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단지 그것이면 충분했다
[문화칼럼] 단지 그것이면 충분했다
  • 승인 2019.04.0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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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수성아트피아 관장)



지난 겨울 어느 휴일, 그날은 이곳 대구에 제법 눈이 쌓였다. 일본의 노 건축가 부부의 일상을 담은 영화 ‘인생 후르츠’를 보기 위해 예술영화 전용관을 찾았다. 여느 때와 달리 극장 안은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날씨 때문에 이런가요”라는 나의 질문에 극장 관계자는 “영화관은 역시 영화죠”라며 이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비췄다. 과연 보는 내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그리고 겸허하지만 따뜻하게 사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90세 할아버지 ‘츠바타 슈이치’씨와 그의 87세 아내 ‘츠바타 히데코’씨가 50년간 살아온 15평 단층집에서 300평 정도의 집 마당에 키우는 과일 채소들을 돌보며, 소박하고 건강한 음식과 함께하는 그야말로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츠바타 슈이치씨는 유명 건축가이자 국내에도 소개된 ‘밭일 1시간, 낮잠 2시간’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책 제목처럼 밭일도 매일 조금씩 나누어서 한다. 그러기 위해 아예 씨 뿌릴 때부터 시기를 약간씩 차이를 두고 하기도 한다.

한 때 한 도시의 도시계획에 깊숙이 관여하기도 했으며 유명대학의 교수까지 지낸 츠바타씨는 현실에서 부닥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직접 집을 짓고 농사를 짓기로 한다. 그것은 바람과 햇빛 그리고 숲이 함께하는 삶이었다. 그래서 건축당시에는 다 파헤쳐진 신 개발지에 15평의 조그만 오두막을 짓고 집 마당에 온갖 작물들을 심는다. 지금은 그 지역 전체가 푸르러 졌고 노부부는 집에서 소출된 것으로 건강한 음식을 해먹고 그것들을 돌보는 것으로 자족의 행복을 누린다. 이 모든 건강과 행복의 보금자리는 단지 15평이면 충분하다.

두 부부는 사는 모습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낮고 담담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보여준다. 물론 그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그리고 책 제목 ‘밭일 1시간, 낮잠 2시간’처럼 할아버지는 밭일 후 오수를 즐기다 고요히 세상을 떠나셨다. 가끔씩 문상을 다녀보면 츠바타 할아버지처럼 돌아가신 경우를 보게 된다. 그분들의 공통점. 신앙생활과 매사에 감사하고 욕심 없는 생활에 특히 술을 멀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낡고 비좁은 집이지만 따뜻한 행복이 가득한 일상을 츠바타씨 부부는 보여준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가, 화가 그리고 디자이너, 많은 저술을 남긴 작가이기도 하다. 나는 건축에 대하여는 무지한 편이라 그의 작품세계는 잘 알 도리가 없다. 사진으로 본 그의 작품들은 문외한이 보기에도 대단히 심플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정도다. 다만 그는 여행을 통해 작품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했다는 것. “사유가 없으면 건축도 없다” 건축가는 시대의 생각을 남기는 사람이라는 그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라는 그의 정신세계가 더 큰 관심을 끈다. 특히나 스스로 ‘작은 궁전’으로 불렀던, 프랑스 지중해가 보이는 곳의 4평짜리 오두막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그의 삶은 행복을 위해 더 큰 것을 찾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19세에 첫 세계여행을 떠났고 24세 때 떠난 동유럽과 지중해 여행을 통해 건축가로서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독일 여행을 통해 건축이란 ‘짓다’에서 ‘디자인’과 ‘블랜딩’라는 것을 깨달았다니 그에게는 여행이 정말 중요한 행위였다. 언제나 작은 크로키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보고 느낀 것을 적고 그렸다. 그리고 사물을 응시하고 관찰한다. 그러면 마침내 발견을 하게 되고 비로소 발명과 창조에 이르게 된다는 그의 말에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큰 가르침을 우리는 배운다.

그가 과거 설계한 수도사의 방이 4평이었던 것처럼, 그 자신에게 더 할 것 없는 완전한 공간인 4평의 오두막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살았다는 것에서 행복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유명한 건축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사랑한 바다 그리고 단지 4평의 공간 이었다. 최근 모 의사 선생도 큰 집과 짐들을 다 정리하고 2층짜리 스몰하우스를 짓고 그곳에서 살기로 했단다. 군더더기를 버리고 단순하게 살고자 하는 그의 모습에서 작지만 큰 행복이 가득하리란 예감이 든다.

잡다한 것을 버리고 단순하고 작게 사는 것을 통해 평화롭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음을 이들은 잘 보여준다. 나는 세상의 물욕과 감당하기 힘든 허영을 어깨에 이고 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에게 딱 맞는 나의 작은 오두막에서 살기 위해서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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