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푸른 언덕에 꼬리 9개의 구미호가 살았다더라
달구벌 푸른 언덕에 꼬리 9개의 구미호가 살았다더라
  • 이대영
  • 승인 2019.04.0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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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부터 대제국 수도 대부분
‘7개의 언덕’ 자연조건 갖춰
대구도 와룡산 등 7개 존재
대제국 도읍지로 손색 없어
BC 4세기경 ‘구미호전설’
대구 미녀 많다는 은유적 표현
대구 사투리로 여우는 ‘야시’
‘야시골목’ 등 아직도 흔적 남아
스토리 살려 예술작품화 필요
신택리지-달성과읍성
1800년대 대구지도를 기준으로 스케치한 달성과 읍성. 그림 이대영

 

이대영의 신 대구 택리지 - (14)신고복지 달구벌과 달성

“구구(혹은 꼬꼬) 닭아, 울지 마라! 멍멍 개야. 짖지 마라!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우리 아기 잘도 잔다”라고 할머니가 불러주시던 자장가에 아기는 스르르 깊은 잠에 떨어진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닭 모이를 줄 때마다 ‘구구’라고 닭을 불러 모은다. 어릴 때에 기제(忌祭)를 모시자면 삼태성(三台星)을 보고 샛별(金星)이 뜨기(첫닭이 울기) 전에 제사를 모셨다. 첫닭이 울면 하늘이 열려 새벽이 오기 때문(鷄鳴天開)이다. 그런데 1979년 10월4일 “한국정부가 민주화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미국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김영삼 야당의원의 뉴욕타임즈(New Times) 기자회견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백두진 국회의장은 국회를 소집해 159명 출석에 159명 전원 찬성으로 사상초유로 김영삼 의원을 제명처분 했다. 이때 김영삼 의원은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참으로 어안이 벙벙했다. “과연 민주화 새벽은 이 땅에 오는 것인가?”

◇신의 축복으로 만들어진 언덕(神皐福地) 달구벌

1억4천만 년 전 달구벌, 정확하게 말해 닭벌(達句伐)은 거대한 호수였다. 현재 백두산 천지연 9.165㎢의 13배가 넘는 137㎢로 한반도에서 가장 큰 닭벌호수(達句伐湖)였다.

첫닭이 울면 하늘의 문이 서서히 열림과 동시에 닭벌 호수에선 하늘의 여명이 비춰져 온 한반도가 밝아왔다. 그래서 박제상(朴提上, AD 363~419)이 저술한 ‘부도지(符都誌)’에서는 삼한시대부터 닭벌(達句伐)에서 아침신시(朝市)를 열었다.

닭벌은 바닷물과 산자락이 서로 닿는 신선한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시(朝市)에 올라오는 펄떡거리는 신선한 물고기(活躍鮮魚)를 조선(朝鮮)이라고 했으며, 1392년에 한반도 한 왕조의 국명이 되었다. 한반도에서 첫닭이 울면 하늘에 동트는 곳(벌)이라는 상징성에서 닭벌(鷄野)이라고 했다. 이는 곧 빈계사신(牝鷄司晨)사상이다. 정월대보름날 첫닭 울음소리 수(數)로 한해의 풍년을 점지한다(鷄鳴占年)고, 즉 암탉이 12회 이상 소리치면 풍년이 온다고 믿었다.

닭은 동인도, 말레이시아 등 열대지방 밀림 속에서 살았던 들닭(野鷄)을 사람들이 가축으로 기르면서 3~4천년 전 한반도에 들어왔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 혹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김알지(金閼智) 설화와 삼국지 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에서 ‘한반도 나라에선 꼬리가 긴 세미계(細尾鷄)가 있다’고 했으며, 후한서(後漢書)에서도‘“마한의 장미계(長尾鷄)는 꼬리가 5척이나 된다(其尾皆長五尺餘)’고 적고 있다. 서라벌은 김알지의 설화에 기초해서 AD 65(탈해왕9)년 국명을 사러벌에서 ‘계림(鷄林)’으로 개명했다. 당시 신라는 닭을 소중히 신봉했으며, 인도사람들은 해동국(海東國) 신라를 ‘구구타예설라’라고 했으며, 그 의미는 ‘닭은 귀하게 여긴다(鷄貴)’라고 삼국유사에서 풀이하고 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김알지설화(金閼智說話)에 ‘황금상자에 든 닭의 알에서 나왔다고 해서 이름을 알지(閼智)라고 했으며, 성은 금궤(金櫃)에서 나왔다고 김씨(金氏)로 했다’는 것은 신비성과 상징성의 표현이다.

