서 본 해골 뼈로 만든 장신구에서 얻었다. 그에게 해골은 죽음의 상징이자 또 다른 구원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죽음은 언제나 그의 가까이 있었다. 아버지와 형이 의사였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병원에서 죽음의 실체를 목격했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또한 죽음은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시기 그의 몸은 병약했고, 급기야 고3때는 폐렴에 걸려 졸업도 6개월을 늦춰야 할 정도였다. 그 스스로 조차도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죽음의 그림자를 보면서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맞이할 것인지 성찰하게 됐다. 그러면서 죽음이 실존의 문제, 즉 삶의 문제로 다가왔다.”

해골은 죽음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독재정권을 거치면서는 사회적 억압과 모순을 풀어내는 방법론으로 활용됐으며, 대구지하철사고를 목격하면서 죽음과 삶에 대한 이론적 토대는 더욱 견고해졌다. 해골이 입체로 확장된 것은 2005년부터다. 닥종이나 신문지 철사 등으로 수많은 해골을 뜨고 색을 입히기도 했다. 수의 같은 닥종이로 만든 해골에는 죽음을, 신문지로 만든 해골에는 사회상을 담아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존재한다. 수많은 해골을 쌓아놓는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이 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뭉쳐놓은 시간을 펼쳐놓은 것과 같다. 죽음을 통해 우리 삶을 되돌아보면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돌아보았으면 한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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