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여류작가 실화극 ‘콜레트 ’ 편견의 시대와 결별선언
천재여류작가 실화극 ‘콜레트 ’ 편견의 시대와 결별선언
  • 배수경
  • 승인 2019.03.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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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 가려진 채 이름 잃어
시대 규범·여성 차별 맞서
주체적 인간으로 ‘한걸음 더’
콜레트
 

남편의 이름 뒤에 유령작가로 살았던 여인의 이야기. 이쯤되면 “또?”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남편의 이름으로 그림을 그렸던 화가 마가렛 킨의 이야기를 담은 ‘빅 아이즈’(2015)부터 최근에 개봉한 ‘더 와이프’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못했던 여성 예술가 이야기는 흥미로운 소재인 모양이다. 영화 ‘콜레트’ 역시 여성 예술가의 삶과 선택에 대한 영화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배우, 연출가, 그리고 시대를 선도하는 인플루언서였던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1873~1954)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녀는 프랑스 공쿠르 아카데미 최초의 여성회원이자 회장에까지 이른 인물이며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이 롤모델로 꼽는 인물이기도 하다.

프랑스 시골마을 출신의 자유분방한 콜레트는 결혼과 함께 파리로 온다. 어느날 그녀에게 남편 윌리는 ‘글이나’ 한번 써볼 것을 제안한다. 콜레트의 학창시절 삶을 담은 소설 ‘학교에서의 클로딘’은 그렇게 완성이 된다. 소설 ‘클로딘’은 나오자마자 하나의 신드롬이 되어 프랑스 전역을 휩쓴다. 책 속 주인공 클로딘의 복장,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녀 이름을 딴 브랜드까지 생겨난다. 그렇지만 그 모든 영광은 남편 윌리의 몫이다.

여자가 쓴 책은 출판의 기회조차도 얻을 수 없었던 시대, ‘더 와이프’가 자신의 이름대신 남편의 이름으로 출판을 한 것이 하나의 타협이었다면 콜레트는 남편의 요구에 따라 별 의문 없이 유령작가가 된다. 글을 쓰지 않는 그녀를 방에 가두는 모습에서 남편 윌리는 그녀를 단순히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어느 순간 사랑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남들의 시선 때문에 치장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한다. 평범한 소녀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남편 윌리가 아니라 바로 그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결심의 배경에는 아내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소설을 위해서라면 ‘느슨한 목줄’을 잡고 그녀의 일탈까지도 용인했던 남편 윌리에 대한 분노도 크다. 게다가 그는 그녀에겐 자식같은 ‘클로딘’ 시리즈의 판권을 팔아버리기까지 한다. ‘펜을 든 자가 세상을 바꾸는 법’이라며 ‘물건처럼 생각하지 말고 동등한 인간으로 대해 달라’는 그녀의 외침은 통쾌하다. 물론 시대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 일 하는 여자에게 글쓰기는 그저 사치일 뿐이고 재능은 오히려 평온한 삶을 깨트리는 걸림돌 쯤으로 치부되었던 시대를 살았던 많은 재능있는 여성들의 삶에 대해 영화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는 콜레트가 자신의 이름을 찾으려고 하는 지점까지만 보여준다. 그 이후의 삶은 엔딩 크레딧에서 짧게 설명할 뿐이다. 동성애 장면 등 사건 위주로 흘러가는 스토리가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프랑스 문화예술이 꽃을 피우던 ‘벨 에포크’시대의 의상, 헤어스타일, 인테리어 등 화려한 모습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적재 적소에 배치된 음악 역시 영화의 극적 효과를 한껏 드높여 준다.

시대극에 최적화된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키이라 나이틀리 역시 콜레트로 다시 한번 자기에게 딱 맞는 옷을 찾아 입은 느낌이다. 영화 개봉과 함께 콜레트의 저서 ‘파리의 클로딘’, ‘여명’ 등의 작품도 주목을 받고 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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