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픈 아이의 부모를 두 번 울리는가?
누가 아픈 아이의 부모를 두 번 울리는가?
  • 승인 2019.03.31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준엽(이비인후과 원장,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얼마 전 선천성 심장병 수술에 필요한 인공혈관을 구하지 못한 부모가 올린 청와대청원이 이슈가 되었다.

폰탄 수술(Fontan's operation) 이라 칭하는 단심실을 가진 환아에게 인공혈관을 이용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 주는 수술인데 이 인공혈관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고어사가 2017년 한국에서 철수를 하게 되면서 한국에서 더 이상 인공혈관을 구할 수 없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고어사가 한국에서 철수한 계기는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험절감을 이유로 2012년부터 인조혈관 보험상한가를 지속적으로 인하하는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인데 2016년 12월에는 인조혈관 제품들에 대한 보험상한가를 기존보다 19% 삭감했다.

그런데 문제는 국내에서 보험공단이 기존에 책정한 인조혈관 가격은 약 40만원대로 미국(80만원대)과 중국(140만원대)에 비해 이미 50%이상 저렴한 가격이었다는 것이다.

기존에도 다른 국가에 비해 절반이상 낮은 가격이었는데 여기에다 19%를 추가로 더 삭감하고 정부가 3년 주기로 시행하는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실사에서 기업의 기밀에 해당하는 자료까지도 무리하게 요구함에 따라 보험공단의 이러한 저수가 강제와 과도한 규제를 견디지 못한 고어사는 결국 철수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2011년에 조기 위암의 최신 수술법인 내시경 점막하 박리절제술이 급여화되는 과정 중 복지부가 수술용 특수 절제용 칼의 단가를 일방적으로 9만원대로 결정하면서 올림푸스사에서 공급을 거부하여 환자들이 수술을 받지 못하게 된 적이 있었고, 결국 재협상 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이 재개된 사건이 있었다.

또 소아 필수백신인 소아마비, 결핵, 일본뇌염, DTP등의 경우 국내 공급에 차질이 생기기 일쑤여서 소아들은 언제 입고될지도 모르는 예방주사를 무기한 기다린 적도 많으며, 이로 인해 일선 의료기관은 도매상에 백신이 소수 입고되자마자 사재기에 바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재기도 할 수 없는 게 국내에 공급되는 외국산 백신의 경우 유통기한이 6개월 이내로 터무니 없이 짧은 경우가 많다. 또한 백신을 공급하는 일부 회사의 경우 정부에서 강제 지정한 가격에는 수익성이 없음을 이유로 철수하였다.

의료약제도 마찬가지이다. 필수 약제임에도 생산단가가 낮아 수익성이 없어 생산 중단되거나 수입 중단되는 경우도 많다.

도대체 의료측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에서 왜 이런 일이 자꾸만 벌어지는 것일까...

이는 바로 정부의 저수가정책과 과도한 규제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의료공급자인 의사들에게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가정책을 유지하면서 저비용 고효율로 한국 의료를 유지해왔다. 정부측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의료수가가 원가의 약 70%수준이라 한다.

정부에서는 의사를 억압하여 재미본 방법을 고어사에게도 똑같이 하다가 견디지 못한 고어사가 철수하면서 결국 이 사단이 난 것이다.

이는 비단 의사뿐만이 아니다. 제약업계등 다른 의료관련업도 마찬가지이다.

의료 신기술이나 신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투자한 비용과 시간에 대한 보상이 없다면 그 누가 의료신기술을 만들겠는가. 그러다 보니 한국의 제약사들은 투자위험이 큰 신약개발보다는 복제약 생산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정부에서 삼성의 휴대폰, LG의 TV등에 국민 복지를 핑계로 가격규제를 한다면 삼성과 LG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

물론 의료는 필수품목이기 때문에 공산품과는 다르다. 그렇다 해도 의료행위와 의료재료에 대한 적정 수준의 보상은 해주어야 할 것이며, 또 의료취약층은 국가가 선별적으로 지원해 주는 방법을 하여야지 이처럼 막무가내로 억누르는 방식은 지양해야될 것이다.

정부가 적정 수가를 보상해주지 않고 앞으로도 원가 이하로 의료를 공급하길 강요한다면 이런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