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문화회관 30일까지 정기엽展…물질만능시대의 결핍
봉산문화회관 30일까지 정기엽展…물질만능시대의 결핍
  • 황인옥
  • 승인 2019.03.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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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부정하는 현세태 비판
봉산GAP-정기엽2
정기엽 작 ‘제주예수 2019’

모든 믿음은 강렬하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순차적으로 일어난다는 믿음만큼 강렬한 믿음도 드물다. 이른바 직선적 세계관인데, 세계는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여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세계관이다. 서양의 인식체계에 근거하고 있다. 반면에 처음과 끝도 없이 돌고 돌거나 반복해서 재현된다는 순환적 세계관도 있다. 인도의 윤회적 세계관과 중국의 음양적 세계관이 이 범주에 속한다.

그렇다면 작가 정기엽의 세계관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봉산문화회관 전시에 소개되고 있는 작품 ‘닥쳐올 내일들이 나는 이미 그립다 2019’는 순환적 세계관의 구현처럼 보인다. 빛, 소리 등을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적으로 표현했다. “내 뺨을 스치는 햇빛에는 8분전 태양에서 떨어져 나온 과거와 현재, 나로부터 떨어져나가 또 다른 존재로 향하는 미래는 분리되지 않고 동시에 존재한다.”

‘닥쳐올 내일들이 나는 이미 그립다 2019’는 유리와 물, 안개, 소리 등 4개의 요소로 구성했다. 물을 이용해 안개를 뿜어내고 안개 속에서 영상을 볼 수 있게 설치했다. 영상 속 이미지는 정자와 난자의 이미지, 대성당의 장미창, 석굴암의 부처, 어린 시절 살던 집과 사람 등 우주의 섭리와 종교의 본질, 추억 속 장면 등 여러 층의 장면들로 구성했다. 작품을 단순히 시간의 동시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단정하기에 뼈있는 이미지들이다.

“재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과거와 현재를 부정하며 파괴적으로 흐르는 현세태를 꼬집고 있다. 그리움과 결핍의 근원에 현실의 질문을 자각할 수 있었으면 한다.”

‘오래된 미래’‘행복의 경제학’ 저자 엘레나 노르베지 호지는 ‘오래된 미래’를 통해 라다크 전통사회가 지향했던 공동체의 삶이야말로 미래에 있어야 할 우리의 이상적인 세상임을 강변했다. 정기엽이 물질만능이 팽배한 현세태와 상반되는 물, 공기, 빛, 종교 등의 신기루같은 소재들과 대비시키며 근원(뿌리)을 상기하는 방식이 흡사 엘레나 노르베지 호지와 닮아있다. 작가의 또 다른 전시작 ‘제주예수 2019’는 보다 강렬하게 그런 경향을 드러낸다.

작품 ‘제주예수 2019’에는 2리터 용량의 삼다수 생수 300개로 십자가가 구축돼 있다. 십자가에 붉은 색 조명을 설치하고 관객이 누울 수 있도록 했다. 관람객이 누우면 붉은 십자가에 못 박혀 걸린 것처럼 보이는 영상이 벽면에 생중계된다. 십자가는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묘지의 십자가를 은유했다. 삼다수로 대변되는 제주 자연훼손에 대한 은유인 셈. 그가 “사람이 자연에 빨대를 꽂고 산다. 종국에는 우리 모두의 묘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제주가 자본에 의해 겪고 있는 희생이 제주 4.3사건의 희생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제주의 지하수가 자본논리에 희생되고, 종국에 인간마저 죽음에 이르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을 4.3사건과 오버랩했다.”

유리상자를 통해 소개됐던 작가들 중 해마다 2명을 선정해 전시하는 봉산문화회관 GAP전에 최선 작가와 함께 선정된 정기엽 작가의 전시는 30일까지. 053-661-35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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