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온 4월
다시 온 4월
  • 승인 2019.04.0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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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4월이 다시 왔다. 4월은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일갈하던 그의 시에는 하얀 최루탄 냄새가 난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최루탄 냄새가 사라진 거리에는 이제 껍데기만 남아 있다.

쌓인 껍데기 중에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종교의 껍데기이다. 신앙의 알갱이는 다 사라지고 길거리마다 쌓여있는 종교의 껍데기를 보게 되면 신앙의 위기의식이 저절로 들 정도이다. 종교의 껍데기를 두르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들은 개교회적 성장주의와 지역 패권주의에 물든 종교인들, 그리고 극우파적 정치성향을 가진 종교인들이다.

그 사람들은 내 교회에 사람들을 많이 오게 하는 것, 그것을 통해 지역의 맹주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다. 또 현 정권을 무조건적으로 극좌파라 몰아붙이며, 극우의 길만이 진리라고 굳게 믿고 있는 종교인들이다.

몇 달 전, 약 10여년 만에 만난 어느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은 내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북한 간첩에 의한 소행이며 현 정부는 온갖 정책으로 교회를 파괴하려고 하는 좌파 정부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은 사실과 좀 다르다고 항변했더니 아마 그 때 마음이 좀 상하신 것 같았다. 그래도 헤어지면서 정치적 견해는 좀 다를 수 있으나 서로 넓게 이해하고 다시 만나자 약속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분이 늦은 밤에 어떤 분의 강의 영상을 한번 보라며 보내 주었다. 잠깐 열어보니 정치적으로 극우 성향을 가진 작가의 강의 영상이었다. 그래서 그런 정치적인 영상은 보내지 말아 달라 했더니, ‘목사님은 좌파군요’ 라는 문자를 즉각 보내 왔다. 밤 12시가 넘어서 보내온 그 분의 영상과 문자에 마음이 상하였다. 북한 간첩의 소행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으며, 현 정부는 온갖 방법으로 교회를 핍박하고 있다는 그 분의 생각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4월에는 세월호가 기억난다. 그 때 그 4월 이후에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목사님, 왜 그 때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고 침묵하셨을까요?’라는 것이다. 정말 그 때 하나님은 왜 우리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 것일까?

이제야 나는 그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세월호는 여전히 내게 ‘하나님은 우리 기도에 얼마나 신속하게 응답하시는가?’라기 보다는 ‘하나님은 우리 기도에 얼마나 자주 침묵하시는가?’를 보여주는 실제 사건이었다. 4월에 나의 기도는 침묵의 기도가 된다. 4월의 하나님은 나에게 침묵하시는 분이시다. 그 4월이 왔고 또 이제 지나가고 있다.

지인 중의 한 분이 며칠 전, 암 진단을 받았다. 완치되기에 상당히 힘든 암이라 한다. 나는 그 분에게 의사가 다 치료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을 낫게 해 주실 것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 대신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낫게 하실 수도 있지만 어쩌면 혹 하나님이 이번에 당신을 데려 가실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필이면 4월이었다. 4월에는 하나님이 종종 침묵하심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4월이 다시 왔다.

작년의 4월에는 한반도에 올 봄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한반도의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는 쉽게 가시지 않는다. 곧 한미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한다. 한미정상회담이 제3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져서 마침내 한반도에 봄이 올 수 있을까?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신다. 때가 4월이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4월에는 극우파 종교인들도 좀 조용히 기도했으면 한다. 하나님이 무어라고 말씀하시는지 조용히 마음을 귀를 기울여 들어 보았으면 좋겠다. 4월에는 우리 모두 조용히 기도해 보자.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자. 시인 신동엽이 말하지 않았던가.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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