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이름으로
‘의학’의 이름으로
  • 승인 2019.03.24 2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둥(대구시의사회정보통신이사, 마크원외과 원장)
아내가 얼마 전 잘 아는 사람에게서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다는 지압 귀침이란 걸 샀단다. 귓바퀴에 있는 특별한 지압점에 자극을 줘서 식욕감소를 유발한다면서. 듣자 마자 아내에게 역정을 냈다. 명색이 외과의사 부인이라는 사람이 왜 그러시냐고. “의학적으로 증명된 거라고 광고하던데요?”라고 도리어 의아해하는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다가도, 한편으로는 이런 가짜 의학에 너무 쉽게 노출되고 현혹될 수 있는 작금의 현실이 걱정스러웠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많은 사람들이 신봉하는, 혹은 신봉했던 이야기 중 선풍기 사망설(?)이 있다. 20세기 초반에 처음 나온 이야기니까 이미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가짜 의학 사례라고 할만하다. 그래서 우리가 어릴 때에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려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열어놓고 잠드는 에너지 과소비를 자행하던가, 타이머를 맞춰놓고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선풍기 사망설은 사실 무근이다. 사실 선풍기를 켜놓고 자면 아버지에게 야단은 맞을지언정 다른 의학적 피해는 없다.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들면 공기가 희박해져서 죽는다”는 말처럼 언뜻 그럴싸하지만 사실은 의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나 이론을 유사과학, 의학과 연관된 이야기들은 ‘유사의학’이라고 표현한다. 100년도 넘게 회자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사라지기 힘든 이야기들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유사의학은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 널리 퍼져있다. 이런 현상이 과학에 무지한 문과 출신이 많아서(‘문송하다=문과라서 죄송하다’라는 표현도 있지만) 발생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들어서는 특정한 목적을 지닌 개인, 집단, 기업 등에 의해서 퍼진다는 것이 더 문제이다. 자신의 고집에 찬 대체의학 주창자들, 사적 이익을 위해 엄밀한 과학적 검증을 회피하거나 조작하는 의학자들, 기업의 이익을 위해 검증 안된 그럴싸한 의학적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마케팅하는 기업들 또한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현상을 ‘다이어트 귀침’이나 ‘선풍기 사망설’ 마냥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은 ‘백신무용론’ 처럼 사회적으로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유사의학도 처음에 일부 사람들에게 ‘인정’ 아닌 인정을 받기 시작한 과정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백신 접종을 하지말고 자연적으로 면역을 발생시키자는 주장으로 대표되는 ‘안아키(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 모임)’ 집단을 주도한 대구지역의 한 한의사는 한때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다가 지난 해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고 사기죄 등으로 형사고발된 후 최근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벌금 3000만원을 확정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안전하게 아이 키우기(전체 이름은 바꾸고 첫 글자는 같아지도록 하는 꼼수까지 발휘했다)’라는 이름의 카페를 다시 결성했으며 현재 그 회원은 5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 사람이 한의사로서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 해도 실형으로 구금되지 않는다면 안아키 카페를 통한 이른바 맘닥터 교육행위는 계속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상황인 것은 정말 우려스럽다.

백신 접종은 권리이기도 하지만 의무이다. 접종을 통해 일정한 사회적 방벽을 설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신을 맞은 사람은 그 병을 옮기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수두백신을 맞지 않았고 아직 감염도 안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당신과 감염자 사이에 감염자와 접촉하고 당신과도 연이어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 10명 정도라고 치고, 그 중 9명이 백신접종을 한 상태라면 당신에게 전염균이 갈 확률은 1/10밖에 되지 않는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항체가 되어 수두라는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다. 내 자식은 백신 접종을 안받게 하겠다는 것은 의무는 저버리고 나머지 대다수 국민들의 노력과 희생을 공짜로 주워 먹는 사회적 파렴치한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만약 수두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이 전국민의 50%에 불과한 상황이 된다면, 1명의 감염자가 100명 중 50명을 감염시키게 되고 다시 50명은 2,500명을 감염시키게 된다. 사회적 방화벽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 외국에서도 백신의 사회적 방어막이 무너져서 전염병이 유행한 사례들이 꽤 있다. 아일랜드에서 홍역 백신 논란 때문에 백신 접종률이 크게 떨어졌는데 그러자 1998년 56건이던 홍역 발생률이 2008년엔 1,348건으로 250% 이상 늘어났던 일이 대표적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례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신 반대 운동’이라는 전염병이 우리나라에 돌기 전에, 국민들에게 유사의학에 대한 경각심이라는 ‘백신’을 미리 접종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동영상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