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놀이
역할놀이
  • 승인 2019.03.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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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흔히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여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유명해진 사람, 또는 맡겨진 역할이 대중 앞에서야 하는 사람 중에서 갑자기 깊은 외로움에 빠져 허우적대는 경우를 보게 된다. 아마 그 사람은 역할로서의 자기와 대중의 기대에 맞춰 표현되는 자기의 모습이 실제 자기의 모습과 많이 다른 이유인지 모른다.

역할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할이 실제 자신의 모습과는 다를 수 있다. 역할은 연극무대의 맡겨진 배역처럼 시한부의 삶과 같다. 부모로서의 역할, 모임의 회장으로서의 역할, 지역의 대표로서의 역할, 회사 사장으로서의 역할 등. 하지만 이런 시한부적인 삶이 영원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역할놀이에 너무 깊이 빠져버리면 역할로서의 자기와 진짜 자기를 구분 짓지 못하고 혼란을 경험 하게 된다. 역할로서의 자신은 외롭지 않은데 실제 자신은 외로움이 깊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누가 보더라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리에 있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서 외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었다. 늘 사람들 가운데 있었고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었기에 사람들도 그를 너무 좋아했었다. 외롭고 슬픈 날에 그를 만나면 사람들은 위로를 받았고,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로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그가 외로움에 울고 있었다. 그에게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낯설었다. 도전, 행복, 기쁨이란 단어로만 그를 봐왔던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 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늘 사람들에게 용기를 줬던 사람이었는데 그가 외로워하고 있다니. 사람들도 그의 모습에 낯설어 했다. 그럴수록 그와의 거리는 조금씩 더 멀어졌다. 그의 말대로 정말 그는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우리는 모른다. 직접 그의 자리에 앉아 보지 않고서는 그가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그의 몸을 빌려 그가 되어 살아보지 않고서는 그의 깊은 속내를 알 수 없다. 겉으로는 물위에 앉아 고귀한 자태를 뽐내는 백조였을지 모르나 실상은 물아래 깊은 상처가 난 두 다리로 처절하게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겉에 보이는 모습이 다는 아니다. 화려할수록 이면에 숨겨진 외로움은 더 큰 법이다.

본인은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늘 주위에 사람들이 있다. 이런 나를 보고 누군가는 부러워했다. 늘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외롭지는 않겠다고. 하지만 나는 혼자 있을 때 보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낀 적이 더 많았다고 고백하고 싶다. 맡겨진 역할이 실제 나 보다 더 큰 경우에는 내 어깨에 짓누르는 무게가 너무 무겁다. 상처받고 실수투성이인 있는 나란 사람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만나는 사람들이 정해놓은 역할로만 나를 볼 때 나는 외로움에 빠져든다. 이미 그들의 눈에 보인다. 그들이 기대했던 내가 아닐 때 실망하는 눈빛이. 사람은 누구나 상처받고 유치하고 때론 이기적인 모습이 있다. 완벽하지 않고 엎어지고 넘어지며 살아온 우리다. 하지만 그 모습을 숨기고 보여 지는 모습으로만 살아간다면 진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온전히 자기의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자신의 역할만 보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져 결국은 외로워지게 된다.

한 번씩 역할놀이에서 벗어나 오래된 친구들과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만나야 한다. 역할놀이를 정도껏 하고 진짜 자기를 만나야겠다. 역할은 그냥 역할일 뿐이다. 역할 뒤에 숨어 우는 상처 많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만나야한다. 그 사람이 진짜 자기 자신이다. 역할은 연극무대위의 시한부 삶과 같다. 언젠가는 무대를 밝혀준 화려한 조명도 꺼질 것이고, 관객들도 모두 떠날 것이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대의상을 벗고 화장을 지우고 있는 진짜 자기 자신이다. 이제 그를 만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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