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호(春湖)씨의 봄날
춘호(春湖)씨의 봄날
  • 승인 2019.03.1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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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시인)
조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인생의 방향이 바뀐다고 한다. 더군다나 부모나 은사, 허물없는 친구에게서 들은 별말 아닌 것이나 다정한 격려 하나에서도 사람의 생각과 인생은 바뀔 수도 있다.

지난 휴일, 딸내미는 이종사촌인 나현이, 정민이, 늦둥이 민서를 데리고 앞산으로 야간산행을 간다고 했다. 낮에는 가봤지만 밤엔 단 한 번도 올라가 본적 없는 동생과 나는 위험하다며 극구 말렸으나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정상에 가 닿아 있는 듯 설레는 표정이 역력해 보였다. ‘한 번도 못해본 일이니 경험이라도 쌓을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말에 승낙을 하긴 했지만 내내 걱정스런 맘이 가시질 않았다.

자정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 온 딸아이가 조금은 상기된 말투로 산에 가길 잘한 것 같다며 오늘의 산행이 감동적이었으며 극적이었다고 했다. 철없는 어린아이인줄만 알았던 동생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오히려 더 많은 걸 배웠다고 한다. 단,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민이가 내려오는 길에 넘어졌는데 걱정이라고 했다.

정상을 조금 남긴 지점에 이르러 아이들은 목이 말랐다고 한다. 마침 자판기가 있어 음료수 세 개를 뽑아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면서 올라갔는데 다 먹고 남은 빈 캔을 버릴 쓰레기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딸내미가 ‘길 옆 돌 위에 얹어놓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찾아가면 되지 않겠나?’며 슬쩍 얘기를 건넸더니 ‘내려오는 길에 까먹을 수도 있다’며 캔은 잘 썩지도 않는데, 지구를 아프게 할 순 없다는 말이 딸내미를 부끄럽게 했다는 것이다. 그 후, 아이들은 빈 캔 세 개를 한 손에 움켜쥔 채 이어달리기 바통 주고받듯 번갈아 들면서 산 정상에 올랐다 내려 왔다고 한다.

‘야간산행’인데다가 더군다나 ‘첫 산행’이었다. 아직은 겨울 끝자락이라 손도 시렸을 테고, 왕복 세 시간 가량의 산행에다 마시던 음료수라 거꾸로 들면 안에 것이 흘러나와 손이 끈적끈적해지니 주둥이가 바로 서도록 해서 뒤집어 들 수도 없다고 했다. 힘들면 한 번쯤 내려놔도 된다고 은근슬쩍 말을 건네 봤지만 ‘바닥에 한 번 놔 버리면 다시 들기란 어려운 일’이라며 산 밑까지 가지고 내려와 분리 쓰레기통 속으로 무사귀환을 시켰다고 한다.

더군다나 내려오는 길에 정민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넘어지면서 까지도 캔을 움켜쥔 체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계곡으로 굴러가 버리면 찾을 수 없을까봐.

그 후, 맏이인 나현이는 한 손엔 막냇동생 민서의 손을 잡고 또 다른 한 손엔 세 개의 캔을 잡고 내려왔으며 딸내미는 저 보다 키가 큰 정민이를 부축하고 내려오느라 애가 탓을 것이다.

정민이 발목의 인대가 파열되었다는 소식을 다음 날 아침, 동생에게 들었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정민이는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게 꿈인, 입시를 코앞에 두고 있는 고 3이었다. 세 딸의 아름다운 꽃들을 가꾸고 품으며 향기를 더하고 있는 봄날, 꽃밭의 정원사는 바로 부모인 동생과 제부 춘호씨다.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한 이후 기능봉사에 힘을 쏟고 있는 대구시 ‘우수숙련기술동우회’에서 춘호씨는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1976년 ‘경북기능동우회’로 시작해 43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2010년 캄보디아 시엠립시를 시작으로 베트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지역에 매년 ‘국제기술재능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직장 선배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다는 그는 양복·양장, 한복, 화훼장식, 이·미용, 피부미용, 정밀측정, 전기통신, 자동차 등 전국기능경기대회 및 국제기능대회 입상자, 명장, 명인 등의 전문기능인으로 구성된 회원들과 함께 나눔을 실천하며 ‘같이의 가치’를 알아가는 중이라고 한다.

‘진실은 포장하는 것이 아닌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사비를 들여가면서까지 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회원들의 열정어린 봉사가 한국기능인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일 날을 꿈꾼다는 춘호씨의 봄날, 정원에는 꽃차례 따라 매화꽃 피고 지고 매실열매가 결실을 맺는 사이 뒤이어 산수유, 목련, 개나리, 벚꽃 등이 만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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