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함과 생명력이 공존하는 인도의 지붕 ‘레’(Leh)
황량함과 생명력이 공존하는 인도의 지붕 ‘레’(Leh)
  • 박윤수
  • 승인 2019.03.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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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라다크 레’
1962년 폐쇄 됐다 1974년 개방
1년 중 6월~9월에만 여행 가능
서양인의 여름 휴가지로 주목
레전경
라다크의 고도(古都) 레.

 

박윤수의 길따라 세계로, 인도 다람살라-마날리-라다크 (6) 라다크의 레(Leh)

“어느 마을에 경비가 있었는데 야간 순찰을 돌 때마다 ‘알 이즈 웰~’을 외쳤어.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마음 놓고 잘 수 있었지. 근데 하루는 도둑이 들었던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경비는 야맹증 환자였어. ‘알 이즈 웰~’이라고 외쳤을 뿐인데 마을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한거야. 그날 온 마을 사람들은 깨달았어. 사람의 마음은 쉽게 겁을 먹는다는 걸, 그래서 속여줄 필요가 있는 거지. 큰 문제에 부딪히면 가슴에 손을 얹고 얘기 하는 거야. ‘알 이즈 웰~, 알 이즈 웰~’ 그래서 그게 문제를 해결해 줬냐고? 아니, 문제를 해결해 나갈 용기를 얻는 거지. 기억해 둬. 우리 삶에 꼭 필요할 때가 있을 거야.”

영화 ‘세 얼간이’의 주인공 ‘란초’의 대사다. 이름하여 ‘알 이즈 웰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알 이즈 웰’은 ‘All is well’의 인도식 발음이다. 힘든 일이 있거나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모든 것이 이뤄지는 유쾌한 주문을 외쳐보자. ‘알 이즈 웰’!

캐릭터와 스토리가 주는 재미 외에도 영화 ‘세 얼간이’가 관객을 사로잡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인도의 절경을 그대로 화면에 담아내 마치 인도를 여행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아름다운 영상이다는 점이다. 그 중 백미가 영화의 엔딩 장면이다. ‘파르한’과 ‘라주’가 ‘란초’를 극적으로 다시 만나는 공간은 라다크 지방 4천350m에 위치한 판공초(Pangong Tso)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거대 염호로 ‘하늘호수’로 불릴 만큼 그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세계적 명소다. 우리는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판공호수로 간다.

아침 일찍 잠무의 호텔에서 일어나 식사도 거른 채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 증축공사가 한창인 듯, 가설 건축물의 통로를 지나 백여 평도 안 되는 공항 대합실로 들어 섰다. 공항을 들어서기 위해 두 번의 검색을 거치고, 발권을 하고 체크인을 하면서 한번 그리고 공항대합실을 나서며 또 한번, 걸어서 비행기를 탑승하러 가면서 두번의 검색을 한고 난 후에야 비행기에 앉을 수 있었다. 이곳 잠무는 동절기 카슈미르주의 주도이기도 하지만 파키스탄과의 분쟁이 잦은 곳이라 통제가 엄격하다. 잠무를 이륙한 비행기는 히말라야의 하얀 설산 위를 날아 라다크의 레(Leh)에 도착했다. 레의 공항은 민간공항이 아니라 군사공항인 관계로 각종 헬기와 전투기들이 많이 보였다. 이곳에서 며칠 머무는 동안 전투기 이착륙의 굉음을 수시로 들었다.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구시가지의 여행자 거리로 갔다. 막 겨울이 지난 이 곳에도 새로이 단장하기 위해 도로를 여기저기 파헤쳐 놓고, 골목은 울퉁불퉁한 흙투성이였다. 이곳 ‘하얀 히말라야(HAYAN Himalaya)’여행사에도 한글 안내가 붙어 있었다. 마날리에서 전화로 이 회사에 연락하여 우리가 이곳에서 묵을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었다. 여행사 주인의 안식구가 한국여인이었다. 몇 년 전 이곳에 여행을 왔다가 이곳이 좋아서 라다크인과 결혼하여 살고 있다고 한다. 너무나 열악한 곳이라 아기에게 줄 이유식이 없다고 해서, 우리가 마날리에서 떠나 올 때 윤카페 여주인이 전해 달라고 싸준 아기용 음식을 건네주었다. 이런 척박한 곳에 사는 이를 보니 마음이 많이 아렸다. 한국의 부모님들이 이런 상황까지는 알 수 없겠지. 차라리 모르는 게 좋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지를 여행 하면서 현지에 정착한 한국인들을 많이 봐 왔다. 남미의 끝 우수아이아, 중국 운남의 샹그리라,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네팔의 포카라 등등. 한국인 부부 가정도 많지만 현지인과 결혼한 가정도 많다. 특히 현지인들과 결혼해서 사는 분들을 만나면 모국의 우리들을 각별히 챙겨주기도 한다.

