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타자들', 타자 혐오는 현실 변화 수용 못해 생겨나
'나와 타자들', 타자 혐오는 현실 변화 수용 못해 생겨나
  • 김광재
  • 승인 2019.04.04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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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와 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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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총격테러 희생자 추모하는 무슬림 학생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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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총격테러 희생자 추모 촛불. 연합뉴스



 

다원화 사회 제3세대 개인주의
정체성 혼란과 타자 혐오 사이서
‘좋아요’ 누르며 정치참여라 착각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은
해답이 있다는 헛된 희망 주고
아는 사람이 있다는 환상 갖게 해

트럼프를 당선시킨 미국, 마크롱을 둘러싸고 충돌하는 프랑스, ‘브랙시트’로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영국 등 세계 각국의 정치 현상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민주주의의 붕괴를 경고하고, 몰락해가는 지성의 회복을 주장하고, 포퓰리즘과 혐오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들 사이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이졸데 카림은 우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뤄진 변화의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졸데 카림의 ‘나와 타자들’(민음사)은 ‘타자’와 ‘변화’를 축으로 새로운 논의를 전개한다. 현재의 변화를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전의 과거와 비교해 봐야 한다. 허구의 개념인 민족이 우리를 현실적으로 규정하는 강력한 힘을 가져 왔는데, 불과 지난 20~30년 사이에 동질성을 제공한 민족이 침식되면서 다원화 사회가 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 책의 1장 ‘과거-동질 사회라는 환상’과 2장 ‘지금-다원화가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는 정체성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개인주의의 층위를 역사적으로 구분해 설명한다. 첫 번째는 19세기 국민국가가 형성될 때 기존의 관계망에서 벗어나 동등한 개인들이 출현한 이후의 1세대 개인주의다. 두 번째는 1960년대 정당과 같은 소속을 통한 운동이 각자의 정체성을 통한 개인의 운동으로 분화된 2세대 개인주의다. 세 번째가 지금의 다원화 사회에서 대두한 3세대 개인주의다. 불안정한 3세대 개인주의는 “원하던 정체성이 아니며 의지로, 싸움으로 획득한 것이 아니”지만 “자신들의 전통이 부서지고 자신들의 정체성이 불안정해졌음을 느끼고 있다.”

3장부터 종교, 문화 정치의 다양한 영역에서 등장하는 다원화된 주체를 분석한다. 이민자 혐오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전선은 원주민과 이민자 사이에 있지 않다. 정치 전선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다. 정치 전선은 오늘날 포괄적인 ‘우리’를 원하는 이들과 배타적인 ‘우리’를 원하는 이들 사이에 놓여 있다. 이민으로 변화된 이민 이후 사회를 받아들이는 사람과 이민 이후의 현실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른다. 후자는 변화를 위협으로 느끼고 ‘과도한 외국화’ 또는 이슬람화로 재해석하는 이들, 말하자면 변화를 막고 싶은 사람들이다. 현실에 대한 이러한 저항은 변화하지 않는 ‘진정하고 순수한’ 사회라는 환상에 기초하고 있다. 역사는 진실에 대한 거부와 부인이 힘을 얻을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이는 위험한 힘이다. 현실을 자신들의 환상에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다문화사회로 접어들었으나 아직 서구사회처럼 사회문제로 크게 불거지지는 않은 듯 하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외국인 특히 저소득 국가 출신의 근로자들에 대한 편견과 멸시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외국인 혐오도 ‘우리’에게 돌아와야 할 일자리와 복지를 ‘타자’가 빼앗아가는 것이라는 발언들 이면에는 상상에 머무르며 변화를 거부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또한 다원화된 주제는 ‘좋아요’를 누르고, ‘리트윗’을 하는 것만으로 자기가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낀다. 정치에 ‘팬으로서 참여’하는 것이다. 월가 점거 운동이 반짝하고 흔적도 없이 사그라진 것은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며, 또한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그때 움직이는 것은 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운동의 외주화’라 할 수 있다. 운동은 스타에게, 전문가에게, 성공에 위임된다. 반면 대중은 함께 움직이고 함께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경청받는 존재가 되는 일이나 그곳에 존재하는 일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단지 성공의 배당을 받는 일이 예정되어 있다. 그들의 전체 운동, 그들의 전체 변화는 전혀 다른 오늘날의 중심인물 안에 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바꾸느 다원화 사회에서 포퓰리즘에 대항아여, 모든 생활영역의 자본주의화에 대항아여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갖게 된다. 이에 대해 이졸데 카림은 슬라보예 지젝의 말을 빌려온다. “대안에 대한 꿈은 끝났다. 여전히 대안을 꿈꾸는 사람은 겁이 많아서 대안 부재와 희망 없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마치 해답이 있고,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는 듯 헛된 희망을 준다. 더 나아가 이 질문의 목적은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약속하는 오바마, 샌더스, 마크롱 같은 사람이 계속 나타나고 그에 대한 과대선전이 반복될 뿐이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이졸데 카림이 말하는 다원화 사회의 3세대 개인주의 논의를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포스트모더니즘이 수입될 때, 우리 사회는 아직 ‘모던’도 획득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과 역사는 궤도 위의 정거장처럼 한 줄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람들이 맞섰다. 우리 사회가 압축성장을 했다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뜻이다. 60년대 서구에서는 2세대 개인주의가 시작됐지만, 우리나라는 민족중흥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세대들이 등장했다. 그들이 권위주의적 정부를 무너뜨리는 운동에 나설 때에도 그들은 여전히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잊지 않은 세대였다. 그런 면에서 카림의 논의는 지금의 우리나라의 진영 갈등, 세대 갈등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듬는 데에 유용할 것이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이졸데카림
저자 이졸데 카림
저자 >> 이졸데 카림(Isolde Charim)

오스트리아 철학자이자 저널리스트. 1959년 빈에서 태어나 빈과 베를린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빈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했으며 2007년부터 브루노 크라이스키 포럼에서 과학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타츠(taz)’, ‘비너 차이퉁(Wiener Zeitung)’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2000년 오스트리아에서 중도 우파인 국민당과 극우 정당인 자유당의 연립 정부가 들어서자 ‘민주적 공세(Demokratische Offensive)’를 조직해 파시스트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인 새 정부에 반대했다. 당시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반정부 시위 가운데 카림이 이끈 빈의 헬덴 광장 집회에는 10만여 명이 참여했다. 저서로 ‘알튀세르 효과: 이데올로기 이론의 구상’(2002) 등이 있으며 슬라보예 지젝의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정신 분석과 독일 관념론 철학’(공역)을 번역하고 ‘디아스포라라는 삶의 모델’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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