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난민… 사회악에 도전하는 소금의 역습
전쟁·난민… 사회악에 도전하는 소금의 역습
  • 황인옥
  • 승인 2019.03.21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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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서 최선 GAP展
전시장 들어서면 내리는 소금비
작품 ‘중단된 여행’ 시선집중
강원바다서 길러와 만든 소금
북한과의 갈등·전쟁공포 빗대
작품3
최선 作 ‘자홍색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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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 作. 봉산문화회관 제공









작가의 어머니가 집안을 청소하다 작품을 쓰레기와 함께 내다 버렸다. 아버지가 화가였고, 화가의 아내로 살아온 어머니가 아들의 작품을 쓰레기로 오인한 것이다. 전시회 출품을 위해 작품을 찾던 아들이 버려진 것을 알고 어머니에게 “왜 작품을 버렸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 명치끝을 후렸다. “여기 작품이 어디 있냐?”고. 그때 아들 입에서 “작품이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일 수도 있구나”라는 탄식이 흘렀다. 이 에피소드는 작가 최선이 “이것도 미술이냐?”는 비판적인 질문을 풀어내는 도화선이 됐다.

“학부 시절부터 현대미술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있었는데 어머니와의 에피소드가 그것을 강화해 주었어요.”

2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배움이 쌓여갈수록 혼란은 가중됐다. 그에게 대학은 ‘모사꾼 양산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서양에서 들여온 현대미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대학 교육이 주지 못했어요.” 당시 작가는 서양에서 이식된 현대미술과 한국현대미술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떠올리게 된다. 한국에서 작업하는 작가로서 당연한 귀결이었다.

“서양에서 들여온 현대미술과 한국현대미술 사이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한국인이라는 범주 안에서 ‘무엇을 현대미술이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죠.” 이 시기부터 예술가로서 예술과 현실의 괴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중심에 회화에 대한 비판이 자리했다.

“그림의 근원을 따라가다 ‘왜 회화의 조건이 사각틀’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사각 틀이 아닌 그렇게 인식하기까지의 조건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작가 최선 개인전이 봉산문화회관 열리고 있다. 정기엽과 함께 ‘2019 갭(GAP)’전에 최선이 초대됐다. 최선은 1전시실, 정기엽은 2,3전시실에서 전시회를 꾸렸다. 2012년 시작된 갭전은 그동안 유리상자를 통해 소개됐던 작가들 가운데 해마다 2명을 선정해 진행하는 전시다. 올해는 미술평론가이자 누스페어동시대미술연구소장인 강효연이 외부 협력기획자로 참여했다.

최선은 국내 문제를 회화를 비트는 요소로 끌어들이며 한국현대미술의 본질을 찾아간다. 봉산문화회관 전시작들에 할애한 주제들 역시 일관되게 그 기조를 유지한다. 우선 작품 ‘소금은 말한다 : 중단된 여행’이 눈길을 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고 몇 걸음 내디디면 하늘에서 소금이 흩뿌려지는 작품이다. 북한과 인접한 강원도 최북단 바다에서 작가가 직접 물을 길어다 만든 소금이다. 지난 몇 년 사이 고조됐던 막연한 전쟁 공포를 소금에 빗댔다. “소금은 북단뿐만 아니라 세월호나 난민 이야기도 될 수 있어요.”

작가에게 유독 도드라진 경향 하나를 꼽자면 ‘통념에 충격을 던지고자 하는 욕구’였다. 다른 말로 비판의식이 남다르다는 것. 이는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가치와 맥이 닿아있다. 서양현대미술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라면 한국적인 상황을 주제로 현대미술의 본류를 파고들어가는 것.

2013년 유리상자에서 선보였던 ‘자홍색 회화’나 ‘흰그림’은 작가의 의도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홍색 회화’는 2010~2011년 발생한 구제역 파동에 살처분된 332만 마리의 돼지 번호를 하나하나 잉크로 새겨서 만든 원형 입체물이며, ‘흰그림’은 돼지기름으로 그린 그림이다. 돼지기름은 사람 등 온도가 있는 대상이 접근하면 녹아내리다가 분리되면 원상복구된다. “돼지를 그리거나 제시하지 않고 숫자를 쓰고 돼지기름만 사용하고도 ‘아름답다’거나 ‘추하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싶었어요.”

인왕산에서 청와대 가는 길가에 말라 죽은 물음표 형상을 한 지렁이 사체들을 모아 캔버스 위에 올린 작품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처럼 시각미술의 장식적 환영에 한한 질문을 던지고 과연 아름다움과 추함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작가의 전시는 30일까지. 053-661-35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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