인도의 지붕이라 일컫는 해발고도 3천500m의 레는 1962년 인도와 중국의 국경분쟁으로 국경이 폐쇄되면서 신장 위구르의 카쉬카르와 티벳트, 인도 카슈미르를 이어주는 남부 실크로드의 중간 기착지로서의 기능을 잃어 버리고 완전히 지구상에서 잊혀진 불교도시가 되었었다. 중국과의 국경분쟁으로 인도의 군사 전초기지로 유지되다가 1974년 라다크지역이 외국인들에게 개방되어 라다크 전통사회가 서구의 미디어에 알려지면서 여름에 관광객들이 찾게 되었다.

라다크 레는 높은 고산지대에 있어 6월부터 9월까지 약 4개월간 여행할 수 있으며, 10월부터 5월까지 8개월간의 긴 겨울에는 식당과 숙소 등이 문을 닫는다. 우리가 도착하기(5월7일) 일주일 전쯤 스리나가르~레 간 도로가 개통되어 각종 생필품이 공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로밍을 한 휴대전화는 불통이었다. 접경지역으로 군사적 긴장이 높은 곳이라 숙소에서 와이파이망을 사용하는 경우 외에는 일절 통신이 되지 않는 곳이다.

‘레’를 즐기는 방법
세계적 소금호수 판공초서 하루 묵고
산티스투파 전망대 올라 도시 구경
카르둥라 고개~시내 라이딩 체험도

해발고도가 높아 델리에서 비행기로 바로 오는 경우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소증상으로 하루 이상을 쉬어야 한다. 우리는 고소에 대비하여 마날리에서 약 3천900m의 로탕고개로 트레킹을 다녀 오는 등, 사전에 적응을 했기에 일행 모두 고소증상을 느끼지는 않았다. 라다크 레의 여행은 인더스강변의 곰파투어와 하늘호수인 판공초에서 하늘의 별들과 하룻밤자기 그리고 레 시내의 남걀체모 곰파(Namgyal Tsemo Gompa)와 산티스투파에서 레 시내 내려다보기 등이 있으며, 우리일행은 카르둥라 고개에서 레 시내까지 자전거타고 내려오는 새로운 액티비티에 도전 해 보기도 했다.

여행자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숙소를 정하고, 하얀 히말라야여행사에서 이곳 상황을 듣고 여행 일정을 정리했다. 레에서의 첫날은 레 왕궁을 비롯하여 구시가지를 걸어서 다니기로 하고 둘째 날은 알치곰파까지 곰파투어를 하기로 하고 셋째 날은 판공호수로 가서 1박을 하고 다음날 레로 돌아와서 카르둥라를 올라가서 자전거를 타고 레까지 오기로 했다.

레왕궁
레 왕궁.

중세 티벳양식 돋보이는 ‘레 왕궁’
미로 같은 복도와 여러 개의 방
지붕에 오르면 도시 경관 한눈에

숙소에서 한시간쯤 쉬다가 간단하게 점심을 해먹고 동네 구경을 나왔다. 시내 중심가를 지나 토담집 골목길을 돌아 레 왕궁(Leh Palace)으로 향했다. 회색빛 흙벽돌로 지어진 집들 사이, 거칠고 급경사인 바위산을 오르면 중세 티벳양식의 9층 왕궁이 보인다. 입장료를 주고 들어가면 미로 같은 복도를 따라 여러 개의 방들이 있으며 중앙부분에는 몇 개 층을 뚫어 놓은 중정이 나오기도 한다. 각 실마다의 용도를 적어 놓은 팻말을 보고서야 감을 잡을 수 있다. 방들을 다니다 보면 어느새 평평한 지붕에 다다른다. 왕궁의 지붕에 올라서면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간 강수량이 80mm 내외의 레지역은 파란잉크를 풀어 놓은 듯한 하늘을 볼 수 있지만 고지대 특유의 건조함으로 도시 전체가 황량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드문드문 있는 포플러나무의 초록색은 도시의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레시내
레 시내.

 
남갈체모
남걀체모.

레왕궁을 나와 이십분쯤 지그재그의 급경사 자갈길을 오르다보면 남걀체모 요새와 곰파에 다다른다. 요새에서 좁은 계단으로 조금 올라가면 3층 높이의 거대한 미륵불을 모셔 놓은 곰파가 있다. 곰파를 내려와 요새에 서서 파노라마 풍경을 보듯이 고개를 돌리면 한 눈에 레 시내를 볼 수가 있다. 내려오는 길은 계단으로 잘 정비돼 있다.

어느덧 해가 저문다. 여행자 거리로 자리를 옮겨 라다크 티벳트식 만두, 모모와 수제비, 볶음밥 , 칼국수(Thunthuk) 등으로 저녁을 먹었다. 오지여행에서는 식당에서 익숙치 않은 음식을 주문 하는 것이 고역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집사람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잘 시켜서 제대로 된 현지 음식을 맛 볼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혹시 고소증이 올까봐 샤워는 하지 않고 간단하게 씻고, 와이파이에 접속해서 자료 정리를 하다 잠자리에 들었다.

박윤수 ㆍ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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