어릴 때 농촌에서 학용품을 사자면 돈 되는 건 계란뿐이었다. 할머니도 “닭똥구멍이 한국은행조폐공사다”라고 했고, 1970년대 개혁개방(改革開放)을 하는 중국 사람들도 “닭똥구멍이 바로 은행이다(鷄後就是銀行)”라고 말했다. 알지(閼智))는‘알타이(Алтан)’이라는 몽골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고, 의미는 ‘황금(黃金)’이다. 알타이산맥(黃金山脈)은 몽고어로 ‘알타이 우울스(Алтай уулс)’다. 황금의 위력을 은유한 것이고, 닭을 토템으로 신봉하던 부족에서 국왕이 나온다는 신앙이었다.

◇한반도를 대신했던 청구(靑丘,Green Hill)가 달구벌이었다

“동산에 오르면 나라가 한눈에 보이고,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눈 아래 다 들어온다”는 맹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옛날 통치자들은 언덕(hill)이나 관망대(watch tower)에 올라가 적의 침략을 탐색하거나 자기의 봉토를 한 눈에 살펴보기를 선호했다.

대제국의 수도는 7개의 언덕(seven hills)이라는 자연조건으로 선택했다.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Rome), 동로마(비잔틴)제국의 수도 이스탄불(Istanbul),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Moscow), 포르투갈제국의 도읍지 리스본(Lisbon) 등이 7개의 언덕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선인들은 이를 배산임수(背山臨水) 혹은 장풍득수(藏風得水)로 받아들였다.

달구벌은 아미산(蛾眉山), 침산(砧山), 비산(飛山), 연구산(連龜山), 학봉(鶴鳳), 산격(山格,일명 수도산), 와룡산(臥龍山) 등의 7개의 언덕으로 대제국의 도읍지로도 손색이 없었다.

이렇게 나지막한 달구벌의 산들을 BC 4세기 중국 ‘산해경(山海經)’에서는 푸른 언덕들(靑丘, green hill)이라고 표현했다. 올망졸망한 푸른 언덕에는 9개의 꼬리를 가진 구미호(九尾狐)가 살았으며(有丘之有狐九尾), 아이들 울음소리를 내면서 사람들의 혼을 빼앗아간다고 했다.

대구를 청구(靑丘)라고 했던 역사적인 흔적은 청구대학(靑丘大學, 영남대학의 전신), 청구고등학교, 청구4거리에 있으며, 조선시대 때 청구영언(靑丘永言), 청구도(靑丘圖) 등으로 사용되었다. 산해경의 구미호전설은 이곳에서 미녀가 많이 살았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오늘날 대구사투리로 여우를 ‘야시’라고 하며, 러시아어 ‘야시(диал)’는 여우(fox)를 의미한다. 대구시내 젊은 여성들의 활동무대 ‘야시골목(fox street)’이 있다. 불행스럽게도 구미호(九尾狐) 전설을 대구시는 아직까지도 스토리텔링(예술작품화)하지 않았다. 난데없이 2009년 9월 17일 중국 장가계(張家界)에서 천문산(天門山)을 배경으로 5천평의 유리무대 위에서 천문산의 여우선녀(天門山狐仙)라는 뮤지컬을 공연해 연간 100만 명의 관중을 매료시키고 있다.

한편, 통치자에게 민생을 시찰하는 언덕(觀風皐)은 소중한 곳이다.

사례로 AD 300년경 머슴살이, 소금장수로 연명만 해왔던 을불리(乙弗利)는 “나는 야인이지 왕손이 아닙니다. 부디 다시 살펴주십시오”라고 극구 국왕옹립을 거절했다. 고구려 제15대 국왕이 된 그는 국난극복과 국토확장을 도모했다. 그는 별세하고 자신이 국왕으로 바라다 봤던 미천언덕(美川皐)에 잠들었고, 시호를 미천왕(美川王)이라고 했다.

달구벌엔 다행스럽게 아직도 청라언덕(green ivy hill)이 하나 있다. 2019년 1월 5일에 신남역을 청라언덕역으로 개명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펴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이은상(李殷相) 작사 박태준(朴泰俊)작곡 ‘동무생각(思友)’에 나오는 청라(靑蘿)언덕이다.

1899년 백안의 존슨 박사(Woodbridge O. Johnson)가 동산병원에 오면서 미주리식물원(Missouri Botanical Garden)에서 사과나무 72그루를 구입해서 이곳에 처음으로 심었다. 이곳을 에덴동산으로 만들고자 했던 언덕이다. 그곳엔 지금도 대구사과나무의 원조 3세가 자라고 있다.

또한 청라언덕으로 우리의 머릿속에서 있다. 청라(靑蘿, green ivy)란 미국동부 아이비리그(ivy league) 명문대학 교실을 덮고 있는 담쟁이넝쿨이다. “눈앞의 어떤 장벽도 사다리로 알고 기어 올라가라(Climb up any wall in front of your eyes knowing as if a ladder)”는 담쟁이의 삶을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은 따라 배운다. 청라언덕은 달구벌의 아이비 에덴동산(Ivy Eden Garde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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