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생일', 여전히 가시지 않는 ‘세월’의 아픔
영화 '생일', 여전히 가시지 않는 ‘세월’의 아픔
  • 배수경
  • 승인 2019.04.0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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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그 가족들의 이야기 ‘생일’
정치적·사회적 메시지 없이
유족들 아픔 담담하게 풀어내
설경구·전도연 열연 돋보여
생일-다시
 

‘늦은 밤이나 새벽/ 아무런 기척도 없는데/ 현관 센서등이 반짝/ 켜지곤 했지요?/ 놀라지 마세요/ 어머니 저예요,/ 이제 저는 보이지 않게 가고/ 보이지 않게 차려 놓으신 밥을 먹고 / 보이지 않게 어머니를 안아요./ 다시 놓지 않으려 당신을 꼬옥 안아요/ 그때 센서등이 반짝 켜지는 거예요’(영화 ‘생일’ 중에서)

가족이나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들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 한자락에도,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행여 그가 왔다간건 아닌가 하고 잠시 숨결을 고르는 순간이 있다.

여기 아들을 잃은 엄마가 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듯한 몸짓으로 허깨비처럼 일상 생활을 이어간다. 아들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해 회한에 잠긴 채 잠 못 이루다 현관 앞 고장난 센서등이 아무런 기척없이 켜질 때면 아들이 왔다 간게 아닌가 하염없이 현관을 바라본다. 슬픔을 꾹꾹 누르기만 하다 어느날은 아들의 옷을 껴안고 멈출수 없는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영화 ‘생일’은 전 국민을 집단 우울증과 트라우마에 빠지게 만들었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를 다루고 있다.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꺼내기엔 조심스러운 이야기다. 특히나 상업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에는 ‘너무 이른게 아니냐?’,‘세월호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다니’라는 우려와 비판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영화 개봉소식을 듣고도 선뜻 영화관을 찾는 것이 망설여졌던 이유이기도 하다.

‘세월호’는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앞으로도 평생 안고 가야할 상처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이제는 좀 잊어버리고 덮어버렸으면 하는 지나간 일이다. 그래서 ‘지겨우니 그만하라’,‘ 당신 가족의 일이라도 그럴수 있겠냐’며 서로를 향해 날선 말들을 꺼내놓기도 한다.

영화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그날의 사고 이후 2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해외에 머물던 정일(설경구)이 귀국해서 찾아간 집에서는 무슨 사연인지 아내 순남(전도연)이 문도 열어주지 않는다. 학교로 찾아가 만난 딸 예슬(김보민) 역시 어색한 표정으로 뒷걸음치며 아빠를 맞이한다. 2년의 시간동안 한 가족은 금방이라도 해체될 듯이 위태로워 보이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졸업을 하고, 학교 내 기억교실은 존치 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서서히 그들을 기억 속에서 지워가고 있지만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여전히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순남은 혼자서 아픔을 껴안고 또 어떤 이는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울고 웃으며 그 순간을 버틴다. 아파트를 울리도록 오열하는 순남의 울음소리에 처음에는 함께 울던 이웃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언제까지 견뎌야 되냐’며 지겨워하기도 하고, 보상금 얘기로 마음을 헤집어 놓는 친척들도 있다. 어쩌면 평범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려와는 달리 영화 ‘생일’에는 정치적, 사회적인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늘 아침까지도 방주인이 있다가 나간 것처럼 책상 위의 문제집이 그대로 펼쳐진 수호의 방, 입을 사람은 없지만 아들의 새옷을 사오는 엄마 순남, 빈 쇼핑백이 서운하면서도 투정부리지 않는 동생 예솔을 통해 자식을, 오빠를 잃은 한 가족의 모습에 온전히 집중하며 우리 앞에 담담하게 이야기를 펼쳐놓을 뿐이다.

120분의 상영시간 중 30여분을 할애한 수호의 생일장면은 남은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세월호 치유단체에서는 아이들의 생일이 되면 각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보듬고 다독이는 시간을 갖는다. 생일 모임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시라는 형식에 담아 낭독하는 시간이다. 앞에 소개한 시 역시 실제 생일모임에서 낭송된 이규리 시인의 시에 이종언 감독의 글을 덧붙여 완성됐다.

영화가 눈물을 강요하지는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설경구, 전도연의 열연 덕분이기도 하다. 두 사람 모두 자식을 잃은 부모 연기가 처음이 아니다. 설경구는 최근 개봉한 영화 ‘우상’과는 다른 결로 자식 잃은 아버지를 표현한다.

영화 ‘생일’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는 이에게 섣부른 위로를 건네는 영화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억지로 잊지말라고 강요하는 영화도 아니다. 영화는 그저 담담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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